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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u Ming Jun 09. 2024

막일=막(내)일=내 일?!

호구여도 괜찮아 #19 : 하악골융기 (하)


하악골융기 (下顎骨隆起)


하악골융기, 내가 최근에 얻게 된 치악의 이상 형태다.

입안에 뼈(하악골)가, 안쪽이나 바깥쪽으로 튀어(융기) 나오는 현상으로, 이를 자주 무는 사람들에게 발생한다고 한다. 2014년, 서른두 살이 되던 해 나는 아내와 결혼했고, 주공 아파트 17평 전세집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결혼 초기, 나는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 아내에게 자주 뱃심 좋게 장담을 하곤 했다.


"여보, 나만 믿어. 우리 집을 위해서라면 닥치는 대로 할게."


작은 중소기업에 다니는 나는, 남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이 아니라면 아내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하고 싶었다. 다만 매일 자정이 돼서야 갖은 잡일과 접대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회사 일을 열심히 하는 것 외에는 우리 집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회사의 주어진 자리에서, 이를 악물고 몸부림쳐서라도 성장하고, 먼지만큼이라도 나은 내일은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결혼을 앞두고 급하게 입사한 세 번째 회사에서 10년을 다니게 되었다.

이를 악물고 몸부림치며 버텼던 10년의 시간을 '하악골융기'라는 단어로 요약해 보았다.


하 (下)

('13년~'15년) 철저히 바닥을 기었다.

 (顎)

('15년~'16년) 악에 받쳐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

골 (骨)

('16년~'19년) 살기 위해 뼈를 갈아 넣었다.

융 (隆)

('19년~'21년) 30대 전략기획팀장이 되었다.

기 (起)

('21년~'22년) 회사의 주인이 바뀌고 이직을 결심했다.


'하악골융기'라는 이름을 짓고 보니, 스스로 황당함에 실소를  금치 못하겠다. 그러나 앞으로 이어질 지루하고 반복되는 업무들 이야기가 그저 고생으로만 비추어지는 것보다, 이 시대의 평범한 가장의 성장 스토리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이를 악물고 몸부림치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나 또한 처절하게 이 사회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이제 본격적으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하 (下), 내가 무릎을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만화가 김성모의 무릎과 추진력의 유명한 상관관계는, 원조가 마블코믹스에 있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사진출처 : 마블코믹스


[마블 코믹스 중]
레드 스컬 : 좋다, 패배자여! 너에게 여생동안 나를 섬길 기회를 주마! 나를 따라 맹세의 언약을 하도록!
캡틴 아메리카 : 그전에 지금의 상황에 어울리도록 무릎을 꿇도록 하겠습니다.
레드 스컬 : 그래 불쌍한 겁쟁이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자세로군.
캡틴 아메리카 : 아닙니다. 스컬, 이건 최후의 일격을 각오한 자에게 어울리는 자세거든!!


물론, 나의 경우는 캡틴 아메리카와 같은 멋진 추진력 때문은 아니었다. 내가 무릎을 꿇었던 것은 아내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그녀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결심 때문이었다. 그를 위해 내가 누군가에게 호구가 되든, 바보라고 불리든 상관없었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하기로 이미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무릎을 꿇는 일은 나에게 대수롭지 않았다.

어떤 일이든 자세를 낮춰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자세를 낮춰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샘플 자재의 박스를 포장하기 위해, 엔지니어 옆에서 기술을 배우기 위해, 구매팀 옆에서 자재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고객이 원하는 식당 자리를 예약하기 위해, 좀 더 나은 생산 계획을 협의하기 위해,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나의 감정은 버리고 자아는 잠시 뒤로 했다. 그저 작은 바람이 있다면, 너무 늦지 않은 밤에 퇴근해 깨어있는 아내의 얼굴을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루빨리 성장해 실력 있는 직장인으로서, 가장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무릎을 꿇고 팀의 선후배, 유관부서 직원들을 올려다보는 만큼 내가 얻는 지식의 깊이와 정보의 넓이는 가치 있어졌다. 그러나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소위 '짬밥'이 안 될 때 맡게 되는 업무들은 비루하기 그지없었다.




막내의 일과 (인내, 인내, 인내...)


오전에는, 

중국 법인과 고객사에서 필요로 하는 부품을 보내기 위해 자재팀에 부품을 신청해야 했다. 자재팀에 들어서면, 껌을 '짝짝' 소리를 내며 씹는 직원이 눈을 흘기며 왜 이렇게 부품을 급하게 신청하느냐며 핀잔을 주곤 했다. "엑셀 입력하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알고는 있냐"는 그의 투덜거림에, 나는 상황을 모면하려 억지웃음과 갖은 애교로 대응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어렵게 받은 부품들의 수량과 상태를 확인하고, 입으로 테이프를 뜯어가며 급히 박스를 포장해 관리팀 사무실로 향했다. 문을 열면, 느긋하게 아포가토를 만들어 먹던 총무팀 직원은, "이제 가져오시면 어떡해요! 매번 늦으실 거면 알아서 보내세요!"라며 텃세를 부렸다. 나는 사정을 해야 겨우 부품을 발송할 수 있었고, 그들이 정해둔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인천공항으로 퀵을 보내는 일은 다반사였다.

나도 남들에게 핀잔을 주거나 회사에서 아포가토를 만들어 먹는 여유를 갖고 싶었지만, 중국에서 애타게 부품을 기다리는 직원들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모두 회사에서 월급 받고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인데, 기본적인 교양을 갖추지 못한 직원이 참 많았다.


오후가 되면,

여러 군데서 울리는 전화를 대응해야 했다. 고객으로부터 걸려온 휴대폰 전화를 받는 와중에 회사 전화가 울리기 일쑤였고, 회사 전화로 통화를 마친 후에는 다시 휴대폰의 부재중 전화를 확인해야 했다. 내 자리 앞은 마치 은행 창구처럼 번호표도 뽑지 않은 사람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을 대응하면서도 고객에게 발표할 제안서를 만들고, 견적서를 작성하며, 작동에 문제가 있는 제품의 VOC를 접수하고 추적했다.


개발 진척도와 이슈 해결 현황을 고객과 콘퍼런스 콜을 통해 설명해야 했고, 회의하는 팀장들에게 커피를 사다 주며, 실무진 회의를 진행하고 회의록을 작성해 배포했다. 부장급 엔지니어에게 부탁을 할 때면 어제 늦게 퇴근했다며 신경질을 내는 경우가 허다했다. 한 번은 베테랑 부장에게 제품의 원인 분석을 요청했는데, 5분이면 해결 가능한 일이었음에도 하기 싫다는 그를 4시간 동안 설득해야 했다. 지독하게 무식하고 텃세를 부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정도 열정이라면 차라리 보험을 파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퇴근 전, 하루동안 발송한 이메일을 세어보니 100개가 넘어서, 한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의아했다.


저녁이면,

여기가 중국인지 한국인지 헷갈릴 정도로 중화권 고객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방문했다. 그들에게 고기에 술, 회에 술, 기타 등등에 술을 접대했다. 2차, 3차, 4차까지, 다들 공짜라면 체력의 한계가 없는 듯 보였다. 접대하는 동안에는 내가 회사원인지, 원숭이인지, 광대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접대 중에도 갑질은 끊이지 않았다. 왜 사람들은 독한 술을 대신 마셔줄 때 묘한 우월감을 느끼는지 모르겠으나,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꾹 참고 마셔야 했다.

접대의 자리는 살얼음판 같았다. 고객의 즐거움을 보장하면서도 실수 없는 마무리를 목표로,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소파 위에서 정신 차리라는 독설을 들을 때면, 머리로는 겸허히 받아들였지만, 바닥난 체력과 자존감에 당장이라도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매일매일 화이트보드에 빼곡히 업무를 적었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금요일 저녁이면, 중요한 이슈를 조금이라도 누락했을까 봐, 한 주간의 메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았다. 심야 퇴근이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어느 날은 저녁 아홉 시에 회사에서 나오면서 다급한 마음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심야 영화, 이자카야, 드라이브 어떤 것이 좋을지 신이 나서 묻기도 했다. 매일 집에서 출퇴근했지만, 우리는 주말 부부와 다름이 없었다.


그 결과, 중국 매출은 20배가 넘게 성장했고, 주력 고객사라 부를 수 있는 곳들도 많아져 중국에 있는 업계 관련 고객사 중 우리 회사의 제품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게 되었다. 그러나 본사의 영업팀과 중국지사는 성장하는 중국 사업의 성과를 서로 차지하려고 치열한 사내 싸움을 벌였다. 회사에서는 막내로 3년이나 고생한 나에게 칭찬을 해도 부족한 마당에, 오히려 그들은 나를 갈등의 중간에 두고 화풀이의 대상으로 삼았다. 중국 법인은 나를 잡부처럼 이용했고, 영업팀에서는 내놓은 자식처럼 대했다. 사내 정치적 싸움이 극에 달할 때쯤, 그 둘은 싸움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았다. 나는 죽도록 일하면서도, 'She's Gone'과 'Tears'가 부럽지 않은 고음의 욕설과 인격 모독까지 버텨내야 했다.




막일=막(내)일=내 일?!

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에게는 늘 막내일이 주어진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 해서웨이와 '미생'의 장그래를 보면 막내들이 무슨 일들을 하는지 잘 보여준다. 명문 대학, 전문성 있는 전공, 높은 학점, 전문직, 외국어 등 취업을 위해 철저하게 준비했던 능력과는 무관하게, 처음 맡게 되는 일들은 커피 심부름, 회의실 준비, 식당 예약, 세금 계산서 정리 등과 같은 잡일이다.


'장그래' 그리고 '앤 해세웨이'


직장에 들어가면 바로 멋진 샐러리맨이나 커리어 우먼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막상 현실은 고약한 상사가 시키는 잔심부름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것저것 잡일을 오래 하고 있으면, 한 번쯤은 '내가 이것 하려고 입사했나'라는 현타가 절로 온다. 이때, 사회 초년생은 스스로 더 어렵거나 복잡한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미생'의 장백기처럼 쉽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경험 부족으로 예상처럼 잘 안 풀리기도 한다.


어쩔 수 없이 막내라는 시간을 적게는 몇 개월, 많게는 몇 년을 보내야 하는데, 막내라는 이름에 따라붙는 잡일과 하찮은 대우에 사회 초년생들은 종종 마음에 상처를 받곤 한다. 또한, 가스라이팅으로 유리천장을 만들어 꼭두각시로 만들려는 사람들까지 만나게 되면, 마음에서 울리는 깊은 빡침은 '퇴사'를 외치고 싶게 만든다.


하지만 월급을 통해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미생'인 우리의 삶은, 경험을 쌓는 그 순간까지는 어깨너머로 일을 배워내야 하기에, 이 사회가 정한 막내라는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며 묵묵히 버텨내야 한다. 좋은 직장 선배를 만난 경우에는 그래도 다행이라 여길 수 있지만,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업무 노하우를 무림의 비전이라도 되는 양, 알려주지 않고 심지어 골탕 먹이는 선배를 만나게 되면,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진다.


설사 그렇더라도, 더럽고 치사해도, 이를 악물고 버텨내야 한다. 

앤 해서웨이는 경력을 쌓기 위해, 장그래는 인턴에서 계약직, 그리고 정규직이 되기 위해 참아냈다. 나의 경우에는, 결혼 후 아내에게 안정적인 가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런 의미에서 더욱 이 사회를 떳떳이 살아낼 '실력'을 쌓고 싶어서 참아냈다.


매일 밤 자정이 넘어 집에 왔고, 금요일에는 신혼 주말을 아내에게 온전하게 선물하기 위해, 퇴근 후 새벽 4시까지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잠이 들었다. 아내는 결혼 3년 차가 되어서야 종량제 쓰레기봉투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니, 내가 회사일과 집안일 모두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짐작이 될 듯하다.


나의 경우에는, 사회생활 6년 동안 후배가 없는 막내 생활을 했다. 이등병에서 일병으로 넘어가며, 눈 감고도 일이 돌아가는 상황을 알게 됐고, 못하는 일이 없어졌다고 스스로 생각할 만큼 자신감이 붙었다. 회사에서는 나에게 특별한 혜택을 제공하지는 않았지만, 서너 명의 중국 유학생 출신 후배들을 추가 채용 계획했고, 나는 그들을 직접 면접 보고 원하는 후배들을 채용할 수 있었다. 그 후로, 박스 포장 업무 등에서는 서서히 빠져나오며 막내를 졸업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시대의 고인 물들에게 외치고 싶다.

막내일은 이 사회가 정한 벌칙이나 입장료가 아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라면 무슨 일이든 함께 하는 것이 옳다. 

그것이 존경받는 선배, 혹은 비웃음을 받지 않는 선배로 가는 길의 첫 번째 단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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