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u Ming Jun 12. 2024

권(모술수) 부장을 아시나요?

호구여도 괜찮아 #20 : 하악골융기 (악)

잠 못 드는 밤, 이자는 내야 하고...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아기를 낳은 후 넓은 집으로 이사하는 장면에서 남자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형편도 안 되는 집으로 이사해야 하는 순간이 어찌나 빨리 다가오는지 놀랄 정도다."

우리도 그랬다. 17평 주공 아파트에서 시작한 신혼 생활은 아기가 생긴 후 대출을 받아 26평 집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이사 후 첫날 아침, 아내와 나는 손을 잡고 느린 걸음으로 새로 이사한 집을 천천히 둘러봤다. 방이 세 개나 있고 화장실이 두 개나 있다는 사실에 서로를 마주 보며 행복에 겨워했다.


그러나 매달 갚아야 하는 원금과 이자 걱정은 우리 얼굴에 가끔 그늘을 드리우게 했다. 대출한 금액은 우리 부부가 노력하면 충분히 상환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대출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상환 기간을 30년이 아닌 10년으로 정했다. 원금과 이자는 마치 우리가 빌린 돈의 세 배처럼 느껴졌다.


아내는 꽃다운 대학 시절 여행사에서 일한 돈부터 도쿄에서 어렵게 벌어온 돈 그리고 10년을 넘게 다닌 회사의 퇴직금까지 선뜻 내놓으며 대출을 갚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아이를 낳은 후 더 이상 맞벌이를 지속할 수 없었다. 양가 부모님께서 아무리 도와주시려 해도, 육아의 가장 큰 무게는 늘 아내에게 있었


과 육아를 병행하며 잠도 못 자고 점점 수척해져 가는 아내를 두고 볼 수 없었다. 더 이상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야기를 꺼냈지만 아내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토피로 괴로워하는 아기를 보며, 아내는 나의 뜻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결혼한 지 3년 만에 외벌이 수입에 의존해 살아보기로 했다. 


2016년 여름, 삼십 대 중반, 대출 상환 생각에 잠 못 드는 밤이 많았다. 나는 제대로 잠드는 날이 거의 없었고 잠들더라도 한 번 깨면 아침까지 잠들지 못했다. 아내는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생활비를 줄여서라도 살아내겠다고 했지만, 나는 남편으로서 아내를 돈 걱정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고 싶지 않았다.


잠에서 깨면 다시 잠들지 못하는 밤이 이어졌다. 집을 되팔아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들 무렵, 늦게 퇴근한 저녁, 아내와 아기 둘이 꼭 끌어안고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며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차올랐다. '나는 남편이자 아빠다. 고개를 들자!' 결심을 굳히고, 결코 부탁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권(모술수) 부장을 아시나요?


권 부장, 이름은 권모술수(당연히 실이 아니다), 나의 첫 번째 스승이자 애정과 증오의 대상이다.


누군가 타짜의 한 장면처럼, 나에게 권 부장을 아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답할 것이다.

"권 부장을 아냐고요? 내가 아는 최고의 권모술수의 대가죠."


타짜에서 고니를 아냐고 묻고 답하는 장면은 잊을 수 없다 (사진출처 : 타짜)


모술수 부장, 의 다른 이름은 중국 영업의 달인, 노련한 정치가, 권모술수의 대가다.

권 부장을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한다.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칼날 같았고, 그의 웃음 섞인 농담 뒤에는 함정이 숨겨져 있었다. 나는 그와 함께 일하는 동안,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을 곱씹고 또 곱씹어야 했다. 권 부장은 향상심과 호승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았다. 그의 능력들(영업, 정치, 권모술수)과 야심이 더해졌을 때, 당시의 나 같은 애송이는 상대하기 어려운 괴물과도 같았다.


경영진에게 권 부장은 불확실한 사업을 성장시키는 중요한 열쇠였다. 

경영진은 욕심이 많은 권 부장을 앞뒤가 확실한 동전처럼 알기 쉬운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는 회사의 성장이라는 목표에 자신을 가두지 않았고, 경영진의 눈을 피해 신에게 방해되는 사람들을 특유의 권모술수로 제거해 나갔다. 그는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적군도 아군도 언제든 변할 수 있어. 그걸 잊지 마." 나는 그의 말속에 나 또한 포함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권 부장에게 나는, 필요하지만 거슬리는 존재였다. 

나는 권 부장을 따라 중국 사업을 일으켰고, 우리 둘 뿐이던 중국 영업팀은 열 명으로 늘어났으며 매출은 수십 배로 성장했다. 5년간의 그의 가르침과 때때로의 질책은 나의 성장을 도왔지만, 그의 권모술수는 나를 뒤에서 이불을 차게 하거나 때로는 비참함에 눈물흘리게 했다. 권 부장은 충성을 맹세하지 않는 나를, 필요하면 밀어버릴 수 있도록 외줄 위에 세워뒀다. 나는 위태위태한 외줄 위에서 나의 가치관을 지키고자 노력했지만, 혹시라도 떨어질까 봐 항상 노심초사해야 했다.


그는 자신과 연을 맺은 악어새도 가리지 않고 무는 악어였다.

그러나 나는 물어도 물어도 죽지 않는 악어새였다.


권(모술수) 부장은 대략 이런 이미지였다. (권 부장님 죄송해요, 사진출처 : 황해)




권 부장을 만나러, 호랑이 굴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왜 나중에 문제가 될 것을 알면서도 사채 사무실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는 것일까? 아마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러했을 것이다.  또한 대출 상환에 대한 걱정으로, 급한 마음에 권 부장을 찾아다. 내가 그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경제적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줄 수 있는 주재원 자리였다.


사실 나는 여러 번 회사의 주재원 제안을 거절했었다. 입사 초기, 30대 초반이었음에도, 사장님은 내가 상하이 사무소장을 맡길 바라셨다. 이듬해에도, 또 다른 이듬해에도 회사로부터 중국 주재원 포지션을 제안받았으나, 타짜의 아귀와 같은 권 부장의 수하가 되는 것이 싫어서 고민 끝에 고사하곤 했다.


돌이켜보면, 왜 굳이 권 부장을 찾아가 주재원 자리를 부탁했을까 의문이 든다. 그러나 나는 그 당시 전후 사정을 돌볼 만큼 마음이 여유롭지 않았다. 나는 그저 하늘을 바라보며 동아줄 내려오길 애타게 기다렸기에, 호랑이 꼬리도 동아줄이 되어 준다면, 무엇이라도 잡고 싶을 만큼 마음이 다급다.


중국으로 출장을 간 어느 날,  중국 심천 사무실에서 권 부장의 세 평 남짓한 개인 집무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 그의 책상 앞에 앉았다. 그의 책상 위에는 늘 정교하게 정리된 서류들이 쌓여 있었다. 권 부장은 나를 맞이할 때도 그 서류들 위로 시선을 옮기고 알 수 없는 미소를 띠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나의 사정과 제안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의 눈빛에는 이미 결론이 나 있는 듯했다. "지금은 어렵다." 그의 말은 명확하고 단호했다. "나는 제안을 했었고, 네가 제안을 거절한 것이니까... 지금 공석은 다른 사람이 맡고 있다." 그의 말은 모두 맞았다.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어떻게든 문을 두드려보는 심정으로 찾아온 것이다. 나는 사채 사무실에서 대출을 거절받은 사람처럼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권 부장의 집무실을 나서는 순간, 다음 달 이자 상환에 대한 걱정보다, 권 부장의 미소 뒤에 감춰진 속내를 떠올리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사무실에서의 짧은 대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며, 혼란과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그에게 약점을 드러내 보였다는 생각이 나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권 부장은 나를 지켜보며 속으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내가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안타까워해 줄 사람이 아니었다.

나의 약점을 반드시 파고들 권 부장의 다음 수가 걱정됐다.




권모술수에 말려드는 나


2017년 10월, 중국에서 권 부장에게 부탁을 했었던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 찾아온 권 부장은 중국 영업팀 직원들과 회식을 한다며 모두를 불러 모았다. 회식은 평소와 같이 진행 됐지만, 권 부장은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나는 후배 직원들 앞에서 내가 아는 만큼 성실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권 부장의 표정은 싸늘했다. 그 대답들이 권 부장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아니면 그 나본인 입안의 혀처럼 충성할 사람인지를 시험한 것인지, 권 부장은 권모술수를 시작했다.


권모술수를 실제로 쓰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권 부장이 즐겨 사용하는 권모술수는 다음과 같다.


1. 호의를 보이고 역습하라 (역모를 쓰는 술책)

윗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호의를 보이는 경우에는 주의해야 한다.


2. 권위에 약한 심리를 역용하라 (부전승의 지모)

아무리 실력의 시대라 하더라도 권위가 존재하는 이상, 지위를 이용하는 효과는 크다.


3. 적의 동지를 함께 쓰러뜨려라 (일석이조의 비모)

끼리 싸우다가 둘 다 약해지는 것을 기다리는 건 대표적인 일석이조의 술책이다.


4. 취하게 하여 이성을 잃게 하라, 그리고 수모를 주어서 분노하게 하라 (심리농간의 기만술)

술자체는 음모나 술수의 도구에 불과하다. 어떻게 이용하는 가에 따라서 술수의 값어치가 결정된다

수모야 말로 굴욕감이 된다. 특히 재능이 있음에도 스스로 곤궁을 자초한 사람에게는 더욱 유효한 술수이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에게 강제로 을 서, 고의적으로 취하게 만들려는 사람을 많이 봤다. 그러나 취하게 만든 후, 수모를 줘서 이성을 잃게 하고, 그때 일어날 수 있는 실수를 기다리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상대를 이성을 잃고 실수하게 만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상대방보다 우월한 지위끝까지 술을 강권해야 하고, 얼굴에 철판을 깔은 듯 상대방을 뻔뻔하게 도발해야 한다. 러나 상대방이 한 번이라도 이성을 잃고 실수하는 순간, 소기업 안에서 그 효과는 더욱 극명하다. 그 실수는 박제가 되어 경영진을 포함한 전사 직원들에게 전달되고 확대되며 다시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나는 권 부장 수년간 스승으로 모신 수제자로, 그의 권모술수에 대해서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는 마치 체스판 위의 명장처럼, 모든 말을 전략적으로 배치하고,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며 치밀하게 계획을 세다. 그는 언제나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정하며, 필요한 순간에 결정적인 한 수를 두어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곤 했다. 그는 직위와 권력을 무기로, 그의 권모술수를 강화하며, 말 한마디로 사람들을 주눅 들게 했다. 


심리전 역시 그의 특기였다. 그는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어 보고, 그들의 약점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갔다. 그의 질문 하나하나는 함정을 품고 있었고, 그의 말속에는 항상 이중적인 의미가 숨어 있었다. 그는 상대를 흔들고 혼란스럽게 만들어, 결국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가장 무서운 것은 그의 끈질김이었다. 진흙탕 싸움에서도 그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상대가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누구의 말이 맞냐는 논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진흙탕을 무서워하지 않는 그의 집요함 앞에서 차라리 백기를 들고 그의 발 밑에 들어가거나 차라리 회사를 나가는 이들을 여러 번 봤었다.


나는 그의 권모술수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또한 어떤 점을 조심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음에도 또다시 걸려들 수밖에 없었다. 이미 눈앞에서 여러 사람이 당하는 것을 봤고, 나 또한 여러 번 당해봤기에, 권 부장이 술자리에서 매섭게 눈을 떠올리거나,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칭찬을 할 때면 가능하면 피하고자 하였다.


그렇기에 권 부장이 날이 선 말로 나를 몰아세우거나,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칭찬들을 하면, 나는 최대한 흘려 넘기려 노력했다. 내가 도발에 좀처럼 말려들지 않자, 그는 말의 수위를 높여갔다. 그의 오늘의 사냥감은 바로 나였다. 나는 그의 계획을 눈치채고 갖은 핑계로 그 자리를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웃으며 회유하거나, 화를 내며 가려는 나를 붙잡았다.


권 부장은 지치지 않고 비아냥거림으로 나의 자존심을 긁으며 진흙탕으로 끌고 갔다. 나는 그의 권모술수에 결국 말려들었다. 한계까지 압축된 화는 폭발하고 스스로 곤궁을 자초했다. 그의 언어폭력에, 나는 호프집에서 테이블을 쾅 치고 나왔고, 옆에 있던 테이블이 어졌다. 그가 기다리던 실수가 드디어 터져 나왔다. 그때, 입에 희미미소를 보이며,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호프집에서 나와 나의 실수가 무엇인지 깨닫고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집을 향해 걸었다. 권모술수에 기어코 걸려든 스스로에게 화가 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일을 배기 위해 권 부장을 스승으로 모셔야 했던 내 상황이 초라했다.




악 (顎), 악에 받쳐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아내는 불 꺼진 집에서 힘이 다 빠진 모습으로 손목에는 보호대를 차고서 이제 두 돌이 갓 지난 아이를 안고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내가 권 부장의 권모술수에 걸려들어 억울함에 속상해하고 있을 때, 아내는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안고,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 혼자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 눈물을 글썽이며 나에게 말했다.

"아이가 아플 때 혼자 있는 것 마나 힘들고 무운 일인 줄 알아? 하필 오늘 왜 이렇게 늦게 왔어..."

힘들어하는 아내를 바라보는 나의 눈에도 눈물이 차올랐다.

"술에 취한 꼴로 차마 들어올 수 없었어... 늦게 와서 미안해, 많이 힘들었지"

나는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아내를 꼭 안았다.


그리고 나는 아내에게 느닷없이 하소연을 시작했다. 오늘과 같이 억울한 일들을 그동안 몇 번이나 겪어 왔는지... 나에게 주어진 자리는 살얼음판 같이 차갑고 불안하며, 권 부장 같은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나의 실수를 계획하고 기다린다고... 또, 그 안에서 태연한 척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고 했다. 아내는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아내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초라한 스스로가 창피하고 싫어서 아내 앞에서 엉엉 울었다. 우리 부부는 그날 밤 침대 위에서 아기를 중간에 둔 채 서로를 껴안고 목소리를 내어 크게 울었다. 그 날, 우리는 우는 것 외에는, 서로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드라마 '고백부부'를 보면 남녀 주인공이 부부간의 상처를 보듬어 주지 못하고, 서로를 탓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내는 남편에게,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얼마나 거지 같아졌는지 알아?", 남편은 아내에게 "너 내가 밖에 무슨 꼴을 당하고 사는지 알아? 개만도 못한 취급 당하면서 어떻게 사는지, 네가 알아?"라며 세상을 향해야 할 분노의 화살은 서로를 향한 독설이 되었고, 결국 그 둘의 대화는 이혼하자는 말로 끝이 난다.


우리 부부도 대출 걱정, 회사 상사의 갑질, 육아의 고달픔으로, 근심하고, 분노하고, 힘들어하던 시절이 있었다. 는 아내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없었고, 나 스스로의 문제만으로도 버거워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각자 음에 가진 상처가 화살이 되어 서로를 향하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평생을 께 살아갈 사람을 위로는 것뿐이었다.


신혼부부인 우리에게, 세상은 만만하지 않았다.

또한 세상은 높은 장벽을 우리에게 조금도 낮춰줄 마음이 없다.


나는 우리 가족을 위해, 스스로를 위해 마음을 모질게 먹기로 하였다.


인생 드라마, 고백부부 (사진출처 : 고백부부)
이전 19화 막일=막(내)일=내 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