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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u Ming Jun 07. 2024

나를 꿈꾸게 하는 그녀

호구여도 괜찮아 #18

결혼 10주년을 맞이했다.


아내는 이십 대를 일본에서, 나는 중국에서 보냈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청춘을 보낸 우리는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서울 강남의 중국어 스터디 모임에서 우연히 만났다. 나의 진심 어린 설득 끝에 우리는 진지한 관계를 시작했고, 어느새 시간이 흘러 결혼 10주년을 맞게 되었다.


십 년 동안, 대한민국 가장으로서 감당했던 삶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현실적인 돈 문제를 항상 안고 살아가야 했다. 큰돈을 빌려 가족들 함께 살 집을 마련해야 하고, 자라나는 아이와 함께 탈 수 있는 큰 차도 필요했다. 또한, 혼자라면 고개 숙이지 않았을 사람에게 하기 싫은 부탁도 해야 했다. 때로는 초라하고 때로는 도망가고 싶은 가장의 책임에는 정해진 기한이 없다. 한번 시작하면 평생을 감내해야 한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면, 하루의 고단함이 잊히도록 문을 활짝 열고 반겨주는 가족이 기다리고 있다.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한 날, 아들은 현관으로 달려와 나를 맞으며, 작은 손가락을 입에 올린다. "쉿! 아빠 내가 학교에서 만든 거야."라며, 페페로니 하나가 얹혀 있는, 작게 잘린 피자 조각을 내민다. "내가 만든 피자에 페페로니가 세 개 있었어. 하나는 엄마 거, 하나는 아빠 거고 하나는 내가 학교에서 먹었어." 아들좋아하는 페페로니 피자를, 엄마, 아빠 생각에 삼등분해서, 저녁까지 먹고 싶은 것을 참고, 나에게 준 것이다.


사는 건 당연히 힘들다, 그러나 좀 힘들다고 죽지 않는다.

아내와 아들은 나의 삶에 빛을 비추어 준다.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가족은 그 자체로 내 삶의 이유가 된다.


나는 '악마 개가 쥐를 잡아먹는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기에 페인트로 얼룩진 넥타이처럼, 사회의 존중과 인정에서 멀어진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는 내 삶에 생긴 얼룩을 보고도, "그래도 당신은 명품이야"라고 웃으며 말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내는 별 볼 일 없는 내 인생에 찾아와 준, 영화 속의 여주인공이었다.


그녀는 '바닐라 스카이'의 페넬로페 크루즈였고, '클래식'의 손예진이었으며, '첫 키스만 오십 번째'의 드루 베리모어로, 나의 부족한 글 솜씨로는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참 소중한 사람이다.


아내의 자취방에 처음 초대받았을 때, 작은 냉장고에 붙어 있는 그녀의 사진을 보며, '바닐라스카이'처럼 서울에서 마지막 남은 순수한 여자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클래식'의 손예진처럼 운명적으로 느껴졌으며, '첫 키스만 오십 번째'의 드루 베리모어처럼, 매일을 다시 행복하게 해주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내가 최고로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아내는 나와 혈액형조차 다르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고맙고,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제 아내와의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영화 '바닐라 스카이'의 톰 크루즈와 페넬로페 크루즈




반짝이는 눈동자, 빛 나는 그녀


2012년 8월 19일 오후 2시, 서울 학동역 커피빈에서 처음 만난 그녀는 활기에 차 있었고,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도 단연 눈에 띄었다. 밝은 미소와 자신감 넘치는 눈빛은 마치 어둠 속의 불빛처럼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당겼다. 나는 조용히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와는 다른 그녀의 활기찬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우리가 준비한 MT 일정 기차기와 스피드퀴즈 등 다양한 게임들이 오전부터 저녁까지 계속되었다. 저녁 식사가 끝난 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곤에 지쳐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몇 명은 촛불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고요한 밤, 은은한 촛불의 빛 아래, 속삭이는 이야기와 웃음소리가 어우러질 때쯤 시간은 새벽을 향했다.


MT가 끝난 후, 그녀와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알게 된 지 오래지 않았지만,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주제로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나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재미와 감정의 깊이를 느꼈다.


나는 아내와의 대화와 만남을 기다리게 됐다. 그녀가 파전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나는 매일 기우제를 지내며 비가 오길 기다렸다. 비가 오지 않는 날에는, 한강에서 즐기는 치맥은 비 오는 날의 파전에 버금가는 낭만이라며 그녀를 설득했다. 약속이 잡히면, 나는 그녀의 회사 맞은편 맥도널드에서 신문을 보며 그녀의 퇴근을 기다렸다. 신문을 펼치고 있는 나의 시선은 언제나 문을 향해 있었다.


2012년 가을에는 아스팔트 위 작은 물웅덩이들이 생길 만큼 비가 자주 내렸다. 그녀와 나는 이제 막걸리 집의 단골손님이 되어, 창가에 자리 잡고 빗방울들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작은 우산 하나를 함께 쓰고 오느라 어깨와 바지는 비에 젖어 있었고,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유행이 지난 90년대 가요가 우리의 이야기를 감쌌다.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가 한두 번 비워질 때쯤, 나는 조금 취한 듯 바보 같은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난 내가 가진 사랑을 다 써버린 것 같아."


그 순간 그녀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이 바보야, 사랑은 가진 걸 쓰는 게 아니라 생겨나는 거야." 


시끄럽게 울렸던 90년대 가요와 거친 빗방울 소리,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소음이 잠시 꺼진 듯한 적막 속에서, 나는 떨구었던 고개를 들어 그녀의 반짝이는 눈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서 나는 지금뿐만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미래까지 그녀에게 빠져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는 글처럼 그녀를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내 마음은 확고하고 변함이 없다고 그녀에게 말하며, 한 편으로는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나와 친구로 지내고 싶어 했던 그녀는, 마치 사춘기 소년처럼 애쓰는 나를 보며 고민에 빠졌고, 때로는 관계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녀를 향한 결심


2012년 10월 22일 저녁 8시, 그녀는 강남역 11번 출구의 계단을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 관계에 대해 생각해 달라는 나의 부탁을 받고 며칠 동안 고민한 끝에 연락을 해온 그녀였다. 강남역 11번 출구 계단을 올라오는 그녀의 걸음은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느리게 느껴졌다. 한 계단 한 계단을 오르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이 순간을 눈과 마음속에 깊이 새기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할 미래에 대한 결심을 굳혔다.


"지금부터는 나를 만난 것을 후회하지 않게 해 줄게"


그 순간, 나는 소년에서 남자로 다시 태어났다. 나의 삶은 그 순간부터 새롭게 시작되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독특한 삶과 꿈을 추구하던 소년은 내 안에서 사라지고, 오로지 그녀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내 안에서 최우선으로 자리 잡았다. 그녀에게 좋은 남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회사 일도 집안 일도 그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나는 바보 온달처럼 살아왔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그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영화 클래식 중 / 김현중, 그랬나 봐]
넌 언제나 나를 꿈꾸게 하지 지금보다 더 좋은 남자 되고 싶다고 (...)


그녀는 나를 더 좋은 남자가 되도록 꿈꾸게 했다. 나는 혼자서는 할 수 없던 일들도 척척 해내기 시작했다.

그녀가 내 삶에 들어오면서,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영화 '클래식' 대한민국 최고의 멜로 영화다




나를 비우고 네가 마실 사랑을 채운다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준 기억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슬퍼했던 순간이 기억에 더 강렬히 남는다. 나는 부모님이 도와주셨음에도, 결혼하는데 넉넉한 돈이 없어서 매달 월급을 아껴 쓰며 결혼 자금을 조금씩 충당했다. 하지만 얼마나 아꼈는지 커플링으로도 하지 않을 정도로 보잘것없는 실반지를 결혼반지로 정했고, 결혼식에 입는 한복을 종로에서 가장 저렴한 한복집에서 샀다. 우리는 아낄 수 있는 건 최대한 아꼈다. 돌이켜보면 아내에게 미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결혼을 앞둔 추운 겨울, 우리는 '커피소년'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 소극장을 찾았다. 나는 '나를 비우고 가 마실 사랑을 채운다'라는 가사의 '커피잔'을 좋아했다. 아내는 커피소년을 좋아한다고만 했지, 특별히 좋아하는 곡을 말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10분 정도 늦게 도착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관객들 사이를 비집고 앉았다. 불 꺼진 소극장의 힘없는 조명 속에서, 커피소년이 '그대 내게 올 때'의 전주를 피아노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순간, 그녀의 눈가에 눈물을 맺히고 있었다. 조명이 비치는 그녀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이 반짝였다.


[커피소년, 그대 내게 올 때]
그대 내게 올 때  백마 타고 오지 않아도 그대 내게 올 때 반짝이는 선물 없어도
그대 내게 올 때 날 알아보는 눈빛 하나로 그걸로 나는 충분해요
남은 된장찌개 먹어도 함께 버스 타고 다녀도 들꽃 따다 안겨줘도 나는 좋아요
변치 않는 그대 있다면 나만 사랑하는 그대라면  나는 모든 걸 가진 사람인 걸요

작은 모니터로 영화 보고 신김치에 라면 먹어도 추리닝 입고 걸어도 나는 좋아요
변치 않는 그대 있다면 나만 사랑하는 그대라면 나는 모든 걸 가진 사람인 걸요
그대 내게 올 때 거추장스러운 이름 없어도 그대 내게 올 때 억지스러운 부푼 꿈 없어도
그대 내게 올 때 날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그걸로 나는 충분해요


그녀는 노래가 끝날 때까지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주위의 관객들도, 노래를 부르는 커피소년도 힐끗힐끗 쳐다볼 만큼 그녀는 눈물을 쏟아냈다. 콘서트가 끝난 후, 나는 그녀에게 왜 울었는지 물었다. 그녀는 노래 가사가 우리와 너무 닮아서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 나는 가사를 천천히 읽어보았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의 사랑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주는 그녀가 고마웠고, 그런 나를 사랑해 준 그녀에게 한없이 미안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를 비우고 네가 마실 사랑을 채운다'는 커피소년의 가사처럼, 내 안에서 나를 더 지워내고 그 자리를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는 다짐으로 채우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그녀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가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했다.




우리 신혼집, 17평 주공 아파트


결혼 후, 우리는 17평 주공 아파트에서 전세로 신혼을 시작했다. 나는 아내에게 '인테리어 귀신'이 씌었다고 놀렸지만, 작은 아파트를 예쁘게 꾸미고 싶은 그녀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다. 만약 그렇게 해서 우리가 사는 집을 더 사랑하게 된다면, 원하는 대로 인테리어 소품들을 사길 바랐다.


17평 주공 아파트에서 시작된 우리의 신혼은 비록 소박했지만, 함께한 순간순간이 소중했다. 좁은 공간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에게 더 가까워졌고, 작은 것 하나하나에 행복을 느꼈다. 우리의 신혼집은 비록 작았지만, 그곳에서 우리는 큰 사랑을 키워나갔다. 나는 그녀와 함께라면 어디서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의 슬픔


살다 보면 행운이 가득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법이다. 나의 아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녀는 긍정적인 미소로 좋은 기운을 불러 모으며, 누구나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아내가 유산을 겪게 되었다. 내 인생의 불행들이 내 안에만 머무르길 간절히 바랐지만, 아내가 나를 만난 죄로 그 불행이 그녀에게 전가된 것 같았다. 유산 소식을 홀로 들은 아내를 빨리 만나기 위해 서둘러 퇴근하는데, 회사에서는 왜 이렇게 빨리 퇴근하냐며 욕설을 퍼부으며 나를 붙잡았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와 불 꺼진 17평 작은 집 소파에 앉아 있는 아내를 꼭 안았다. 아내는 평생 한 번도 그렇게 울어 본 적 없는 사람처럼 내 품에서 펑펑 울었다. 살면서 이처럼 무능하고 스스로 원망스러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커피소년의 노래를 들으며 울었던 아내를 봤을 때에도, 유산으로 힘들어하는 아내를 지켜봐야 했을 때에도, 내 생각은 같았다. 그녀의 불행은 내 잘못이라고, 내가 조금 더 잘하고, 조금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그냥 앉아 있을 수는 없다고... 어려운 선택을 하고 나에게 와준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줘야겠다고. 아니, 최대한 불행은 내가 짊어지고 남은 작은 행복을 아내에게 주어야겠다고...


나의 삶이 영화의 한 장르라고 하면, 나는 로맨틱 코미디로 정하겠다.

어쩌면 이 시대 아버지들의 삶이 아내를 위한 로맨스이고, 가족을 위한 휴먼 드라마일 것이다.


여보, 그림 속에 내 머리가 너무 커!




우리가 사는 이야기


우리가 사는 삶은 '이야기'다. 우리의 삶은 슬픔이 있기에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며, 그 안에서 역경을 이겨내기에 아름답다. 그러나 가끔은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들이 우리의 인생에 불쑥 찾아오기도 한다.


그녀를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꿈꾸게 한 초밥왕 친구를 불의의 사고로 잃게 되었다. 친구의 아내로부터 소식을 접한 후, 삼일 동안 상가집에서 말없이 자리를 지켰다. 상여를 지고 화장하는 것을 지켜보고 내 손으로 흙을 덮어주며 친구에게 잘 가라고 인사하는 순간에도 울음이 나지 않았다. 나는 장례를 마치고 분당 자취집이 아닌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부모님은 아들 걱정에 고기라도 사 오겠다며 외출하셔서 집에 계시지 않았고, 나는 소주 두 병을 사들고 부모님 집 거실에 홀로 앉았다.


소주를 반 병 정도 원샷하듯 마셨을 때쯤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어머니는 급히 고기를 구워 내 앞에 내어주셨다. 나는 그제야 목이 터져라 울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무 위로도 하실 수 없어서 말없이 나를 지켜보셨다. 장례를 치른 후,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친구 아내로부터 전해줄 것이 있다고 연락이 왔다. 나를 대신해 삼총사 중 나머지 한 명이 친구가 평소에 차고 다니던 명품 시계를 받아왔다.


친구 아내는 평소부터 친구가 나에게 선물로 주고 싶어 했다고 했다. 10년을 그 시계를 차고 다니며 기쁜 일,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얼마 전, 나만큼 친구를 그리워하는 다른 친구에게, 먼저 간 친구와 나처럼 10년을 함께 하길 바라며 시계를 전달해 주었다.


친구가 명을 달리했을 때, 아내가 옆에 있었다. 혼자였으면 수심 100미터 밑으로, 아니 영원히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겠다고 했을 텐데... 내가 수면 아래로 고개를 숙일 때면, 아내는 나와 함께 바다 밑을 들여다보며 같이 슬퍼했기에 나는 가능하면 바다 밑을 들여다보지 않으려 했다. 영화 '인셉션'을 보면 마음속 가장 깊은 곳 비밀 번호가 있는 금고에 자신의 비밀을 감추어두는데, 나의 슬픔을 가장 깊은 곳 어딘가에 우선 넣어두기로 했다.


우리는 결혼을 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기에, 정인의 '오르막길'처럼 결혼을 하면 정상에 올라, 영화 '어바웃 타임'처럼 행복하게만 살아가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정작 현실은 드라마 '고백부부'처럼 나 혼자를 건사하기도 쉽지 않았다. 내가 아내와 결혼하고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할 수 있었던 건 고작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용식이'처럼 순수하게 아내를 변함없이 사랑해 주는 것뿐이었다.


나는 나와 결혼하고 힘든 시간을 살아준 아내가 참 고맙다. 그렇기에 오늘의 사랑 한 국자를 더한다.


용식이는 촌스러워도, 용기와 변하지 않는 사랑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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