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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u Ming Jun 23. 2024

박쥐가 날아다니는 퇴근길

호구여도 괜찮아 #23 : 하악골융기 (골)



⑥ Q사의 마지막 검증, 양산성 평가


2018년 12월, 글로벌 Top인 Q사의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도 벌써 2년 반이 흘렀다.

우리는 2년 반 동안 고객 구매, 엔지니어팀의 승인을 차례로 받았고, 대량 수주를 받은 지도 3개월이나 되었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회사를 발굴해 고객으로 만들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까지, 길어도 일 년이면 노력의 결과물을 수확할 수 있었다. 그러나 2년 반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헤쳐 나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2018년 12월 24일의 크리스마스이브는 잊을 수 없다. 

아침 7시 30분, 우리 팀은 마치 전쟁에 지친 군인들처럼 무거운 발걸음으로 숙소에서 나눠주는 테이크아웃 식사를 챙겼다. 우리 팀은 지칠 대로 지쳐, 차에 타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고 계획된 출발시간을 초과하기 일쑤였다. 내가 차 앞에 서서 다독이고 재촉하고 때로는 윽박이라도 질러야 겨우 8시 즘에는 차가 출발할 수 있었다.


나는 항상 선두 차의 조수석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전날 야간조가 남긴 인수인계 사항과 고객의 재촉 이메일, 위챗(중국판 카카오톡) 메시지를 확인했다. 마지막 업데이트를 확인한 지 네다섯 시간밖에 되지 않았고, 야간조가 분명히 근무하고 있었음에도 수십 개의 위챗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중 내가 @로 지목된 열 개 정도의 메시지에 답하고, 나머지는 후배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대화방의 질문에 답하라고 지시했다.


후배도 지칠 대로 지쳐 출근하는 30분 동안 쪽잠이라도 자야 했다. 그러나 날이 선 나의 목소리에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대답하는 후배의 목소리가 애처롭게 느껴졌다. 후배가 기대만큼 따라주지 못하는 날에는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날의 신경질적인 태도가 6년이 지난 지금도 후배에게 창피하고 미안하다. 아직도 그 후배를 만나면 술잔을 들기 전, 심심치 않게 다시 한번 사과하곤 한다.


차에서 내려 고객사에 도착하려면 쓰레기가 쌓인 좁고 냄새나는 공사장 옆 샛길을 15분 정도 걸어야 했다. 3개월 전, 고객사로부터 수주를 확정받기 전까지는 걸어가면서도 모든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확정을 받은 후에는 걸으면서 메시지를 보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대신, 걸어가는 동안 리더로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내가 맡은 일에 대해 책임을 다하고, 가능하면 사람들을 위로하고 독려하자고 다짐했다.


고객사의 복잡한 입문 과정을 거쳐 공장 1층에 도착하면 특유의 발 냄새가 진동했다. 우리는 초등학생처럼 신발주머니에서 실내화를 주섬주섬 꺼냈다. 실내화를 깜박한 날에는 양말을 신은 채로 방금 물청소가 된 고무바닥을 밟아야 했고, 그렇게 되면 하루 종일 발이 축축해졌다. 그렇기에 실내화는 필수품이었다. 1층에서 벤더룸(공급업체 사무실)까지 멀었기에 우리는 계단을 두 개씩 올라가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홍수처럼 쏟아지는 중국 위구르족 직원들을 요리조리 피해 최대한 빨리 사무실에 도착하곤 했다.


벤더룸에는 항상 발냄새가 진동했다.


숙소에서 사무실까지 족히 한 시간은 걸렸기에, 도착하면 벌써 기운이 다 빠진 것 같았다. 그러나 전날 밤을 새운 야간조 5명의 업무를 빨리 인계받아야 그들도 퇴근할 수 있었기에 최대한 집중해서 인수인계를 받았다. 어떤 부분에서는 왜 즉각 대응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는지 묻고 싶었지만, 밤을 새운 이들에게 최대한 미소를 지으며 "고생했다"는 인사와 함께 빨리 들어가서 쉬라고 전했다.


의자에 잠시라도 앉고 싶었지만 BOD(Beginning of Day) 미팅이 시작되었다. BOD에 참석하려면 고객이 일하는 대형 사무실을 지나가야 했다. 사무실 문을 열면 고객들이 신기하거나 경계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곤 했다. 처음에는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 문을 여는 일조차 쉽지 않았지만, 1년 정도 매일 반복되니 그런 부담은 사라지고 의자에 앉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고객은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로 수십 개의 질문을 쏟아냈다. 어떻게 이렇게 궁금한 것이 많을 수 있는지 놀라울 정도로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이미 달인 수준에 오른 후배는 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회의록을 영어로 정리하고, Action item을 고객과 리뷰한 후 메일로 공유했다. 어떤 사람들은 개인 능력이 회사 크기에 비례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것을 알면 좋겠다.


BOD로 한 시간을 고객에게 고문받은 뒤 사무실로 돌아가면, 사람들은 숙소에서 나눠준 테이크 아웃으로 끼니를 때웠다. 테이크 아웃은 작은 종이백에 고구마 1개, 달걀 2개, 중국 우유 한팩, 옥수수 1개, 빵 1개 등으로 매일 조금씩 다르게 들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소박한 테이크 아웃을 조금씩 나눠 아침부터 저녁까지 먹었다. 나 또한, 잦은 회의 때문에 식사 시간을 맞추지 못할 때가 많아 점심과 저녁을 위해 달걀 하나라도 남겨 두려고 노력했다. 벌써 6년이나 지났지만, 눅눅한 종이백에서 손을 넣어 달걀을 꺼낼 때 달걀 위에서 느껴지던 미끌거리던 촉감과, 빵에서 나던 종이 냄새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자리에 앉은 것도 잠시, 고객과 공유한 회의록을 내부적으로 모든 인원과 리뷰하고 해야 할 일을 나누어 피드백을 부탁했다. 나와 후배는 전화기와 메신저, 메일 그리고 액션 아이템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특히 회의록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으면 답답한 마음이 혀 밑까지 차올랐다. 왜 이걸 스스로 해결해내지 못하는지 조금만 더 주동적으로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팀원들의 얼굴을 보면 당장이라도 사표를 쓰겠다는 얼굴들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독려하고 다시 한번 부탁한다는 말을 더할 뿐이다.


오전부터 고객 몇 명이 벤더룸에 여러 번 들이닥쳐 자신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 달라며 화를 내거나 떼를 썼다. 처음 만나는 중국 고객들은 우리가 있는 사무실에 들어오면, 기선 제압을 위해 큰 소리로 나를 찾았다. "PM! 어디 있어?"라며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고객에게 웃으며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했고, 그들의 무례한 태도를 참지 못할 때는, "나는 여기 있으니 조용히 부르세요"라고 응수하기도 했다.


정신없이 대응하다 보니 어느새 12시가 가까워왔다. 점심을 거르고 MOD(중간 미팅)를 준비했다. 1층 회의실에 도착하면 미국인, 캐나다인, 인도인, 중국인 등과 함께 앉는다. 고객은 오전에 배포한 액션 아이템의 진척도를 묻는다. "아침에 말하고 몇 시간이 지났다고? 시계도 안 봐?"라고 소리쳐 말하고 싶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지금 확인 중"이었다.


운이 좋으면 다음 미팅에서 보자는 얘기지만, 운이 나쁘면 고객과 함께 클린룸에 바로 들어가야 했다. 안타깝게도 운이 나쁜 날이 더 많았기에, 회의를 급히 마치고 클린복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이제는 클린복을 갈아입는 속도가 전문가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클린룸에서 고객의 추가 지적 사항이 늘어날 때면 정말 화가 났다. 고객을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수천 번 즘 들었다.


오후 4시, 유일하게 조금 짬이 나는 시간이다. 잠시 벤더룸을 나와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우측 복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내가 유일하게 눈치 보지 않고 숨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에어팟을 꺼내 귀에 꽂고, 이삼일에 한 번씩이라도 아내에게 전화를 하거나, 통화가 되지 않을 때는 자우림의 'Going Home'이라는 노래를 반복해서 듣곤 했다.



끝없는 파란 복도를 걸을 때면 방진 테이프에 발이 붙어 쩍쩍 소리가 났다.


[Going Home, 자우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는 햇살에 마음을 맡기고
나는 너의 일을 떠올리며 수많은 생각에 슬퍼진다
우리는 단지 내일의 일도 지금은 알 수가 없으니까
그저 너의 등을 감싸 안으며 다 잘될 거라고 말할 수밖에
더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을 것만 같아 초조해져
무거운 너의 어깨와 기나긴 하루하루가 안타까워
내일은 정말 좋은 일이 너에게 생기면 좋겠어
너에겐 자격이 있으니까 이제 짐을 벗고 행복해지길 나는 간절하게 소원해 본다




잠시라도 노래를 듣고 있으면, 노래 가사가 마치 아내가 나에게 하는 말인 것 같아, 여기서 무너질 수 없다고 끝없이 다짐했다. 나에게 주어지는 자유 시간은 보통 15분 정도였지만, 3분도 지나지 않아 고객의 호출에 불려 가곤 했다. 


드디어 오늘의 퇴근이 결정되는 EOD(End of Day) 미팅이 시작됐다. EOD가 되어도 해결된 일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고객의 심부름(무엇을 확인해 달라) 정도가 완료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이브만큼은 특별히 해결된 일이 없더라도 늦어도 10시쯤에는 퇴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왜냐하면 크리스마스는 특별한 날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오신 날이고, 산타할아버지가 다녀 가시는 날이었다. 미국 문화권인 글로벌 Q 사의 파란 눈의 고객들도 분명 오늘만큼은 빨리 퇴근해서 가족과 시간을 보낼 것이라 생각했다.


어른이 되면 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상황에 익숙해져야 할까. 

마지막 미팅 EOD는 EOD2, EOD3로 이어졌다. 어느새 크리스마스이브가 끝이 나고 12월 25일 1시가 되었다. 수많은 새벽 중 하나일 수 있지만, 크리스마스에 고객이 윽박지르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머리가 아파왔다. 아무리 고통에 익숙해졌다 해도 이렇게까지 회사를 다녀야 할까라는 자괴감이 몰려왔다. 


가장 답답했던 점은, 나는 엔지니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늘의 고통을 내일로 잠시 미루는 것뿐이었다.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 그저 욕을 먹어야 했다.


욕받이의 삶은 진절머리가 난다. 



크리스마스 새벽 4시, 드디어 벤더룸을 나섰다. 

만약 지금 내가 걷는 발걸음이 숙소를 향하면 퇴근이라고 할 것이고, 반대 방향으로 향하면 출근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했던 일은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거나 해야 할 것은, 오직 버티는 것뿐이었고, 오늘의 퇴근 시간이 아무리 늦더라도, 또다시 내일 숙소에서 나누어 주는 전투식량보다 못한 고구마와 삶은 계란을 챙겨, 냄새가 나는 출근 차에 올라야 했다. 


퇴근을 하며 앞을 보니 고객사 아치 형 대문 위에 앉아 있는 박쥐의 숫자가 평소보다 늘어 있었다. 

오늘은 박쥐들이 사냥으로 쥐라도 잡았는지 즐거운 듯 펄럭펄럭 날아다녔다. 


도대체 이것이 현실인지 악몽인지 구분이 안 되는 하루가 끝없이 계속되었다.


퇴근하면서 박쥐를 보신 적 있으세요?


여름휴가도 못 가고 중국에 있었고, 추석도 가족들 얼굴도 못 보고 중국에 있었지만, 크리스마스도 중국에 있으며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고 고통받고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누구를 탓하랴, 고객의 잘못이 아니었다. 우리 팀의 제품은 안정화가 좀처럼 되지 않았다. Q사 진입을 하려면 우선 제품의 품질부터 세계적 수준으로 먼저 끌어올렸어야 했다.  


너무나도 지쳤다.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알파팀이 있는 한, 알파팀의 시작인 나는 주 팀장님을 모시고 끝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때 내 나이 고작 서른여섯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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