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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단 Mar 30. 2024

법이 늙었다 9

사회적 구속의 유형 3

  - 사회적 구속의 유형 3

 사실 인터넷은 사회의 온갖 구속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자유를 가져다준다.

 인터넷을 통해 대다수의 사람들은 집중된 소수권력으로부터 해방되는 나름의 지위를 향유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인터넷이라는 매체는, 어마어마한 정보와, 지구상의 그 어느 곳에서든 가능한 쌍방향 대화기능을 통해, 정통의 민주제도가 꿈꾸는 직접민주정치를 실현하게 할 가능성을 품고 있는 동시에, 경제권과 통제권을 움켜쥐고 있는 기성정치세력을 비판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권력집단을 집중시키거나 분산시킬 수 있고, 이기와 아집으로 뭉쳐있는 소수 기득권 집단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와해시킬 수도 있으며,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정치를 하는 진정한 민주정체를 이룰 수 있게 하는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 현세대들이 컴퓨터와 인터넷으로부터 일구어내야 할 위대한 사명일 것이다.


 예전에 무르팍도사라는 TV프로에, 그 옛날 '이경규가 간다 / 양심냉장고'라는 프로를 만들었던 pd가 나왔었던 기억이 난다.

 그 양심냉장고라는 프로에서는, 자동차 운전자가 밤중에 사람 하나 없는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의 신호를 지키는지, 정지선은 지키는지 몰래 지켜보며,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그러지 않아도 될 듯한 상황에서까지도 정직하게 법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냉장고를 선물하여 감동과 재미를 함께 주어 크게 인기를 얻었었고, 이를 만들었던 pd는, 그 옛 작품을 다시 보며 새로운 프로를 만들어 그때만큼이나 감동을 주고 국민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성공을 이룰 수 있기를 기원하기 위해 무르팍도사에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 옛날 그 '이경규가 간다'라는 프로를 보면서 내가 느꼈었던 생각은, 솔직히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사람들의 선을 이끌어내려는 의미에서 재미와 감동까지 겸비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프로였던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내게는 사람들의 착하고 순종적인 면만을 이끌어내려 노력하는 방송매체와 프로그램 제작자들도 그랬고, 그에 더없는 감동을 느끼며 동조하는 국민들도 모두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왜 사람들은 마냥 착해야 하고, 타인의 말에 마냥 순종적이어야만 하는 건지, 현재의 지리멸렬한 상태에 반발하고 그에 의견을 내고 좀 더 발전적인 발상을 할 수도 있는데, 그 가능성보다는 순종만을 강조했던 당시의 상황이 내게는 숨 막히는 답답함으로 다가왔었던 것이다.

 그때 그 프로를 보면서 느꼈던 그 답답함이, 세월이 많이 흐르고 사회가 많이 발전하고 변화했다는 상황에서 보아도 역시 마찬가지였고, 무엇보다 답답했던 사실은, 그때나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나, 사람들의 그 순진하도록 순종적인 단순함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여전히 오밤중에 사람하나 없는 횡단보도에서 파랗게 켜진 신호를 지키고 서 있는 운전자가, 양심 있고 법을 잘 지키는 훌륭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 이 단순한 사람들을 어떤 방법으로 설득하고 이해시켜서 자동차의 흐름을 위해 그보다 좀 더 좋은 체계도 있을 수 있음을 설명할 수 있을지 막막해 보이기만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건널 사람이 없는 횡단보도에 자동으로 파란불이 켜지는 신호체계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고 있었다.

 도로의 횡단보도 신호체계는, 건너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사람들 스스로 버튼을 누르거나 다른 방법으로 명령하거나 하여 명령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신호등이 켜지도록 하는 유럽의 수동신호등시스템이 더 효율적이다. 그렇게 해두면 건널 사람이 있으면 신호체계가 가동되고, 건널 사람이 없으면 가동되지 않아, 자동차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교차로에는 자동신호등이 필요할 수 있겠으나, 그 역시 유럽과 같은 로터리 방식을 채택하면 수동신호등과 함께 교통의 흐름을 좀 더 순조롭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캄캄한 밤중에 사람이 있으나 없으나 자동으로 켜지는 멍청한 신호등을 만들어 놓고, 그에 두말없이 순종하는 것만이 착하고 올바른 도덕을 가진 사람이라고 믿는 이 순진한 사람들은, 세월이 지나도 조금도 변함이 없고, 그래서 그 멍청한 신호체계에도 전혀 변함이 없고, 오래 전의 그 둔한 신호체계는 아직도 변함없이 쓸모 있는 체계로 남아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면, 그릇된 체계를 바꾸고, 효용가치 있는 살만한 사회로 만드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일부터 해야 하는데, 그 일이 그리 간단치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쉽사리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그 순종적인 생각체계는 조선시대부터 일반 서민들의 생각을 지배해 온 유교사상에서 유래되었고, 그 유교사상은 한국사람들의 생각 깊은 곳에 뿌리깊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유교사상부터 좀 들여다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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