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속 불만족한 군주
- 우물 속 불만족한 군주
이 세계에는, 나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을 주체로 한 각자의 성 안에, 나름의 사고와 감정으로 자아를 쌓고, 완벽한 군주로 군림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 모두가 각자의 성 안에서는 가장 권위 있고 강력한 제후이고 왕이며 존위 있는 절대권력자들이다.
그들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소수의 인간과 한정된 범위 내에서 제한된 사회만을 상대로 하고 있어, 그 능력의 분계점마저 찾아낼 수 없으면서도, 늘 이성과 감정을 토대로 사회 전체를 저울질해 보고, 자신의 의지가 용납하는 한도에서만 주위를 허락한다.
그들의 가치가 비교되고 비판받고 하락하는 이유는, 그들 각자가 자신의 성 안의 왕으로만 만족하지 못하고 타인까지 지배하려들기 때문일 것이다.
'만족한 돼지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낫다.'고 하고, 인간의 문명은 불만족으로부터 기인된 것이라고 한다.
더 나은 것을 원하는 욕구, 이보다 발전되고 풍요로운 어떤 것 때문에, 인간들은 자신의 성 안의 군주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타인의 것을 넘보고 탐내고 침범하려 하는가 보다.
남에게 지고 싶지 않은 세속적인 욕구가 인간을 만족한 돼지로 만들지 않고, 일하게 하고, 발전하고, 번창하게 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만족할 줄 모르는 탓에, 갈등을 일으키며 살아간다.
쾌와 불쾌의 이중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지만, 끝내 불쾌에 지배되어, 지치지 않고 불만한다.
더 큰 집을 사고 싶어 하고, 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싶어 하고, 더 아름다운 것들, 더 많은 재화를 소유하고 싶어하고, 더 더 더에 집착한다.
재화는 분명 인간 생활과 문명의 발전에 필요하여, 인간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인데, 이에 집착하는 인간의 욕망 때문에, 오히려 재화가 인간의 삶의 목적이 되어버리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결국 이 세상은 재화의 다소에 따라 능력이 판가름되고 권위가 부여된다.
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이 풍부한 재화의 영유를 그것으로 하고, 땀 흘려 일하는 이유가 오로지 금전의 축적이라는 사실에 제한되고 구속되어, 정치와 교육, 하다못해 종교의 우두머리들까지도 재화의 축적에 혈안이 되어 있다.
돈을 얻으려는 수단으로 악과 거짓이 성행하고,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역량이 재화의 권위에 짓눌려 말살되어가고 있다.
지금과 같은 경제논리에 의해 사회가 굴러간다면, 선하고 능력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재화의 다소에 의해 경쟁에서 도태되고, 그 후에 남는 인간들은 오로지 금전에 눈이 어두운, 추하고 욕심 많은 족속들뿐일 것이다.
미래에 다가올 세상에는 안 봐도 뻔한 지옥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렇다고 충족한 상태에서 마냥 안주하고 쉬려드는 나태한 인간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빈한 나를 발견하여 가득한 모습이 되기 위해 쌓아가는 내가, 이 사회를 발전시켜 온 동력이 되어온 것도 사실이긴 하다.
문득 난 인간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생각과 의지에 의존하여 사리를 판단하는 일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닐 수 있다. 나를 주체로 한 판단은 우물 안에 갇힌 모순덩어리 제왕의 아집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충분히 지각했다고 믿었던 사실조차 이기적이고 현실성 없는 논리에 지나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내가 이 우물 안을 벗어나 더 큰 세상으로 나가면, 과연 저 넓은 초원에서 더 강하고 커다란 동물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남을 수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