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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 과수원 52

거울 속의 나

by 주단

- 거울 속의 나


마음에 갈등이 생겼을 때 무심코 거울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있다. 방 안에 거울이 차지하는 면이 많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적인 갈등을 외면에서 찾아보려는 의도였을까.

들여다본 거울 속에 내 모습이 비치고, 그 모습과 친숙해지려 애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헝클어진 머리도 정리해 보고, 게슴츠레한 눈도 부릅떠보고...


낯설다. 거울 속의 얼굴이 무척 생소하다고 느낀다.

저 모습을 갖춘 인간이 왜 '나'라는 걸까. 누가 저 모습이 '나'이어야 한다고 단정 지었던 걸까.


어쩌면 마음에 갈등이 생겼을 때 일기를 쓰는 것은, 거울을 보고 헝클어진 머리를 빗는 일과 같은 연유에서인지 모른다. 흔들리는 마음을 정돈하고 영혼이 순수해지도록 스스로의 내부를 정화시키는 일과, 거울을 보고 외모를 정돈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하다. 모두가 나라는 인간이 깨끗하고 정돈되기를 바라는 데에서 일치하니까.


내게는 영과 육신의 세계를 분리해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현실의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정신적인 세계를 추구함으로써, 자의식을 느끼고 스스로에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영적 세계로 찾아들어가기를 즐겨하고, 그 속의 자양분을 받아들이는 일이 즐겁다.


영적 세계 속에는 영상과 의식이 있지만 감각이 존재하지 않는다. 끝없이 방황하여도 육신적 피로나 고통이 따르지 않고, 아픔과 고뇌로 눈물 흘려도 생리적인 작용은 일어나지 않는다.

빛과 어둠은 그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삶만이 존재할 뿐 죽음에의 두려움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늘 추함을 극복하고 이겨내고, 맑고 깨끗함으로써 더러움을 소각시켜버린다.

한없는 자유와 즐거움이 있어, 구속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완전함이 존재하고, 선과 참의 의미가 숨 쉬고 있으며, 신이 내재하고 있거나 그 자신일 수도 있다.


삶이란 건 대체 무엇일까.

삶이란 건 탄생에서부터 고통이 따르고, 끊임없는 변화와 혼잡을 이루다가, 허무한 죽음으로 맺어지고 만다.


인간이란 건 다만 영혼과 육신의 세계를 연결 짓는 다리에 불과한 건 아닐까.

한쪽에는 공간이 존재하고 시간과 흐름이 있고 변화가 있지만, 다른 한쪽에는 불변과 이상과 선이 존재한다.


그러나 어느 쪽이나 다 서로에게 밀접해야 하고, 서로에게 한 귀퉁이를 의지해야 버티고 존재해 낼 수 있다.

영의 세계는 현실을 무대로 하여 그 그림자를 비추이고 있고, 현실세계는 존재의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한계가 있고, 그 안에서는 실행착오가 끝없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육신이나 영혼이나 모두 다 나라는 인간을 이루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만은 사실이다.

육신의 부정은 존재의 부정이고, 존재가 없는 곳에서는, 선이나 가치의 개념도 사라진다. 무존재의 무의미만이 남는다.


때로는 지나친 가치추구의 세상에서, 삶의 테두리와 지친 육신 안에 갇혀버린 영혼을 자유로이 놓아주고, 무존재의 무의미를 한없이 그릴 때도 있다.

다만 그 무존재의 무의미가 무한한 자유와 여유를 의미할 것인지, 불안하고 위협적인 또 다른 시간 속에서 또 다른 투쟁의 장이 연출되는 것은 아닐지, 그 불확실성에 자신할 수 없어, 자신을 함부로 놓아주지 못하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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