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과 영화평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10 - 이상과 현실 2
내가 해석한 이 책의 의미가, 작가 자신이 의도했던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전 소설들이 그렇듯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되는 인간들의 희로애락을 읽다 보면, 공통적으로 내리게 되는 결론은 거의 한결같음을 느낀다.
인간들은 대부분 궁극적으로 선과 이상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이 책에서도 그 사실을 찾아내 보자.
이 책의 내용에서 주의 깊게 볼 점은, 스칼렛의 현실주의가 레트의 탐욕주의나 냉소주의와 닮은 듯하면서도 끝내 일치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스칼렛은 처음부터 이상주의자인 애슐리를 흠모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상을 지향하고 있는 현실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스칼렛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애슐리를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일편단심 그와 그의 가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애슐리가 스칼렛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과 같은 성향의 멜라니를 택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고, 멜라니가 그녀의 연적임에도 아랑곳 않고, 전쟁 중에 그녀의 출산과 아기들을 돌보는 부분에서도 한결같다.
단지 멜라니를 돌보아 달라는 애슐리의 부탁 한마디를 흘려듣지 않고, 스칼렛은 전쟁의 공포 속에서도, 산고와 사투를 벌이는 멜라니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옆에서 지켜낸다.
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고향땅 타라를 일으켜 세우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도, 애슐리와 멜라니 그리고 그들의 아들, 보를 돌보겠다는 그녀의 책임감은 굳건히 남아, 그들의 생계를 끝까지 책임진다.
그러나 물질만능으로 치닫는 스칼렛의 모습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민한 애슐리는, 그녀를 떠날 결심을 하게 된다.
스칼렛은 애슐리를 놓치지 않으려, 멜라니를 동원하여 설득하고, 애슐리는 결국 그녀의 곁에 남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이상을 품에 안고 그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역경과 싸우는 현실과, 이상을 위해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결국은 현실의 도움으로 안주하게 되고, 현실의 생명력과 끈기를 사랑하고, 그 부작용까지도 끌어안고 사랑으로 감싸는 이상의 실체를 보게 된다.
타라를 일으켜 세우는 과정에서 현실, 즉 스칼렛은 몇몇 남자들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그 첫 번째가 동생의 연인이었으나 그녀가 가로챈 프랭크, 즉, 실리주의이고, 두 번째가 레트 버틀러, 즉, 탐욕적 냉소주의이다.
이 두 남자의 도움으로 스칼렛은 타라를 전쟁의 폐허에서 일으켜 세우고,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나, 실제로는 그 두 사람을 전혀 사랑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속으로는 늘 애슐리만을 사모한다.
어쩌면 그녀가 그토록 안간힘으로 존재하는 이유 자체가 애슐리, 즉, 이상 때문임을 짐작하게 한다.
이상과 닿기 위한 노력과, 그를 위한 생존 수단으로써 실리주의와 결혼했고, 탐욕주의를 이용했으며, 때로는 그들의 그림자에 가려 이상의 실체는 보잘것없이 비치기도 했지만, 현실의 내부에는 늘 이상을 향한 연민과 열정이 숨 쉬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탐욕주의 레트는 그 근본을 알 길 없는 막강한 부의 위력과 탐욕스러운 사랑, 즉,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충족의 결과로써, 한 때 스칼렛을 완전히 소유한 듯 보이지만, 특유의 방탕함과 냉소적인 태도로 순간순간 스칼렛과 어긋나기만 한다.
그는 끊임없이 욕심내고 방황하고 질투하고 조롱했으며, 그로 인해 그에게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 스칼렛을 외면했고, 사랑하는 딸을 잃었다. 이 또한 탐욕주의와 냉소주의가 안고 있는 허망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그는 자신이 원하던 모든 것을 얻고 가졌지만, 그것이 그에게 충분한 만족감을 가져다주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레트와 함께 등장하는 여인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창녀 벨 와틀링이다. 그녀는 이상을 포기하고 삶의 뒤안길로 빠져든 허무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여기서 레트의 탐욕주의와 냉소주의는 창녀 벨의 허무주의와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레트는 창녀 벨에게서 가장 큰 위로와 안정을 얻는다. 그러나 그녀를 창녀로써 이용할 뿐, 아내로 맞이할 생각은 전혀 없다.
레트가 창녀를 찾는다는 사실은 스칼렛이 레트를 경멸하고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스칼렛은 현실을 놓아버린 허무주의 벨을 경멸하고, 그와 뿌리가 맞닿아 있는 탐욕주의 레트를 혐오한다. 끝없는 탐욕은 끝없는 불만을 낳고, 그것은 결국 허무와 직결되는 지름길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허무주의 벨은 자신을 저버린 현실 스칼렛을 미워하고, 탐욕주의 레트를 이용해 스스로를 부지해 나가면서도, 레트나 창녀 벨 모두 이상주의 즉, 멜라니나 애슐리에 대한 존경심과 신뢰감은 지극히 한결같고, 헌신적이기까지 하다.
그것은 그들 모두가 이상을 열망하고, 이상을 존속시키기 위한, 한 줄기의 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그러나 이상은 현실과 결합되기 위해 벽을 뛰어넘어야 했다.
여기서 '벽'이라는 것은 멜라니로, 그녀와 연관된 결혼과 종교와 관습이라는 사회적 예속을 의미하고, 이를 통해 애슐리와 스칼렛의 결합을 불가능하도록 막아버린 데에 있다.
따라서 멜라니는 종교를 포함한 사회의 온갖 제도와 구속을 뜻하기도 한 듯하다.
스칼렛과 애슐리는 그 구속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서로를 열망하면서도 벽 너머로 서로를 바라보기만 하다가, 막상 멜라니의 죽음으로 그 벽이 허물어지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힌다.
애슐리는 마치 멜라니의 구속만이 그를 지탱하고 있던 전부였던 양, 우유부단하고도 자신 없는 모습을 드러내는 반면, 스칼렛은 막상 애슐리와의 결합을 앞두고도, 그녀에 대한 애슐리의 사랑이 진심이었는지 의심하며, 탐욕주의 레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멜라니의 죽음은 스칼렛과 애슐리의 결합을 암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마치 각종 종교나 사회제도나 관습들이, 마치 이상과 현실의 결합을 위한 존재인 듯 보이나, 실제로는 현실과 이상의 결합을 가로막고 있어, 그것이 사라지지 않고는, 이상과 현실이 결합될 수 없는 현실사회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스칼렛은 애슐리와의 결합이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것이었음에도, 막상 이상과의 결합 앞에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며, 레트를 찾아가 그에 대한 미련과 사랑을 호소한다.
그것은 애타게 원하던 이상실현 앞의 인간의 변덕과 변절의 가능성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레트는 이상과 현실의 결합 앞에 존재하는 탐욕의 부조리함을 깨닫고, 스스로 현실을 떠나는 결단력을 보여준다.
그의 탐욕주의와 냉소주의로서는, 이상과 함께 현실을 공유하는 일이 그 성격상 불가능한 일임을 여실히 깨달은 탓일 것이다.
그럼에도 현실 스칼렛은 변함없이 그녀를 지지해 주던 레트에게 미련을 보이며, 아직도 그녀에게 내일이 있음을 빌어, 또 다른 가능성과 망설임을 저울질한다.
바로 이상과 탐욕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인간의 본질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