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12 - 최종평

독후감과 영화평

by 주단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12 - 최종평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의 가장 큰 원인은, 인간사회가 그토록 성스럽게 떠받들고 있는 종교에 의한 것이다. 또한 타협과 용서보다는, 저주와 사투로써 응수하고 있는 인간사회의 근본에는, 항상 이념이 있고, 자국과 만인을 위한다는 대의가 있어 왔다.


그것들이 자신들의 욕심을 위장하는 그럴싸한 합리화 수단임을 잘 아는 일부 정치가들은, 국민들의 맹목적인 애국심과 신앙심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그들의 경쟁자들을 물리칠 줄을 알았다.

그리하여 이 사회에서 전쟁은 그칠 줄을 모르고, 그를 이용한 정치 경제활동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항상 정의감과 이상을 향한 열망이 있었다고 보인다. 그래서 정치가들이 종교와 이념을 위한 투쟁을 부르짖을 때, 사람들의 가슴 밑바닥에는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희망이 담겨 있어, 이를 조금이나마 투쟁을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막상 실현이 가능해진 이상 앞에서는 갈등하고 회의하며, 또 다른 가능성을 저울질하곤 한다.

현재 자신의 이익과 충돌하는지 가늠해 보고, 그러다가 그 개념조차 모호한 것으로 단정 짓거나 이상실현을 불가능한 것으로 치부하여, 그 실현가능성을 먼 훗날의 일로 미루어버리기도 한다.

그 같은 현상은 비단 예수를 배신한 유다와, 예수를 처형한 로마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역사를 통해서도 두루 나타나고 있다.


무언가를 열망하고 가지고 싶어 하다가도, 막상 이를 가지게 될 가능성이 보이면, 그동안의 열망이 허망으로 바뀌고, 무엇을 원했는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워하는 존재가 인간인 것 같다.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인 스칼렛도 마찬가지의 갈등과 심경변화를 보인다.


레트가 스칼렛과 자신을 지칭하여 했던 말, ‘이기적인 배신자’라는 말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눈앞의 자신의 이익과 생존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방법도 합리화하고, 이상을 저버리고 탐욕을 선택하려 한다. 비록 그 방법이 종국에는 자신을 비롯한 타인과 인류 전체에 커다란 손실이 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이 이기적인 배신의 행위에도 탐욕주의와 현실주의에는 분명 구분되는 면이 있다.

소설 속의 레트가 보인 탐욕이, 전쟁 중의 밀무역과 생필품 투기와 같은 수단을 통해, 오로지 자신의 부를 쌓기 위해 사용되었다면, 스칼렛이 보인 현실주의는, 자신의 미모를 이용하여 동생의 연인을 가로챈 행위가, 동생과 자신의 공동운명체 모두를 먹여 살리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데서 그 차이점을 보인다.

그런 점에서 현실은 언제나 탐욕스러워 보이는 상황에서도 탐욕보다는 이상을 향한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고 보인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독자들에게 두 가지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한 가지는 이상주의 애슐리를 저버리고 탐욕주의 레트를 찾아 나선 스칼렛 앞에 펼쳐질, 변화무쌍하지만 불안한 갈등의 연속인 현실일 것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이상주의 애슐리와 결합한 안정적인 현실일 것이다.


이상과 결합한 현실이 탐욕과 결합한 모습처럼 변화무쌍하고 흥미진진할지, 안정되고 편안하지만 단조롭고 재미없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래서 현실은 지나친 안정 앞에 망설이고 주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의 선택에 대해 늘 고민해야 한다. 우리와 후손의 앞날을 위해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 것인지, 눈앞의 쾌락과 희열을 좇아 욕망을 선택할 것인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이 소설의 후속작을 만든다는 것은 원작자가 원하는 일이 전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작가가 독자들에게 남긴, 인생의 숙명과도 같은 선택의 여지를 완전히 제거하는 일이므로, 그것은 오히려 원작의 묘미를 없애버리는 일일 뿐이다.


스칼렛은 그녀의 선택이 엮어낼 또 다른 갈등과 발전 앞에 나약한 모습을 보이며, 자신의 미래를 불안해하고 못 미더워한다.

그것이 어떤 것일지 알 수 없는 현실주의자 스칼렛은, 그 결정을 독자에게 맡기고, 자신은 부모와 같은 고향땅 타라로 찾아들어가 찬찬히 생각해보려 한다.


작가 역시 이상과 탐욕 사이에서 독자들 스스로 선택하기를 바라며 이렇게 끝맺음하고 있다.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라는 여운을 남기며…….


이 마지막 구절에 대한 번역은 여러 가지가 있다.

내가 어릴 적 읽은 책에서는 ‘내게는 또 다른 내일이 있으니까.’라는 멋진 구절로 번역되었고, 얼마 전에 읽은 개정판에서는 ‘내일은 오늘이 아니잖아.’라고 번역되어 있으며, 영화의 자막에는 ‘내일엔 내일의 태양이 뜨니까.’라는 드라마틱한 구절로 번역되어 있다.


모두 멋지고 소설적인 표현들인데, 얼핏 들어선 무슨 뜻을 담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다. 이 마지막 구절이 어떤 의미로 이해되고 번역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그 뜻 전달이 모호하다.

그래서, 나름 번역해 보았다.


‘결국, 내일은 (당신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또 다른 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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