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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단 Mar 02. 2024

법이 늙었다 1

서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이제까지 자신들이 하고 싶었던 말들을 이 글에서 대신해 주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사회에 소리 내어 말하고 싶었으나, 현실성 없는 꿈같은 소리라고 비웃고 무시당하거나, 이미 현 상황에서 충분한 이득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득권자들로부터 제지 내지는 보복이라도 당할까 두려워, 큰 소리로 말하지 못하고 꾹 참고 있었던 이야기들을 말이다.

 그리고 이제 곧 당신들도 나처럼 큰 소리로 말하게 될 것이다. 당신들의 가슴이 원하고 있고, 주장하고 싶던 말들을.


 그동안 당신들에게 불가능할 것이라 말하며 무시하고 제지하던 많은 사람들을, 이번에는 당신들이 비웃어 주면서 당당히 주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도록 하려고, 즉 사람들의 마음에 품고 있는 희망사항들을, 대놓고 말하고 주장할 수 있는 공개적 이야기 마당을, 인터넷이든 어디에든 열고자 이 글을 썼다.


 그동안 신문이나 TV나 인터넷에서 좀 배우고 깨우치고 안다는 사람들이 하는 말들이, 나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비슷하거나 본질적으로 같은 것들임을 느꺘고  또한 그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많음을 보면서, 나와 같이 생각하고 느끼고 이를 실천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결코 적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를 실제로 실현가능하게 할 길이 이미 열려 있음에도, 그 누구도 실현하려 하지 않고 있음을 보면서, 이에 작은 힘이 되거나, 이를 시작하는 작은 문을 열 수 있다면 해보고자 한다.


 남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나 자신이 남 앞에 자신의 가장 내밀한 생각을 드러내기로 결심한 것은, 세월 덕에 좀 무뎌지기도 했고, 잘 살아 봐야 죽을 일만 남은 나이 지긋한 사람이 시도해서 안 그래도 살기 힘든 젊은이들을 대변하는 것이, 대의적 측면에서도 잃을 것보다는 얻을 것이 많겠다는 생각에서이다.

 또한 한국에서 독재천하의 군정부를 겪어보았으며 그에서 문민정부로 접어드는 격변의 시대도 살아보았고, 또한 복지천국이라 불리는 스웨덴의 가장 빛나던 복지의 시기도 겪어본 사람으로서, 그 경험과 판단 내지는 계산 추론능력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을 죽기 전에 좀 해 보아야겠다는 의무감에서 쓰기 시작한 글이기도 하다.


 이 시대는 이미 모두 갖추어진 상태에서 태어나지 않으면, 실망하고 포기하고 좌절하며 살아가야 하는 아프고 가여운 영혼들로 넘쳐나고, 그런 사람들에게는 절망의 나날이 연속될 수밖에 없는 시기이어서, 없이 태어나고 없이 자라서 아프게 살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희망과 온기를 불어넣을 무언가가 압도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상향에 대한 꿈이 있다. 그 이상향은 종교에서 말하는 죽음 후에나 갈 수 있는 '천국'이거나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도달 불가능한 장소는 아닐 것이다.

 현실세계에서 만날 수 있고 이룩할 수 있으며 확실하고도 뚜렷한 체계를 갖춘 모습일 것이고, 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듯도 하다.


 그 어느 것도 안정적이지 않은 이 세상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활을 안정적이고 안락하게 만들고, 그 안에서 하고픈 취미나 일거리를 찾는 것을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그들이 꿈꾸는 이상향이라는 것은, 법과 제도 하에 모든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고, 사회악을 최소화하고, 모든 사람들이 건전한 노력으로 스스로를 원하는 모습으로 키워가고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그런 상태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뚜렷하고도 확실한 현실에서의 이상향의 모델이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른 법적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모두가 기본적 생활이 가능한 사회적 제도와 이 나라 어느 곳에서 살든,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기본토지계획과, 도시에 버금가는 교육환경 및 의료제도와 문화생활이 가능한 지방의 지역체계, 그리고 모든 지역의 사람들에게 만족감과 행복감을 제공할 수 있어, 사람들이 삶을 위해 기울이는 건전한 노력들이, 열악한 지역환경과 사회제도로 인하여 좌절되고 포기되거나 다른 번화한 지역으로 이전해야만 실현가능해지지 않아도 되는 그런 법적 사회적 정치적 모델이 현실적으로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가장 무기력한 약자들이, 정이나 연민이나 자애심에 의존하지 않고도 당당히 자존감을 가지고 스스로의 생활을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럴 수 있어야만 사회구성원의 누구도 자신이 원치 않는 관계에 예속되어, 돈 때문에 원치 않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식들은, 부모와의 갈등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느낄 때 언제든지 독립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고, 자식들이 부모의 욕심 때문에 원치 않는 미래를 선택할 필요가 없어야 할 것이다.

 또한 설사 자신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는 부모가 존재하지 않아도 그 부재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하지 않아도 되어야 할 것이다.

 그에 더하여 부모와 자식이 서로가 서로를 보고 싶어 질 때까지 만나지 않아도, 그 누구도 탓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사회분위기도 조성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여자들은, 자신의 능력만으로 스스로의 삶을 이어갈 수 있어야 하고, 생계를 위해, 원치 않는 결혼을 하거나 원치 않는 일에 종사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며, 그들의 성 자체가 돈벌이로 악용되거나 스스로 이를 이용하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다.


 부부간의 사소한 갈등이 해결하기 어려운 단계로 접근해갈 때, '자식들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풀어낼 길 없는 엉킴으로 자식들에게조차 지옥이 되어가는 상황을, 체면을 위해 혹은 이혼 후의 생계불안을 염려하여 무조건 연장시켜야만 한다고 설득당하거나 스스로 설득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고, 아이들이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낙인 되거나 어려움을 겪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으로 애착관계를 형성하고 부모의 막대한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이 그러면서도 올바르게 자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근로자들은, 주어진 시간 주어진 업무만큼만 의욕 있게 일하고, 노동조합은 근로자들의 권리와 위치를 견고하게 만들어주기 위해서만 존재해야 한다.

 젊은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윗사람의 말을 무조건 따를 필요 없이 참고로만 할 수 있어야 하고, 부모가 자식에게, 스승이 제자에게,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독선적으로 순종을 요구하지 않는 환경과 사회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나름의 주관으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최선을 선택하며, 그 선택은 다만 이해되고 존중될 뿐, 그로 인한 결과나 실수는 스스로 책임지고 자신의 실수로 인생을 배워갈 수 있도록 하는 사회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 누구도, 타인에게 온정을 구걸해야 할 이유가 없고, 비굴해질 필요가 없으며, 우아하고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꿈을 찾아 일하고 공부할 수 있는 그런 이상적인 사회가 모두에게 절실하고, 그것이 가능함을, 이 세상 다른 곳에서는 이미 그것이 이루어져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오래전 전제정권이 존재하던 시절에 절대적 가치로 존재하던 상명하복의 원칙은 현대에는 더 이상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다.


 틈만 나면 도적질이나 침략을 꿈꾸는 이웃나라를 대항하기 위해 왕을 중심으로 힘과 뜻을 뭉치기 위해 필요했던 전제적 권력은, 이제는 현대사회가 추구하는 세계의 평화적 공존을 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그렇다고 현대에는 우리를 침공하고 악용하려는 이웃의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이제는 이에 전제적 권력을 중심으로 대항해갈 때가 아니라, 다수의 이지와 지혜를 모아 그로써 대항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 나갈 때이고 그럴만한 기술도 이미 갖추어져 있으므로, 우리는 이를 굳이 부인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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