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와 일상의 구분, 죽음과 탄생의 고통
- 영화와 일상의 구분, 죽음과 탄생의 고통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는 행복하고 평범하며 안정되기를 바라는 게 일반적인데 반해, 영화나 만화, 소설, 연극 등에서는 오히려 비극이나 공포를 즐기곤 한다.
삶이 주는 스트레스를 정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또한 극도의 긴장과 슬픔 후에 오는 극적인 행복한 결말로, 일상에서 불가능한 짧은 시간 안에, 상대적으로 커다란 만족감과 해소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 생활 속에서 사람들이, 영화에서와 같은 긴장감과 슬픔과 고통을 느끼게 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사실 사람들은 실생활에서 영화에서와 같은 긴장감이나 슬픔, 스트레스를 충분하고도 넘치게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실제 삶 속에서의 긴장감이나 슬픔이, 영화 속에서의 긴장감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 고난과 아픔을 겪는 시간의 길이와, 그 해결과 해소의 방법적 한계에 있을 것이다.
영화나 연극 속에서의 비극이나 슬픔은, 약 한두 시간 정도만 맘껏 슬퍼하고 긴장하며 기다리고 있으면, 대부분의 경우, 말미로 갈수록 극도의 기쁨으로 바뀌며, 모든 문제가 시원하게 해결되고 긴장감이 깔끔하게 해소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에서 마음이 시원하게 정화됨을 느끼며 즐거워할 것이다.
그런데 실생활에서의 긴장감이나 슬픔은 어떤가.
아무리 기다리고 견뎌내도 긴장감은 해소되지 않고, 슬픔은 끝이 보이지 않으며, 삶은 암흑의 연속일 뿐이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지속되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비극은 비극인 채로 남아 있으며, 고민과 압박감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심연까지 끌어들이기만 할 뿐, 그에서 벗어날 방법은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당장의 배고픔은,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움직여 일하고 돈 벌어 음식을 구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쉽사리 해소되지 않는다.
당장 죽어버렸으면 싶은 지독히도 밉고 나쁜 놈은, 현실세계에서는 절대로 죽지 않고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기만 한다.
그에 비해 두 시간 정도만 기다리면 나쁜 놈들은 모두 죽어 나자빠지고, 뼈 빠지게 힘들어 보이는 노동의 고통도 두 시간 정도만 견디면 일순에 부자도 되고, 모든 문제는 해결되어 있다.
단 시간 안에 만사가 끝없이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영화나 드라마 속의 비극과 고통은, 차라리 즐거운 게임과도 같은 자극일 뿐인 것이다.
사람들은, 죽음이 고통스러울 것 같아 두렵다고들 하고, 탄생은 찬란하고도 아름다운 기쁨으로 표현하곤 한다.
과연 그럴까?
정녕 삶의 탄생이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아름답고 기쁘기만 한 것일까.
우선 탄생의 과정을 살펴보면, 생명의 탄생에 앞서, 극도의 고통과 죽음에의 공포와 맞서 싸워야 하는 산모들이 있다.
현대의학 덕분에 아기 낳다 죽는 여성들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산부인과 출산실에 가 본 사람들이라면, 산모들이 내지르는 그 처절하고도 죽음의 공포와 맞닿아 있는 비명 소리에서, 그들이 얼마나 큰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지, 그리고 죽음에의 공포가 생명의 탄생과 얼마나 가깝게 맞닿아 있는지 가슴 깊이 와닿을 것이다.
태어나는 아기들 또한 산모들 못지않은 고통을 느끼는 듯하다.
주기적으로 조여 오는 자궁의 압박과 고통을 견디다 못해, 비좁은 출구로 두개골이 일그러지는 아픔을 감내하고라도 뚫고 나가야 하는 아기들이, 기억력이 좋지 못한 것은 오히려 다행일 수 있다.
아마도 모든 아가들이 그 탄생의 고통을 기억하고 살아가야 한다면, 올바른 정신상태로 살아가는 사림들을 찾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도 아기는 그 좁은 틀을 깨고 밖으로 나와야만 살 수 있고, 비로소 숨 쉴 수 있다.
그래야 아기는 비로소 자신을 내쫓지 못해 안달 나 괴롭히는 자궁을 찢고 나와 세상구경이란 걸 할 수 있다.
신생아의 두개골이 이상한 모양으로 일그러져 있는 것을 보면 그 탄생의 고통을 가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 위대한 고통을 견디며 나온 이 세상에서, 그들을 환한 미소로 반갑게 기다리고 있는 부모가 있다면 그나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사랑이 없고 행복하지 않은 가정은, 부부 자신들에게나 그 아이들에게나, 그 탄생 자체가 쇠창살이 따로 없는 끔찍한 감옥생활의 시작임을, 불행한 결혼과 어린 시절을 겪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잘 알 것이다.
더군다나 가장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잊고, 아이들을 밤낮없이 폭행하거나 성폭행하며 키우고, 변태적 성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꾀어, 자기 자식들과 여자들을 성매매와 돈벌이에 이용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아가들의 삶은 지옥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누가 그들에게 열심히 살지 않아 비국을 겪고 있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그 영화처럼 단숨에 끝나지 않고 영속되는 비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