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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단 Mar 09. 2024

법이 늙었다 3

법을 공부한 이유

   - 법을 공부한 이유


 늦게나마 법을 공부하게 된 이유는, 이 나라의 법체계를 알아야 이 사회의 그릇됨의 원인도 알 수 있을 듯해서였다.

 뭔가 잘못된 건 알겠는데,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알아야 했고, 그래야 하고픈 이야기도 하고 뭔가를 주장할 수도 있을 듯했기 때문이다.


 법 관련 학위를 취득하고 자격증도 따서 내가 하는 이야기에 힘과 자신감을 가지게 되기를 희망했는데, 그 뒤 사법시험이 사라지기도 했고, 생각보다 기간이 오래 걸릴 듯한 느낌이 있었다.

 그 이유는 시험의 근간이 판례에 있어, 판례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외우다시피 해야 하는데, 법조문과 판례 글귀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비판과 비웃음이 앞서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그러니 이를 달달 외우기는커녕, 이런 판례가 만들어진 이유를 분석하고 그에서 짐작되는 비리와 암울한 상황들에 대한 불편한 생각으로 종일 속을 끓이기 일쑤였다.

 이런 판례들을 외우고 그를 바탕으로 사람들을 판단하거나 변호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고, 그렇게 사는 일에 크게 보람을 느끼게 될 것 같지 않았다. 결국 법학사로 만족하고 더 이상의 자격증 공부는 중단하기로 하였다.

 내가 얼마나 오래 살지 모르는데 공부하는데 들이는 시간을 아껴서 좀 더 일찍 사람들에게 소리 내어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모든 법과 판례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법과 판례들은 나름의 법적 정치적 상황에서 인고의 노력 끝에 만들어지고 판단 내려진 것들임은 분명하다.

 법을 공부하고, 법조문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이 법들이 외국에서 만들어졌든,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든 간에, 많은 사람들의 피나는 투쟁과 아픔으로 얼룩진 소중한 것들임을 깨닫지 않을 수가 없었다.

 법 조항 하나 하나와 판례의 글귀 하나하나가 철저한 인간존중 사상과 모든 사람들의 평등권을 위해 만들어졌음을 짐작하게 했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런 법조항과 판례조문들이, 진정 구제되어야 할 사람들보다는, 법을 충분히 알고 이를 교묘히 피해 갈 줄 아는 사람들에 의해 악용되는 데에도 이용되고 있었고, 그럴만한 여지가 그 안에 넘쳐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일부 판례들은 그 법조문의 문맥상 여지와 허점을 정말 교묘하게 잘 이용하여, 누가 봐도 불공평한 판결을, 누가 봐도 할 말 없도록 예술적으로 서술해 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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