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물들에 애도를 표하며
얼마 전 블로그에 글 쓰기를 해본 적이 있다. 지금은 AI로 인해 블로그서비스가 거의 돌아가시기 직전이지만, 그때만 해도 블로그는 많은 사람들의 유용한 정보 제공 터미널이었다. 그 블로그를 통해, 수학을 배우는 수험생들이, 시험 직전에 휴대폰으로 간편하게 보기 좋도록, 공식정리를 해 두면 유용하겠다 싶어, 수능수학 공식을 알기 쉽고 보기 편하게 정리한 글을 써서 올리기 시작하였다.
알다시피 수학 공식을 정리하는 일은, 일반적인 글을 쓰는 것보다 열 배 이상 힘들다. 우선은 수식을 상대해야 하므로, 특수문자를 골라 써야 하고, 그래프를 그려야 하니, 일러나 코렐 같은 그림작업과 편집작업도 필요하다. 다행히 배워둔 바가 있어 아는 분야이다 보니, 그래프며 그림작업과 함께 가능하긴 하였다. 그런 식으로 블로그에 글을 써서 모은 다음, 수험생을 위한 공식모음집을 책으로 만들어 보아야겠다는 생각도 하였다. 그렇게 글도 부지런히 작업해서 올리고, 다른 블로거들의 글도 열심히 찾아 읽으며, 조회수 올리는 일도 하였다. 그러다 발견하게 된 게 있었다. 정확히 일치하는 글을 두 블로거가 올린 것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나는 내 글을 올릴 때, 힘들게 작성한 내 글을, 누군가 고의로 복사하여 일부수정해서 다시 올리는 일을 방지하기 위하여, 전체 글을 그림파일로 변환하여 올리고 있었다.
내가 법학도 전공하였으므로 관련 법에 대해 조금 언급해 보자면, 글은 작가가 써서 공표하는 순간부터, 굳이 저작권 등록을 하지 않아도, 그 글을 최초로 공표한 작가에게 저작권이 인정된다. 그러나 저작권 등록을 하지 않은 글에 대한 권리주장의 의사표시는 재판으로 해야 하므로, 표절된 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려면, 돈 쓰고 시간 쓰고 마음 쓰고 증거증명을 위한 노력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유튜브에서는 알고리즘으로 하여금 복사된 글이나 음악, 영상들을 걸러내도록 하여, 제재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도 해당 블로그 회사는 이 알고리즘의 기능이 미약했거나 없지 않았나 싶다.
요즘에는 chat gpt나 AI가 기존의 글들을 수정 조합하여 새로운 글을 만들어 준다. 사실 우리가 쓰는 글들도, 우리가 예전에 읽고 습득한 글과 지식에서 나온 것이니, chat gpt나 AI가 하고 있는 일이 우리가 하는 일과 전혀 다르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는 워낙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작업하므로, chat gpt나 AI로 작성된 글에 대해 저작권에 관한 권리주장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본 그 블로그 글들처럼 완전히 일치하는 글들은 분명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다. 그리고 복사 붙이기 하기에는 내가 올린 그림만큼 간편한 것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차라리 내 글들을 혼자 작성하여 전자책을 만들어, 필요한 사람들에게 공급하자 싶었다.
사실 요즘엔 남의 글을 통째로 복사붙이기한 글보다는, AI로 쓴 글들이 더 많으므로, 저작권의 문제가 제기될 소지는 거의 없다. 그러나 AI로 쓴 글을 읽다 보면 어디선가 읽은 듯한 문장들이 나열되어 있어 지루한 면이 있고, 감동이란 것을 느끼기가 어려워, 글을 좀 읽어본 사람이라면, AI의 도움을 받은 글임을 바로 알아채게 된다.
최근에는 AI 때문에 블로그서비스가 임종 직전이 되면서, 그동안 수많은 블로거들이 그 복사 붙이기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올렸던 글들이, 모조리 AI의 잿밥이 되어버리고 있다. 이를 생각하면 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블로그에 올렸던 글이나 정보도 결국 개인의 시간이고 노력이고 자산인데, AI나 사회시스템이 이를 너무 간단히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싶다. 사실 내가 글을 그림파일로 변환해서 올렸던 것도, AI가 함부로 내 글을 발췌하여 수정조합하지 못하게 하려 한 것도 있었다.
요즘엔 그림에 있는 문자도 편집가능한 문자로 읽어주는 프로그램도 있고, 리눅스나 안드로이드, 오픈 ai 같은 오픈리소스 프로그램도 산재하여, 정보의 공유를 미덕화하는 시대에, 글 몇 줄의 값어치를 따지기에는 너무 우물 안 개구리 같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개인의 정보와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철저한 암호시스템을 도입하여, 그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세계 휴대폰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아이폰을 보면, 정보공개가 그리 마냥 만인의 이치는 아닌 듯싶기도 하다.
요즘처럼 AI가 열 미래를 남보다 빨리 주도하기 위해, 세계가 혈안이 되어있는 시대에는, 저작권이나 개인정보가 조금은 덜 중요시되어야, AI 발전에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최근에 있었던 통신회사 DB의 해킹사건으로 미루어볼 때, 저작권이나 개인정보를 무시한 무조건적인 개발과 개혁은 그보다 더 큰 위험과 재난을 초래할 수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개발과 편의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안전, 그리고 개인의 재능과 노력에 대한 인정과 격려가 아닐까 싶다.
재미있고 보람차게 무언가를 만들어 내어, 자신의 효능감과 자신감을 키우는 일이, 많은 사람들의 삶의 이유이자 목적일 텐데, 인간의 재능과 노력으로 생산한 그 모두가 기계에 던져주는 밥으로 전락한다면, 사람들은 이제 무슨 낙으로 살아가게 되는 걸까? 다른 사람들이 일구어 놓은 지식과 창조물들을, AI를 통해 재빠르고 효율적으로 가로채어, 돈 되는 사업으로 개발하는 일만이 중요해지는 세상이 되는 것일까?
AI의 잿밥으로 던져진, 이 세상 인간의 노력으로 일구어 놓은 모든 지식과 창조물들에 대해, 삼가 심심한 애도를 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