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취운정, 숙종과 장희빈이 사랑을 나눈 공간

취운정.JPG 창덕궁 취운정


숙종은 13세의 나이로 1674년 창덕궁의 인정문에서 즉위하였다. 숙종시기에는 서인과 남인의 정권 다툼이 극심하였고, 환국으로 수많은 대소신료가 사사되거나 숙청을 당하였다. 또한 숙종과 인현왕후 민씨, 희빈 장씨, 숙빈 최씨 등이 서로 얼킨 궁중의 복잡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취운정 건립도 이러한 시대 상황의 배경이 된 곳이다. 취운정 건립은 『궁궐지(宮闕志)』에 함인정(涵仁亭)의 서쪽에 있으며, 숙종 12년(1686)에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어 정확한 건립시기를 확인할 수 있다.

취운정 건립 이유 등을 알 수 있는 직접적인 고증문헌은 없지만 취운정이 건립되던 해에 아래와 같은 실록 기사가 5월과 9월에 두 건이 전한다.


검토관 최규서(崔奎瑞)가 외간의 전설에 궁내에서 목석(木石)을 끌어들인다는 말이 들린다고 진계(陳戒)하고, 시독관 이이명(李頤命)이 이어서 잇따라 아뢰니, 임금이 답하기를, "항간의 말을 어찌 다 믿겠는가? 이는 대단한 공사는 아닐 것이다."하였다. <숙종실록 숙종 12년(1686) 5월 11일 甲午>


5월의 기사로 어떤 공사인지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공사를 위해 목재와 석재의 건축 자재를 궁내로 운반한다는 기사이다. 공사가 진행 중이거나 준비 중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왕은 이를 애써 별것이 아니라고 답한 대목에서 대신들 모르게 시행하려고 한 궁실의 사사로운 공사임을 알 수 있다.


(상략) 그런데 가만히 듣건대, 궁중 안에 요즈음 집을 짓는 일이 있어 목재(木材)를 실어 오고 목수(木手)를 불러들이는데, 반드시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에 하도록 하여 외부 사람들에게 알지 못하도록 했다고 하는데, (중략) 이때 궁중에 마침 집을 짓는 일이 있었던 것을 어떤 이가 말하기를, "이는 임금이 궁인(宮人) 장씨(張氏)를 위하여 별당(別堂)을 짓는 것인데, 외부 사람들의 귀를 번거롭게 하지 않으려고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에 목재를 운반하게 한 일이 있었다.(하략)” 그런데 임금은 전해 들은 것이 사실에 틀린다고 핑계를 하고서 마침내 그 역사를 중지시키지 아니하였다. <숙종실록 숙종 12년(1686) 9월 5일 丙戌 >


같은 해 9월의 기사로 외부사람이 알지 못하도록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에 목재를 실어오고 목수를 불러들인다는 내용으로 보아 궁실에서 공사를 은밀히 추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건축 대상이 명확하게 들어나지 않았지만 어떤 이의 말을 빌려 궁인 장씨의 별당을 짓는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궁인 장씨는 희빈 장씨이다.

그녀의 별당은 인현왕후를 저주한 곳으로 잘 알려진 취선당이다. 취선당은 저승전의 별당이며, 본 전인 저승전은 현재의 낙선재 일원이다. 취선당은 저승전의 서쪽에 놓여있다. 숙종실록에 취선당의 위치를 건양현과 명정전 사이에 있다고 하여 이를 뒷받침한다. 아래 그림과 같이 현 낙선재 수강재 뒤뜰에 있는 취운정과 취선당이 가까운 거리에 위치함을 알 수 있다.


취운정위치(궁궐조).png 동궐도의 낙선재권역

두 기사가 실제 취선당을 짓는 것인지, 취운정을 짓고 있는 것을 잘못 안 것인지, 아니며 두 개의 건물을 포함한 일대의 건축공사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취운정이 건립된 시기이며, 동궁영역의 건축으로 취운정 건립과 관계된 기사임은 분명한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궁인 장씨는 1683년 명성왕후 승하 후 3년 상을 치룬 1686년에 숙종에 의해 다시 궁궐로 들어왔고, 그 해에 숙원(종4품)이 되면서 후궁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후 1688년에는 소의(정2품)가 되었고, 같은 해 경종을 나았다. 당시 숙종이 장씨에 대한 총애가 각별하였다. 1686년 궁궐로 다시 불러들였으며, 장씨의 거쳐를 마련하는 것도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따라서 장씨의 거쳐인 취선당을 수리하거나 새로이 짓는 공사도 진행된 것으로 보이며, 얼마 떨어지지 않은 취운정도 장씨를 위한 공간이었을 것이 유력하다.


취운정은 일대에서 가장 높은 위치로 주변 경관을 감상하고, 조용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다. 숙종이 취운정에 올라 지은 “翠雲亭題咏詩”, “翠雲亭六咏詩 ”, “九日登翠雲亭” 등의 3편의 시가 『궁궐지(宮闕志)』에 전하고 있다. 숙종이 자주 찾아 시를 지을 정도로 취운정을 선호하였고, 이는 가까이에 장씨의 거처가 있는 것도 한 이유로 판단된다. 이 시기 취운정의 건립이 장씨가 머무르고 있는 취선당 가까이에 정자를 지어 장씨와 만남을 갖고, 소요(逍遙)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란 추정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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