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옥재는 경복궁 북측 신무문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좌측부터 팔우정, 집옥재, 협길당의 3개동이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팔우정은 육각정자의 모습이고, 집옥재는 궁궐 내에 있으면서 중국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팔우정은 ㄱ자 형태로 전면 중앙 2칸은 대청마루이고 좌우는 다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종 28년(1891)에 창덕궁에 있던 집옥재를 이건하라고 명하여 이건공사가 이루어졌다. 창덕궁에 있던 건물은 함녕전 영역에 있던 북별당이 집옥재이며, 서별당이 협길당으로 알려져 있다. 팔우정은 이때 함께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집옥재는 어진 보관이 목적이었다. 어진은 항상 왕과 함께 있어, 고종이 창덕궁과 경복궁을 번갈아 이어할 때마다 어진도 옮겼다. 모신 전각도 여러 곳이었으며, 경복궁에 있을 때는 건청궁, 관문각, 보현당, 집옥재, 선원전 등에 모시었다. 그러나 집옥재는 고종의 개혁정책을 위한 공간으로 각종 서적을 보관하는 서재의 역할과 왕의 외교활동을 위한 외국 사신의 접견소로도 쓰였다.
경복궁 북측 영역을 주 무대로 사용한 시기는 창덕궁에서의 갑신정변 이후 고종 22년(1885)에 경복궁으로 환어하면서 이며, 이후 일본의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이 일어난 1895년까지 고종의 정치활동 공간으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