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궁은 세자를 지칭하면서 세자의 거처인 공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경복궁의 동궁은 조선초 경복궁을 조성할 때는 없었으며, 세종 때(1427) 동궁을 조성하였다. 다음 왕을 이을 후계자의 거처이자 강학과 경연 또는 섭정 등의 공간으로 세워졌다. 그러나 임란 때 경복궁이 소실되기 전까지 경복궁의 동궁을 세자 신분으로 사용한 사례는 많지 않았다.
세종 때의 세자인 문종이 28년 4개월, 문종 때 세자인 단종이 1년 10개월, 중종 때의 세자인 인종이 24년 7개월, 명종 때 재건된 동궁에서는 순회세자가 6년을 동궁에서 생활하였다.
동궁에서 생활하지 못하게 된 다른 왕의 경우를 살펴보면
왕위를 찬탈한 세조, 다른 공간을 동궁으로 사용한 예종, 세자 책봉을 받지 못하고, 궐 밖에서 생활하다 왕이 된 성종, 창덕궁의 동궁에서 생활한 연산군, 반정에 의해 왕이 된 중종, 후사가 없어 비적통이 왕을 이은 선조 등은 궐 밖에서 생활하거나, 다른 궁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경복궁의 동궁을 사용하지 못한 사례이다.
따라서 조선전기 경복궁 동궁이 본연의 역할로 제대로 사용한 경우는 165년(1427~1592) 중 60년도 채 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