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의 형태가 자연석(태조), 옥수수 알갱이과 같이 가공한 형태(세종), 반듯한 각형 가공의 석재로 쌓은 성곽(숙종 이후)의 형태가 함께 나타나고 있으며, 여장도 다른 형태가 함께 나타난다. 이런 현상은 도성을 관리하기 위해 붕괴된 곳에 대한 부분 수리를 하면서 당시의 성곽쌓기 방식을 반영한 결과이다.
도성이나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삼국시대 이전부터 성곽을 쌓았다. 흙 또는 돌 등으로 주변 지형 여건이나 당시의 방어개념에 따라 성의 형태나 구조가 다양하게 나타났다.
조선시대 한양도성은 처음에는 흙으로 일부는 돌로 쌓던 것을 세종 때 돌로 다시 쌓았다. 이후 잦은 붕괴로 부분적인 수리가 지속되었다. 적의 공격 무기가 화살인지, 대포인지에 따라 성벽 형태가 변화되었으며, 여장의 형태도 바뀌었을 것이다. 여장은 성곽 위에 쌓아 자신의 몸을 숨기면서 적을 공격하기 위한 시설이다. 성곽의 지속적인 관리가 되지 않으면 가장 쉽게 손상되는 것이 여장이다. 숙종실록에는 '지금 여장이 하나도 남은 것이 없다'란 기록에서도 쉬이 무너졌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아 있는 여장의 형태는 다양하다. 그러나 근현대기 쌓은 여장은 각형의 전형적인 형태와 기계가공한 석재로 쌓아 오히려 하지 않는 것만 못한 경우도 있다.
여장(女墻)은 중국 명나라 백과사전인 삼재도회(三才圖會) , 후한 말기 사전인 ‘석명(釋名)’에 “성 위에 있는 담을 비예(睥睨)라 하며, 가운데 빈 곳이 있어 비상(非常)한 것을 살펴보게 하는데, 아래의 높은 성에 비하여 높이가 낮아 마치 큰 남자와 작은 여자와 같아서 이를 ”女墻“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