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기에 숨겨진 내면
처음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한 건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때다. 대학 입시가 우선이라면서 온갖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던 것은 먹는 것뿐이었다. 독서실에서 핸드폰만 틈틈이 만지고 시간을 때우고 집에 돌아오곤 했다. 차라리 잠이라도 일찍 잤으면 좋았을 텐데 부엌에서 샌드위치, 라면을 끓여먹던 일이 일상이었다. 자연스레 몸이 부풀었다. 교복 바지는 단추로 잠글 수 없었고 특히 수업 시간 의자에 앉을 때 상의로 덮어버리곤 했다.
대학 입학식 이후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10분 거리의 피트니스 센터에 한 달 회원권을 끊었다. 주 3회 이상 운동을 해야겠다는 목표로 삼았다. 누가 헬스장은 가까워야 시간이 절약되고 쉽게 갈 수 있다고 했던가? 학원, 아르바이트로 피로가 쌓이면, 무거운 발걸음은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었고 친구들과의 약속이 우선순위가 되었다. 열심히 운동하겠노라 자신과 약속했음에도 속으로는 피하기 급급했다.
어떻게 운동을 해야 할지 몰랐기에 가지 않은 걸까? 그냥 운동하기가 싫었던 건가? 스스로 비합리적인 방법과 회피방법으로 그렇게 지갑 속 회원권 카드와 사물함 안의 운동화는 나로 인해 외톨이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의 사소한 행동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닌가? 오늘 신발 빨래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항상 내일, 모레로 미뤘다. 옷 정리를 하고자 하면 시간 있을 때 하자고 스스로 합리화로 안도했다. 내일, 내일, 내일...
'변화고 싶은 나'와 '지금의 나'는 이상과 현실 어딘가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새벽 아침 뿌연 안갯속에 걸어가다 울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 같았다. 매번, 매해 다짐한 결심과 의지는 어디로, 왜 사라져 버렸는지 몰랐었다. 그렇기에 "나는 왜 미루기만 할까"에 대한 스스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운동을 다짐하기 전에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사람을 보면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라고 생각한다. 글을 감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잘 쓴 작가의 수필을 보면 나도 저 사람처럼 잘 쓰고 싶은 생각을 든다. 머릿속에서 반복적으로 '하고 싶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 자연스레 행동으로 나아간다.
'바라는 나'가 되고자 급급한 마음은 없었을까? 나는 항상 '완벽히 해야 한다'는 언어가 마음 깊이 박혀 있었던 걸 알게 되었다. 완벽해지려는 마음과 쉽고 빠르게 하려는 무의식이 만나 충돌하고 결국 나는 회피 전략으로 뒤로 미루는 것이었다.
'내일의 나'가 '오늘의 나'보다 더 나아질 것인가?
갓난아이가 수차례 머리를 가누며 엄마의 도움으로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결국엔 아장아장 걸을 수 있듯이 이제야 나는 시작 지점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스스로 '부모'의 마인드로 내 안의 어린아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차근차근하면 된다는 것과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