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과 소비 : 마땅한 곳에 돈을 보내주기
참다운 삶을 바라는 사람은 주저 말고 나서라.
싫으면 그뿐이지만, 그럼 묏자리나 보러 다니든가
-오든-
오든의 시는 삶에 대한 정확한 본질을 읊어준다. 사람은 살아가는 삶을 사는 것을 택하는 것과 죽어가는 길을 택하는 둘 중 하나뿐이다. 물론 다들 삶을 사는 것을 선택하지만 여기서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선행된다. 우리는 매일 내일이 반복될 거라는 암시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내일이 똑같이 반복될 거라는 생각이 무기력에 가까운 삶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살 것인가?" vs "지금부터 살 것인가?" 이 문장이 항상 내가 조금씩 행동의 노력을 다지는 게 되는 문장이다. 매일 운동을 하고 의미 있는 일을 통해 이타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삶의 질을 끌어올려주는 소비와 경험을 얘기하고자 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먹는 것은 풍요로움을 넘어서 '과잉'의 시대고, 필요한 정보를 넘어서는 잡다한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만큼 나는 배고픔의 절망과 좌절을 경험하지 않은 것은 부모님과 조상들의 '희생' 덕분이다. 메슬로우의 욕구 단계처럼 최종적인 '자아실현'이라는 참다운 삶을 사는 단계를 밟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20대인 내가 일, 돈, 연애 등 미래에 대한 불안과 조급함이 있지만 부정적인 암시를 벗어나 지향적인 지식과 지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의식의 유연성'을 가지지 못한 체 편향적인 생각만 고집한다면 그만큼 우물 안의 개구리로 살아갈 것이다. 우리는 인생의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하듯이 '의식의 유연성'을 가지며 정말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와 지혜에 최대한 집중해야 한다.
돈의 소비와 경험을 공통성을 주제로 삼은 이유는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을 뛰어넘어 주체적인 삶을 선택할 때 훨씬 삶의 질을 끌어올려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적인 신용의 재화이다. 따라서 돈은 타인이 가진 문제를 해결해주는 신용의 대가이다. 그만큼 아름다운 것이지만 돈의 액수에 한정되는 한계를 가진 생각과 함께 스스로 남들과 비교를 하는 마음은 삶을 무기력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삶의 방해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많지만 앞으로는 나를 더 고양시킬 수 있는 경험과 소비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경험에 대한 정확한 구분을 할 필요가 있다. '행동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경험이라고 한다.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경험의 내용이다. 오늘 내가 점심을 먹은 후 디저트 케이크를 먹는 것이 경험이라고 한다면 짧다면 짧은 소확행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시적 욕구의 경험은 행복을 누적시키지 않는다. 또한 반복되는 일시적인 욕구의 소비는 월급 통장을 갉아먹게 된다. 내 친구는 안정적인 직장과 소득을 얻지만 잦은 술자리, 외모 관리, 자동차 관리비, 일시적인 과잉 지출로 한 달치 월급을 모조리 소모한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고 있다. 더 안타까움을 느끼는 건 외모 콤플렉스, 지신감, 자존감 등 모든 것이 낮다. 스스로 자책하고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외부의 것을 끌어와 소비하는 위안과 쾌락은 현실 도피 수단일 뿐이다. 필요 이상으로 의류, 외식, 유흥의 소비가 크다면 그게 곧 나에게 중요한 가치의 의미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라면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진짜 경험, 보람찬 경험을 할 수 있는 활동의 경험과 소비는 무엇일까? 이 질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경험이 나를 고양시킬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집 밖을 나가는 순간부터 소비가 시작된다. 자연스레 경험이 따라온다. 자신이 현재 정말 필요한 것과 진정 원하는 것, 집중하고자 하는 것에 소비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잦은 불면증과 건강 악화인 사람이 활기찬 건강을 얻고 싶다면 운동, 식습관 도서를 구매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나의 지출 습관을 바로 잡고자 한다면 현명한 전문가의 강의를 신청할 수도 있다. 내가 가진 문제를 고민해서 행동으로 풀어낼 때 그리고 돈을 정당한 곳에 보내줄 때, 한 단계 성장시킬 만한 지식을 겸비하게 된다.
우리는 실은 값비싼 여가에 돈을 쓰는 것보다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을 더 좋아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뜻밖에도 영화를 보는 것보다 책 한 구절의 즐거움을 맛보았는지 모른다. 10켤레의 신발을 사는 것보다 애지중지한 한 켤레의 신발이 더 소중할지도 모른다. 인생이 누가 정해놓은 규칙을 있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주체가 돼서 능동적이며 나에게 맞는 삶을 찾아가는 것이 어떻게 보면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