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친구 베트남 나트랑(냐짱) 여행기

2024.11.14.(목)~11.17.(일)

by 준환

곰과 여우, 너구리 세 친구는 매달 부은 곗돈으로 일이 년에 한 번 여행을 간다. 40대 중반 가족들 없이 함께, 때로는 각자 원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이다. 한참 전부터 날짜를 맞췄으나 이리저리 바꾸다 칠월 중순에야 결정했다. 이번에는 나트랑(냐짱), 우기가 시작되어 평균 기온이 떨어진 11월이다.

※ 정식 명칭은 냐짱이나 이해가 쉽도록 나트랑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출발 전 날, 공항과 비행기


나트랑으로 가는 비행기는 새벽부터 오후까지, 서울 돌아오는 편은 밤과 새벽에 있다. 체류 날짜는 온전히 삼일이 채 되지 않기에 조금이라도 늘리려 가장 빠른 6시 20분 출발 편을 골랐다. 다만 서울 동쪽 끝자락에 사는 내게는 비행기 시간에 맞춰 공항까지 가는 아침 대중교통편이 없다. 운전은 싫고 전날 조금이라도 편히 쉬고 싶어 퇴근 후 공항 가까운 운서역에 갔다.


저녁 8시 어둠이 내린 시간, 시내를 한 바퀴 걸었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간판과 가로등이 비춘 큰길, 사람들 사이에 껴 교차로 건널목을 지나려 섰다. 문득 여행을 앞둔 해방감보다는 혼자 있는 외로움과 낯선 곳이란 소외감이 들었다. 그나마 집밥 맛을 느낄 수 있는 백반집을 찾은 게 이곳에서 얻은 위안. 혼밥을 하고 달리 갈 곳이 없어 숙소로 들어왔다. 아이가 영상통화 너머로 자신도 데려가 달라 떼를 썼다. 이번은 가족여행을 위한 연습이라며 다다음 해 오자고 달랬다.


새벽 세 시. 전날 반주 소주 한 병과 숙소에서 마신 맥주 한 캔에 슬며시 잠이 들었다가 불과 세 시간 남짓 지났다. 비록 짧은 휴식이었으나 그리 피곤하지는 않았다. 송도 사는 곰이 공항 가는 길, 차를 태우러 역 근처까지 왔다. 새벽 일어나기 어렵다며 아예 밤샌 기색이 역력했다. 아직은 괜찮은 얼굴이지만 비행기에 앉으면 곧 쓰러지지 않을까.


오랜만에 도착한 공항. 마지막 해외여행은 코로나19가 막 퍼지기 시작할 무렵인 2019년 겨울 다낭이었다. 그전까지 일이 년에 한 번은 출장이나 여행으로 나갔으나 벌써 오 년이 지났다. 조금은 낯선 출국장에서 진주로부터 심야버스 타고 온 여우를 잠시 기다렸다가 수화물을 부쳤다. 지상 승무원은 한 사람이 추가 비용 없이 실을 수 있는 중량이 있다며 세 명 짐을 하나씩 올렸다. 갸우뚱한 표정. 두세 번 반복해서 쟀다. ‘무얼 하는 거지?’ 계산기를 두드린 후 여권과 비행기표를 돌려준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으나 무거운 캐리어 두 개와 가벼운 것 하나 무게를 더한 것이 기준 이내로 허용된 모양이었다. 탑승장으로 가는 지하 터미널로 내려갔다. 운전사 없이 승객을 태우고 움직이는 전동차가 신기했다. 아이가 보았다면 원래 운전석이었어야 할 텅 빈 맨 앞자리를 뚫어져라 보았을 거다.


좌석은 덩치가 작은 나에게도 앞 등받이와 무릎이 맞닿도록 좁았다. 취역한 지 이십 년은 되어 보이는 내부, 새삼 쾌적한 우리나라 비행기가 그리웠다. 긴장이 풀리며 피곤이 몰려와 눈을 감았다. 일부러 커피를 피했건만 삼십 분도 지나지 않아 깨더니 선잠 후에는 그나마 다시 들지 않았다. 수면을 방해하는 건 불편한 자리뿐 아니라 냄새 때문이기도 했다. 솔솔 풍겨온 따뜻한 기내식 내음은 그렇지 않아도 허기진 배를 자극했다. “Pork? Fish?” 이륙하고 보통 한두 시간 안에 기내식 메뉴를 묻는 승무원 목소리를 기대했으나 그건 추가 비용을 내고 신청한 승객들만 해당인 것 같았다.(앞서 나온 기내 방송으로 미루어 짐작했다) 야속함에 부러움을 더해 건너편 탑승객 손에 쥐인 작은 도시락과 음료를 바라봤다. 우리나라 여객기라면 모두 주었을 텐데. 다음번에는 비용이 좀 더 들더라도 그걸 타야겠다는 생각이 커졌다. 다섯 시간째 공복. 아니나 다를까 백팔십 센티미터 중반, 백 킬로가 넘는 곰이 물었다. “배고프지 않냐.” 그보다 한참 홀쭉한 나도 진작 예민해졌다. 오랜만에 긴 비행시간, 다행히 이십 분 남았다. 하얀 뭉게구름 떠 있는 하늘에 밝은 햇살이 비춘 창밖 나트랑은 바다와 산 사이 길쭉한 모양이다.



첫 날(포나가르사원-야시장-나트랑해변)


우리나라 시외버스터미널 같은 공항을 나와 그랩을 탔다. 공항버스의 두 배 정도 금액, 일곱 명 이상이라면 그랩이 낫고 서너 명은 버스가 싸다. 다만 후텁지근한 날씨라 선택에 미련이 없었다. 공항에서 숙소가 있는 도심지까지는 삼십 킬로미터 남짓, 한가한 교외 농촌 그간 보기 드물었던 넓은 들판 한가운데 널찍한 도로를 시원하게 달렸다.


Bia Hoi Ha Noi, 나트랑 첫 식당에 들어가 가장 처음 시킨 건 베트남 맥주였다. 유명 관광지라 그런지 사람이 가득했다.


나트랑 십일월은 바람이 시원하다. 양지는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나 그늘은 모기 없이 쾌적하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냄새도 짠 기가 없었다. CCCP 카페 야외에 앉아 코코넛이 들어가 달달한 음료로 체력을 충전했다

포나가르사원은 참파(8~13c) 시대 벽돌로 지어졌다. 건물 내부는 외형에 비해 크지 않다. 창문과 다른 출입구 없이 입구와 출구가 같은 것도 독특했다. 바깥 무대에는 무용수들이 “네야네야 네에에에야~” 음악 소리에 맞춰 같은 손동작으로 항아리를 들고 춤을 췄다. 머리에 얹고 앉았다 일어서길 반복하면서도 한 번 떨어뜨리지 않았다.



야시장이 유명하다 하여 숙소 근처 있는 곳으로 갔다. 크록스 한 켤레는 만 천 원, 비록 가품이나 겉모양과 질은 큰 차이가 없었다.


북반구는 대체로 지는 시간이 비슷한지 서울과 비슷한 다섯 시 반 해가 졌다. 해변으로 산책 가는 길 넓은 도로를 건너려 길가에 섰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쌩쌩 달리는 오토바이와 차들은 보행자가 안전하게 건널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우리 곁에 있던 로컬 주민들은 어느새 절반 넘어 반대편 가까이 갔다. 잠시 멍하니 서서 고민했다. 위험하지 않을까, 어떻게 지나갔는지. 그들처럼 건너보니 운전자들은 사람이 앞에 있으면 속도를 늦추거나 방향을 바꾸어 달리고 있었다. 이곳은 신호를 주지 못해서가 아니라 필요 없어서인 듯, 세세한 규칙이 오히려 불편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밤이 되니 바다 내음이 더 짜고 파도는 거셌다.


해산물 식당에 갔다. 수족관에서 갓 잡아 음식을 내어주는 유명한 곳이다. 사진에서 본 것보다 작은 규모에 비어있는 의자가 이상했으나 상호와 간판이 같아 자리에 앉아 주문했다. 눈썰미 좋은 여우가 메뉴판에 표기된 일부 음식 사진과 명칭이 다른 걸 발견하고 직원에게 물었다. 대화가 통하지 않아 여러 사람을 거쳐 확인했으나 “yes”라고만 하는 믿음 가지 않는 대답이었다. 그제야 블로그 사진과 우리가 들어온 곳 모습이 다른 걸 확인하고 홀로 밖으로 나갔다. 오십 미터쯤 앞에 손님이 꽉 찬 가려던 가게가 있었다. 서울이었다면 저작권과 상표권 시비로 큰일이 났을 텐데 이곳은 아직 먼일인가 보다. 그래도 오래지 않아 내온 새우구이, 공심채 볶음과 맛조개는 마늘을 많이 넣고 볶아 느끼함이나 비릿한 맛없이 고소했다. 나오면서 메뉴판 수정이 필요하다고 말했으나 심드렁한 표정의 주인은 이미 알고 있는 듯 돈에만 관심 있다는 말투였다. 애초에 같은 도로변 멀지 않은 위치에 똑같은 상호와 간판을 걸었으니 더 말할 게 없었다. 다만 원조집 음식 가격과 큰 차이가 없어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베트남 음식은 우리나라에 비해 양이 적다. 성장기도 아니건만 밀려드는 헛헛함에 두 번째 식당을 찾았다. ChaoMao1은 사 층 높이 미니멀한 내부 장식이 홍대 어느 괜찮은 음식점 분위기였다. 층마다 가득한 사람들 식사가 끝나기까지 맥주 한 잔을 시켜놓고 느긋하게 기다렸다. 삼십 분쯤 후 자리로 안내받아 돼지갈비, 볶음밥과 면을 주문했다. 점심과 비슷한 메뉴였으나 질과 양이 훨씬 만족스러웠다. 끝맛이 밍밍한 맥주에 진한 누룽지 향이 나는 베트남 보드카 넵모이를 섞은 맛도 새로웠다.



숙소로 오며 반미를 샀다. 쌀 바게트 안에는 채소와 불고기가 넉넉하게 들었다. 소스는 살짝 매콤한 것으로 선택할 수 있어 구운 소고기와 베이컨이 든 방비앵 바게트샌드위치보다 좀 더 우리나라 사람 입맛에 맞았다. K마트에 들러 막걸리와 컵라면도 담았다. 바다를 건너왔기 때문인지 서울과 비슷한 가격, 현지인 점포에 비해 상당히 비싸지만 “원화”보다 스무 배 가까이 단위가 큰 베트남 화폐에 감각은 이미 무뎌졌다. 방에 딸린 테라스 테이블에 앉아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를 즐기며 한두 시간 더 먹고 이야기했다.


이십 층 숙소에서는 멀리 Hoàng Ngưu Sơn 산이 보였다. 거기까지 십여 킬로미터 남짓 사이 이곳보다 높은 건물은 몇 없었다. 여덟 시쯤 되니 그 많던 오토바이 행렬은 각자 쉼터로 돌아가 요란하게 울리던 경적이 잦아들었다. 한산한 거리 야경을 보며 곰이 말했다. “한국 사람들이 들어와 베트남의 아름다움을 훼손하는 거 같아.” 나도 같은 느낌이었다. 식당으로 이동할 때마다 검색한 포털사이트. 아마 한국 사람이 많이 찾고 높은 점수를 주던 장소들이 추천되었을 거다. 로컬 주민이 일상적으로 가는 곳들은 빠졌겠지. 내일 하루는 원주민들이 자주 찾는 곳을 갈 까 한다.

※ 길을 가다 몇몇 로컬 음식점을 마주쳤으나 배탈이 날까 하여 그만두었다.



둘째 날(아이리조트스파-담시장-롱선사)


해가 일찍 지던 것에 비해 빨리 떴다. 여섯 시도 되지 않아 일출이 있던 모양이다. 이십삼도, 습도가 낮아 산뜻했다.


아이리조트 머드스파로 갔다. 강가 워터파크와 파묵칼레 닮은 계단식 노천스파, 그 위 떨어지는 폭포수가 인상적이었다. 십사 미터 높은 워터슬라이드는 무서워 타지 못하고 이삼 미터 되는 짧은 것에 앉았다. 위험을 피하고 싶은 아저씨들에게 충분히 빠르고 재미있었다. 초콜릿 색깔 머드 탕에서 몸을 풀고 커다란 원형 해수스파로 갔다. 습기 없는 따뜻한 날씨, 이따금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바닷물 온기를 느끼며 한참을 보냈다. 이국적인 리조트 펍에서 즐긴 맥주와 피자까지 가족여행으로도 하루 좋은 곳이다.


리조트 근처에는 기찻길이 있다. 철로를 따라 우리나라 오륙십년대처럼 양철판으로 된 집과 빨랫줄, 그 아래 비탈에 주인이 버린 것으로 보이는 쓰레기가 널렸다. 도로를 메운 오토바이는 보통 둘 셋을 태우고 쉴 새 없이 뛰뛰빵빵 경적을 울렸다. 한 사람이 신경 써 걸어야 하는 좁은 인도는 그나마도 교통수단이 차지했다. 자그마한 건물들은 간격 없이 빽빽하게 붙어 좁고 높았다. 대개 벽과 지붕이 마감되었으나 일부는 돈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짓는 듯 골조가 노출된 집에 사람이 살기도 했다. 불안하고 안타까웠으나 한편으로 효율과 저비용이 만든 양해가 담긴 질서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도 그랬듯 안전과 위생은 그다음, 한 번에 모든 걸 번듯하게 갖추기는 쉽지 않다.


담시장은 오래된 쇼핑몰 같다. 입구에 무리 지은 노점을 지나면 일 층은 다양한 식료품, 이층은 옷과 신발을 판다. 베트남에는 유명브랜드 공장들이 대거 가동 중이기 때문에 가격이 매우 쌌다. 색감 좋은 반 팔 티가 있어 절반 가격으로 깎으려다 해맑게 웃음 짓는 상인에 조금만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년 여름은 같은 모양 베이지색을 입고 휴가를 떠나야겠다.


롱선사는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1886년 세워진 이 불교 사원은 불당 뒤편으로 정상까지 백오십여 계단이 나 있다. 길을 따라 1/3 올라간 지점에 십칠 미터 남짓 대리석 불상이 편안하게 누워있다. 그래서인지 미소가 더 부드럽게 느껴졌다. 또 1/3 올라간 곳은 누각에 다이홍충이라는 종이 있다. 비교적 최근인 2002년 지역주민들 기부로 지어졌고 타종 있는 날은 절 전체에 맑고 깊게 울린다고 한다. 아쉽지만 오늘은 조용했다. 다시 1/3. 쉼 없이 걸었다면 숨이 가빴을 테지만 한 번씩 선 덕에 그리 힘들지 않았다. 꼭대기에는 연꽃에 앉은 이십사 미터 거대한 고타마 붓다가 나트랑 시가지와 그 너머 바다를 굽어보고 있었다. 나트랑 남쪽을 수호한다는 로컬 주민들 믿음대로 사시사철 변함없다. 롱선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나트랑 대성당이 있다. 1886년 프랑스 선교사가 지은 작은 예배당은 루이 발레 신부에 의해 1928년부터 약 오 년에 걸쳐 지금 모습으로 개축되었다. 웅장한 고딕 건축물 내부를 들어가고 싶었으나 이미 입장 시간이 지나 멀리서 지나쳤다. 나트랑은 다양한 종교가 공존한다. 지역 내 주요 시설인 롱선사와 나트랑 대성당은 물론 천 년 전 세워진 힌두교 포나가르사원 역시 규모가 크고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베트남 국민 대다수는 무교이지만 신자들은 불교, 천주교, 기독교, 까오다이교 네 개를 주로 믿는다고 한다.



쉼 없이 걸은 날 마무리는 마사지였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진 의외의 악력, 그녀들의 고단함으로 세 친구는 내일 하루 보낼 힘을 얻었다. 사람은 타인의 노력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닌지.


저녁 식사는 어제와 같은 ChaoMao1. 훌륭한 음식뿐 아니라 정감있는 미소를 본 여우가 말했다. “직원들 표정이 밝아서 좋아.”



셋째 날(호핑 투어-ChaoMao1 세 번째 방문)


저녁은 공항으로 가야 한다. 짐을 꾸려 호텔 로비에 맡기고 나트랑 항구로 갔다. 욜로 호핑 투어는 선상 공연과 바다 체험을 함께 할 수 있다. 수영을 하지 못해 물이 무서운 곰은 홀로 나트랑에 남고 여우와 둘이 배에 올랐다.


자그마한 체구인 ‘푹’씨는 구릿빛 얼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승객들을 압도했다. 한국 사람보다 K팝에 해박했고 유창한 영어와 뛰어난 팝송 실력으로 젊은 유럽여행객들과도 잘 어울렸다. 파도로 요동치는 뱃머리에서 쉼 없이 마시고 부르고,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열정이 느껴졌다. 잠수구를 쓰고 해저를 걷는 seawalking, 배 이층에서 맨몸으로 뛰어든 에메랄드 바다, 선상 락밴드, 언제 어디서나 영어 하나로 친구가 되는 서양인들, 오랜만에 구속을 벗은 우리나라 엄마들의 노래와 춤 자랑까지 즐거운 하루였다.


“뭐했어?”란 질문에 “커피 마시고 노래 들으며 편하게 있었지.”란 곰의 대답. 몇 년 전 사량도에서 여우와 내가 산에 올랐을 때도 혼자 바닷가 평상에 누워 술병을 곁에 두고 늘어져 있던 곰이었다.


세 번째 ChaoMao1. Bia Saigon과 칵테일로 만든 넵모이는 이미 한 병을 넘었다. 더 마신다면 과한 알코올 냄새로 탑승이 거부 될 수 있건만 결국 두 병을 비웠다. 이틀만 더 묵었으면 하는 아쉬움 역시 잔에 담아 술술 넘겨보냈다.



밤 아홉 시 공항으로 출발했다. 두 시간 연착되었다는 전광판 메시지, 검색대를 지나니 한 시간이 또 늘어났다. 예약 당시 한 시 오십 분 티켓은 출국 한 달 전 열 시 사십오 분으로 통지되었고 미처 알지 못한 사이 원래 시간으로 돌아왔다. 수시로 변경된 시간이 메일 안내가 된다는 걸 공항에 와 알았기에 하는 수 없이 세 시간을 딱딱한 공항 의자에서 보냈다. 베트남 비행기 연착은 본래 악명높다.

※ 항공사마다 다르나 비엣젯은 수화물 기본 한도가 7kg이다. 우리 셋 짐은 그사이 불어나 9kg을 초과했다. kg당 오천 원 추가 지출. 이 돈을 내기 위해 그동안 흥정하고 틈틈이 여행 비용을 계산했나 보다.

비좁은 비행기 안 고된 밤이 지나고 서울 도착. 여러모로 기억에 남은 여행이었다.

Nha Trang, Tạm biệt nhé hẹn gặp lại.

(나트랑, 안녕 또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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