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영장에서 함께한 화롯불

2025.3.29. 토, 부슬비 온 뒤 맑음

by 준환

집 근처에 야영장이 있다. 낮은 일자로 길게 펼쳐졌다 해서 일자산이라 이름 붙은 산 능선을 등지고 완만한 사면으로 뻗었다. 한강과 미사로 갈라지는 간선도로곁에 있어 가기 쉽고 시골이 아니건만 시골 내음이 물씬 풍겨 항상 사람이 많다.


우리 가족은 한두 달에 한 번 간다. 요즘처럼 쌀쌀한 날은 짐을 펴자마자 불을 지핀다. 장작은 쓸 수 없어 착화탄 위에 숯을 수북하게 올리고 토치로 가열했다. 오래지 않아 구수한 냄새가 퍼지며 소리가 울린다.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처럼 청아한 음이다. ‘티링. 티리링..’ (비장탄처럼 단단한 나무로 만든 숯일수록 더 그렇다) 숯 무더기 키보다 불이 자라면 좀체 꺼질 일은 없다. 다만 화로에 수시로 얹어 불이 사그라들지 않게 했다. 익은 숯에 하얗게 꽃이 피고 열기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맥주 캔 하나를 열어 모두 비웠다. 알코올이 서서히 스미어 손끝까지 취기가 전달되니 따스한 화로, 발그레한 탄 앞에서 문득 장자와 나비가 떠올랐다.


석쇠를 앉히고 고기를 올렸다. 금세 익은 겉면, 안쪽은 수분을 간직한 채 천천히 맛있는 색을 냈다. 불 향이 더해지니 다른 직화 조리 고기보다 맛이 좋다. 간간이 탄이 묻은 건 어쩔 수 없는 세금. 함께한 칼국수 역시 잊을 수 없는 맛이다.


밤이 되어 더 절실한 온기를 찾아 한 걸음 다가섰다. 어느새 숯 더미는 빨간 홍시처럼 붉고 탐스러운, 그리고 루비 닮은 영롱한 빛으로 뭉근하게 주변을 밝힌 등이 되었다. 사방으로 퍼진 따스함에 같이 간 일행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배화교인들이 불을 보며 이런 마음이었을까. 어쩌다 어린 시절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나’는 어떻게 살았는지 왜 이러한 사람이 되었는지 그동안 참았던 말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오래지 않아 마주한 화롯불처럼 조금은 선명해졌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자. 그리고 한계를 인정하자.’ 당분간은 그냥 이렇게 살려고 한다.


하룻밤 묵으며 불멍을 하려 필요한 짐을 모두 챙겼었다. 기온은 더 떨어져 영상 2도. 새벽이 되면 영하 2도까지 내려간다. 이런 날씨에 얇은 텐트 안에 잘 수 없어 자리를 정리했다. 잘 익은 숯을 하나씩 땅으로 내려놓아 물로 식히니 만난 시간이 길었기에 그만큼 더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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