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간의 전주여행

2022.9.21.(금) ~ 9.22.(토), 맑음

by 준환

한달살이를 두 번 하며 ‘여유’와 ‘동화’를 경험했다. 그래서 짧은 여행은 이런 묘미를 느끼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었다. 시간이 길면 긴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의미가 달랐다. 직장인에게는 사치였던 지난 두 달, 곧 복직을 앞두고 일상으로 돌아가며 내 여행 방식 또한 적응해야 했다. 시작은 빠르게, 매 곳에 온전히 집중하며 짜임새 있는 하루를 보내면 되었다.


이틀이나 삼 일 갈 수 있는 명소를 찾아보았다. 여러 곳 중에 마이산이 도드라져 보였다. 전라북도 진안에 있는 ‘말의 귀’ 모양을 닮은 산은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고, ‘탑사’라는 한 사람이 오랫동안 쌓아 올린 돌탑 무리가 있는 절도 궁금했다. 서울에서 진안까지 개인차량으로 네 시간, 대중교통 역시 비슷하게 걸린다. 한참을 고민하다 버스와 기차로 골랐다. 비록 몸은 불편하나 이동시간 동안 자유는 짧은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긴 여유였다.



첫날, 마이산

네 시. 설렘에 알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 첫 기차를 탔다.


전주역에 도착했다. 탑사행 버스는 오전에 한 대 오후에 두 대뿐이어서 놓치면 큰 낭패다. 역 건너편에 있는 정류장을 미리 확인하고 커피와 김밥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했다. 아홉 시 이십 분, 정류장에 서서 버스 도착시간을 확인했다. 목적지 차편은 정시 출발이라 일반 전광판이 아닌 벽면 안내판에 따로 적혀있었다. 아직 이십오 분 남았다. 먼저와 앉아계신 아주머니에게 차편을 물었다. “탑사 가는 차는 여기에서 타죠?” 내 등산 차림을 보더니 대답했다. “마이산 가요?” “네, 그리로 갑니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은가보다. “머리 식히러 가나 보네. 아직 좀 남았어.” 칠십을 넘긴 그분은 탑사로 가기 전 마령이란 곳에 산다. 오랜 시간 고된 농사로 닳은 허리뼈를 수술하고 나이 든 지금은 유유자적 마실 다니고 있었다. 농촌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갑자기 일어나 버스가 정차할 위치로 가셨다. “여차하다가는 그냥 지나가 버려. 손을 흔들든가 표시해야지.” 차는 도착시간이 훌쩍 넘어서도 오지 않았다. 잠깐 겁이 났다. 혹시 지나쳤나? 아주머니는 차 놓친 얘기를 하다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기다릴 만큼 기다렸으니 오겠지.” 허나 그분은 거의 한 시간째 정류장에 있었다. 오십 분이 조금 지나 로터리에서 회전해 들어오는 차가 보였다. 작은 크기 버스가 너무 반가웠다.


대관령 아흔아홉 고개를 짧게 줄여놓은 듯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깊은 계곡을 곁에 두고 한동안 올랐다. 요란한 소리 내며 움직이던 차는 평평한 이 차선을 만나 한결 가뿐해졌다. 해발 300~500m 진안고원이었다. 양쪽으로 민가가 드문드문 있고 흐르는 맑은 시내에 백로 한 마리가 먹이를 찾아 걸었다. 잠시 뒤 매끈하게 높이 자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이 나타났다. 걸어 지난다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갈 길이 바빴다.


남부주차장에 내려 첫 목적지는 고금당. 매표소에서 십오 분을 줄곧 오른 넓은 바위 끝에 작은 암자가 있었다. 옛 금당사 자리였던 곳이라 고금당이라 불리는 위치에 비교적 최근에 법당이 지어졌다. 아래는 고려 말 고승 나옹선사가 수도한 곳으로 전해지나 분명치는 않은 석굴 나옹암이 있었다. 석굴 안에 들어가 앉으니 좁은 입구에 비해 한참 높고 둥근 천장이 아늑했다. 바위 위로 낸 계단을 올라 본당에 들어갔다. 삼배하고 그제야 잠시 쉬었다.


능선을 따라 나봉암(처사봉)이라고도 불리는 비룡대로 갔다. 정상 근처에는 전망대가 있다. 아래에서 위쪽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둥글게 휘어진 철제 계단은 가팔랐고 한 번씩 세게 불어오는 바람에 긴장되었다. 난간에 의지해 한 걸음씩 떼어 도착한 곳, 짧은 후회는 눈앞 풍경에 사라졌다. 산 아래 저수지, 민가, 색색의 들판, 주변을 감싼 비슷한 높이 봉우리들과 멀리 구봉산, 성수산 등 천 미터가 넘는 높은 산이 비룡대를 감쌌다. 북쪽 개마고원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어렵사리 올라온 길은 다시 아래로 수백 미터 뻗었다. 마이산까지 가는 길은 심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중간중간 갈림길이 많고 인적이 드문 데다 안내표지가 적어 위치를 수시로 확인해야 했다. 한 시간 더 걸려 봉두봉과 북부 주차장으로 길이 나뉘었다. 쉬운 길을 두고 일부러 산길을 골랐다. 봉두봉은 나무가 울창해 일부 경치만 보였으나 화창한 날씨 덕에 그동안 지나온 멀리 고금당과 비룡대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마이산뿐이다.


동쪽 숫마이봉은 등산이 금지되었다. 오를 수 있는 곳은 서쪽 암마이봉(마이산). 봉두봉에서 한참 내려가 다시 갈림길을 안내하는 작은 표지 앞에 섰다. 탑사와 암마이봉 입구로 가는 길에서 역시 긴 쪽으로 갔다. 안내판에는 분명 팔백 미터 남짓한 거리였으나 잘못 고른 듯 실제는 그 배가 되어 보였다. 둥근 돌로 포장된 가파른 길을 지나 좁고 평평한 곳으로 들어섰다. 한쪽은 바위벽, 반대편은 절벽 아래 낭떠러지, 늘어선 안전봉을 붙잡고 조심조심 건너다가 원시림에 가까운 산비탈을 보며 잠시 땀을 식혔다. 이곳은 꼭 울릉도 나리분지를 닮았다. 다시 서둘러 내디딘 발걸음에 수풀 사이 숨어있던 꿩이 놀라 머리 위로 날아갔다. 한참 오르락내리락 거대한 봉우리를 한 바퀴 돌아 암마이봉 입구 도착. 고된 사십 분, 홀로 다른 세계에 다녀온 듯했다.

※ 갈림길에서 암마이봉 입구까지 걸어 온건 결국 암마이봉을 아래에서 한 바퀴 돈 셈이었다.


높은 계단과 가파른 암반을 네발로 느릿느릿 올라간 곳에 정상이 있었다. 맞은편은 숫마이봉. 고금당에서 걸어오는 동안 조금씩 커지던 것이 이제 시야를 가득 채웠다. ‘멀리서 하나였던 말 ‘귀’ 닮은 모양은 본디 세 개였구나.’ 암반 표면이 드러나 나무가 자리 잡지 못한 면은 그대로 노출되어 비바람에 움푹움푹 파이기도 했다.

※ 마이산 전체는 백악기 진흙과 자갈이 굳어져 만들어진 역암으로 바람에 깎인 풍화혈이 많다.


마이산 입구에는 절이 세 개 있다. 가까운 데부터 은수사, 탑사, 금당사. 금당사는 통일신라 때 건립된 천년고찰이다. 탑사와 은수사는 천구백년대 초 일반인이 지었고 세워진 경위나 사찰 분위기를 볼 때 불교보다는 전통 신앙이나 음양오행 도술에 가깝게 느껴졌다. 특히 탑사는 봉우리 사이 양지바른 곳에 수십 년간 한 사람이 백여 개 비슷한 모양의 돌탑을 음과 양, 오방 규칙에 따라 쌓아 독특한 분위기였다.


진안고원 넓은 들판에 물을 대려 만든 탑영제를 천천히 돌아 출구 쪽 벤치에 앉았다. 산이 푸른 호수에 그대로 담겨 마치 사진에서만 보던 알프스 같았다.


오전보다 더 아담한 유치원 통학버스만 한 차를 타고 전주로 돌아왔다. 한옥마을 게스트 하우스에 들어가 먼지를 씻고 남부시장 명물 피 순댓국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메뉴판에 따로 표기된 암뽕까지 시도해보려다 실제 부위를 듣고 다음으로 미뤘다.



둘째 날, 전주 한옥마을 근처 돌아보기


게스트 하우스 아침. 공용 주방에서 토스트를 먹는 데 사람들이 차례로 들어왔다. 영어와 중국어를 섞어 쓰는 둘. 그중에 한 사람과 인사를 나누었다. 중국인이 아닌 싱가포르인. 내가 먹던 빵이 마지막이었을까. 더 없냐는 물음에 찬장을 뒤졌으나 찾지 못했다. 호스트에게 연락해 보라는 대화를 끝으로 인사하고 나왔다. 방에 와서 돌이켜보니 대신 전화해서 물어봐 주었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서툴고 낯선 외국 여행, 작은 친절이 필요했을 텐데. 또 하나, 혼자 여행하면 대화상대가 그리울 때가 있다. 처음 본 상대와 만남과 이별이 일상적인 외국인들 같은 좀 더 앉아 기회를 만들지 못해 아쉬웠다.


배낭을 메고 한옥마을 가까이 가 볼만한 곳부터 하나씩 찾았다. 황산대첩에서 승전한 이성계가 연회하며 왕좌의 야심을 드러낸 정자 오목대, 그 위에서 마을 모두 눈높이 아래 있었다. 정자가 선 언덕은 숨길이라 이름 붙은 둘레 길과 작고 고요한 대나무 숲이 있다. 발길 닿는 데로 천천히 걸어 육교에 이르렀다. 건너편은 벽화마을. 도시 언덕 오래된 골목에는 대개 하나둘쯤 있게 마련인 곳이지만 그림 솜씨는 어느 마을보다 뛰어났다. 입구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한 컷은 마치 TV 화면이 잠깐 정지된 것 같았다. 마을 뒤편은 산으로 이어졌다. 천여 년 전 견훤은 전주를 도읍으로 삼으며 들어오는 입구에 산성을 하나씩 지었다. 이곳은 동고산성, 멀리 떨어진 곳은 남고산성이 있다. 생소한 후백제 유적지를 보고 싶어 뻐근한 몸을 끌고 다시 산을 올랐다.


이어폰 낀 귀로 심장 박동이 쿵쾅쿵쾅 점점 선명했다. 포장도로는 자갈과 흙길로 바뀌더니 굽어진 곳에 서문지(성문터)가 있었다. 한참 때는 너비 6미터에 높이 2.2미터로 큰 규모였던 성문은 후백제 멸망과 함께 폐쇄되고 지금처럼 잔해만 남겨졌다. 군데군데 유적을 지나 혹시 남은 성벽이 있을까 하여 위로 올라갔으나 보지 못한 채 잠시 길을 잃었다가 뒤편 전망대 중바위로 갔다. 맑은 날이라 멀리 전주 경계까지 보였다. 내려오는 동안 신라 때 건립된 동고사와 천주교 성지를 알리는 표지를 마주쳐 잠시 들를까 하다가 그냥 지나왔다.


산성 아래, 마을 둘레 길을 걷다가 카페가 나타났다. 줄곧 걸은 지라 잠깐의 휴식과 구수한 커피가 그리웠다. 직접 볶은 원두 냄새에 이끌려 핸드드립 한 잔 주문하며 주인에게 물었다. “전주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은 어디인가요?” 산성은 둘러보았으나 사찰과 순례지를 지나친 것에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과거 교황이 전주에 왔을 때 방문했던 곳이라 말해 주었다. 다른 장소에 가려다 호기심에 결국 순례소로 오고 말았다. 아까 산에서 이어진 길로 갔으면 쉬웠을 거다.


풍경 좋은 산에는 대개 절이 있다. 하지만 승암산, 옛 치명자산에는 성당도 있다. 조선 후기 이승훈은 부호 유항검에게 세례를 내렸다. 선조는 천주실의를 최초로 소개한 이수광이고 가까운 연배로 권철신도 있으니, 전라도 최초의 천주교 신자가 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은 머지않아 일어난 신유박해에 그는 물론 어린 아들까지 일가족 모두 일곱이 순교했다. 어떤 걸 위해 생명까지 버리는 건 공감하기 어렵지만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이해되었다. 유항검과 그에 가족 모두 일곱을 모신 묘를 기념해 이 산에 성당과 순교 성지가 조성되었다. 성지 입구에서 성당까지 오백 미터 비탈길은 예수가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과정을 본떠 중간중간 세운 십자가에 새겼다. 엄숙한 글귀와 조형물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경건함이 느껴졌다. 성당보다 더 위쪽에는 그들 가족을 위한 봉분이 마련되었고 마리아를 닮은 예수마리아 바위와 돌로 만든 커다란 십자가가 있었다. 정상가는 길에서 바르셀로나 몬세라트의 Sant Miquel 전망대 가는 길을 떠올렸다. 마치 성지 다니는 순례자처럼. Sant Onofre 예배당은 낭떠러지 앞 좁은 암석 위에 세워져 수도사들이 수행하는 장소였고 드문드문 그들의 무덤이 있었다. 두 군데 모두 종교적 고행의 과정이 고스란히 나타났기 때문에 연상된 게 아닐까 한다.


순례자의 묘를 내려와 작은 산상 성당 안에 앉았다. 시내 성당 유치원에서 온 듯 십여 명의 아이들이 수녀님을 따라 먼저 와있었다. 아직 종교와 믿음, 죽음이란 주제에 관심 갖진 않았겠으나 어떤 것들을 상상했을지 궁금했다. 걱정이나 두려움 없이 소풍 온 것이면 좋으련만. 내리막은 조용한 숲길이다. 다시 찾아온 구월 한낮의 뙤약볕을 하늘 가득 덮은 도토리나무가 시원하게 가려주었다.


시내 전동성당에 갔다. 간혹 들르는 서울 명동성당이 수직으로 찌르게 높고 장엄한 고딕양식이라면 이곳은 둥글고 비교적 아기자기한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내부는 외형에 비례해 천장이 낮고 너비가 좁았으나 엄숙함은 같았다. 천장의 아치형 볼트(궁륭)와 복도 수직 열주, 일렬로 줄에 매달린 전등까지. 붉은 벽돌색과 회색 기둥, 흰색 벽면은 벽화 없이 단정하고 검소했다. 종교적 무거움은 작은 스테인드글라스가 덜었다. 투과된 햇빛이 무채색 내부에 다채로운 색깔로 생기를 불어넣어 편안함이 느껴졌다. 이 모습을 보려 찾는 성당.


성당 가까이 경기전이 있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곳은 태종 10년인 1410년 창건되었다. 경내에는 이성계 어진(초상화)을 모신 본전과 전주 이씨 시조인 이한공의 위패를 봉안한 조경묘, 조선 전주사고, 예종의 탯줄을 묻은 태실 등이 있다. 본래 규모가 더 컸으나 일제강점기 일본인 소학교를 세우며 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지방 도시는 저마다 상징하는 위인이 있다. 전주는 이성계였다.

※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늦은 점심을 먹고 전라감영으로 갔다. 본 모습이 사라진 것을 전북도청이 이전한 자리에 2017년부터 복원을 시작했다. 일부가 완료되어 2020년 문을 열었고 일부는 여전히 건축과 발굴 작업 중이었다. 오후 지역 축제가 있는 듯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전주에는 유명한 빵집이 있다. 다만 분쟁으로 어떤 것이 본래 것인지 한참 보아도 구별되지 않는 비슷한 상호와 상표. 여러 블로그에서 한참 찾은 원조집으로 가 초코파이 묶음을 하나 샀다. 맛이 비슷할 텐데 굳이 집착한 건 아닌지.


SRT에 몸을 실었다. 냄새 폴폴 나는 발을 꺼내 주무르고 싶은 걸 꾹 참고 맥주 한 캔에서 절반쯤 비우며 아무 생각 없이 도착하길 기다렸다. 이틀 알찬 여행. 또 봐요, 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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