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의자와 붉은 소파

by 준환

한 곳에 앉은 사람을 시간의 간격을 두고 사진으로 남기는 일은 의미가 있다. 바커바르트는 삼십 년 넘게 붉은 소파에 앉은 다양한 사람들을 찍었다. 나는 아이가 작은 나무 의자에 앉은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호르스트 바커바르트는 1950년 독일 태생의 사진작가이다. 십오 세 루마니아 부랑아부터 구소련 전직 대통령인 고프바초프까지 붉은 소파에 앉혀 ‘당신의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이 삶에 있어 싫어하는 일은 무엇인가?’ 등 열 가지 질문이 담긴 철학적인 인터뷰를 했다. 약 30년간 진행된 인물 사진 찍기와 인터뷰 작업은 2010년 ‘붉은 소파, 세상에 말을 건네다’라는 이름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밀림, 대형 폐기물처리장, 빙하, 광장, 노천 공연장 등 다양한 장소를 배경으로 한 붉은 소파에 각기 다른 사람이 앉은 사진은 다채롭고 인상적이다.

※ 관련 책 참조



나에게도 그런 의자가 있다. 아이가 잘 걷게 된 다섯 살부터 주말에 집 근처 야트막한 산으로 운동 삼아 다니기 시작했다. 백오십구 미터 작은 산은 집에서부터 입구까지 걸어서 오 분 거리였다. 계단 길을 따라 능선까지 채 십 분이 걸리지 않고, 정상까지는 이십 분 남짓이면 충분했다. 왕복 한 시간이 걸리는 짧은 코스. 다만 시작한 지 오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얼마나 더 가야 해?’란 질문을 수없이 받는다. 그때마다 물 한 모금과 달달한 간식, 수수께끼 놀이로 살살 달래어 오르면 곧 정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지정석처럼 되어 버린 그 의자를 찾았다.


원형의 정상은 제법 넓다. 봉수대로 올라가는 계단 길과 전망대와 간이 무대, 가운데 공간을 빼고 테두리를 빙 둘러 일고여덟 개 나무 의자가 있다. 아이와 나, 가방과 간식거리가 앉는데 알맞은 크기다. 대체로 비어 있는 그곳에 자리 잡으면 미취학 아이는 으레 밥을 달라고 했다. 작은 보온 통에 담긴 뜨거운 미역국이 약간 식은 밥과 만나 멘도롱 또똣 금방 먹을 수 있었다. 반 정도 남았을 때 먹는 사진 찍어 줄 것을 주문한다. 눈이 안 보이게 이를 드러내어 웃으며 손등 보이게 펼친 세 손가락 브이는 고유한 자세. 벌써 햇수로 사 년 열 번 넘게 사진으로 남겼다. 의자는 그대로, 바뀐 것은 어린 티를 벗어가는 외모와 계절의 변화에 따른 옷차림이다.

바커바르트와 나는 한 곳에서 사람을 찍었다. 작가는 여럿을 대상으로 각자가 가진 모습과 생각을 기록하며 동시대 사람들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발견하는 데 의미를 찾았다. 난 한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을 담았다. 그의 표정이 한결같이 기쁘고 천진난만하다는 걸, 오르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걸 느끼며 행복했다. 벌써 열 살, 바커바르트가 보낸 삼십 년은 어렵겠지만 당분간은 계속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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