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능선은 외설악과 내설악을 남북으로 가른다. 속초시와 인제군을 나누는 경계선으로 용아장성 능선과 함께 설악산을 대표하는 암봉(岩峰) 능선이다. 공룡 등껍질 닮은 면면히 이어진 바위 봉들이 용솟음치는 것처럼 장쾌한 모습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높고 험한 산세는 구름이나 안개 등 기상이 자주 변한다. 설악동 소공원에서 신흥사~금강굴~마등령~희운각~대청봉~설악폭포를 거쳐 오색지구에 이르는 코스는 19.1㎞ 거리에 약 열네 시간이 소요된다.
※ 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삼십 대 초반이던 2010년부터 오 년간은 매년 장마가 오기 전 산행했다. 지리산과 설악산 각각 두 번, 한라산은 윗세오름까지만 한번 올랐는데 가장 힘들었던 건 설악산 공룡능선이었다. 무너미고개에서 마등령까지 오 킬로미터 가까이 지속되는 능선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험한 등산 코스 중 하나이다. 한창때 국립공원 제 일경을 가 보자는 생각으로 우연히 제안한 것에 의외로 많은 사람이 호응했다. 모두 여덟 명, 대학에서 같이 동아리 생활했던 후배들이 대다수였고 두 살 연상 회사 선배가 가장 연장이었으니 일행은 스물둘에서 서른다섯 살로 꽤 젊은 편이었다. 여러 경로 중에서 한계령~서북능선~공룡능선~비선대로 이어진 길을 골랐다. 식기와 침낭, 쌀과 부식을 나눠 준비하고 동서울터미널에 모였다. 버스로 두 시간을 달리니 시작점이 나타났다.
짧은 경유지일 뿐이었던 한계령 역시 따로 찾아갈 만한 명승지였다. 천 미터 가까운 고개에서 멀리 속초 앞바다가 어슴푸레 나타났다. 호연지기가 자연스레 생기는 듯, 대자연을 눈에 담아 즐기며 천천히 준비를 마치고 산을 올려다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오르고 있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첫날, 오색약수와 설악폭포를 거쳐 중청봉 대피소에 도착했다. 점심이 조금 넘어 오르기 시작해 산장에 도착한 건 이미 네 시가 넘었다. 해가 일찍 지는 산의 특성상 더 이상 산행은 위험하기에 예약해 둔 순서대로 공용 침상 자리를 배정받고 여름용으로는 다소 두툼한 모포도 함께 받아 들었다. 곧 긴장이 풀어지며 허기가 졌다. 밥 짓고 김치찌개를 끓여 저녁을 준비했다. 이것저것 섞은 데다 마법 라면수프가 조금 들어가 제법 맛이 났다. 오늘 산에서 받은 느낌과 내일 공룡능선의 기대감에 모두 들뜬 분위기, 여럿이 앉아 뜨거운 밥을 후후 불어가며 먹으니 몇 되지 않는 반찬도 푸짐한 만찬이었다. 내일 시작은 새벽이라 여덟 시는 잠에 들어야 한다. 평소보다 많이 이르지만 고된 하루에 바로 곯아떨어졌다.
끓인 누룽지와 김치로 간단히 식사하고 대청봉에 갔다. 가까이서 본 정상은 뜻밖에도 험하지 않은 구릉이었다. 나무 산책로를 걸어 가장 높은 곳에 오르니 오른쪽은 동해, 왼쪽은 설악산이 놓였다. 일출을 맞춘 덕에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었다. 빨간 구슬이 커지며 점점 눈부시게 타올라 나도 모르게 가슴이 벅찼다. 산 쪽은 구불구불한 공룡능선이 웅장하다.
소청쯤 갔을 때 등산로 왼쪽, 멀리 산 중턱에 오세암이 나타났다. 이십 년 전 아이가 주인공인 동명의 영화는 겨울이 배경이었다. 험한 산중, 눈 묻힌 아름다운 풍경을 잠시 상상하며 계속 걸었다. 희운각을 지나 어느새 무너미고개에 다다랐다. 여기부터가 공룡능선이다. 등산화에 스틱을 준비했음에도(일부는 운동화만 신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수 미터 절벽에는 한걸음 높이마다 쇠말뚝이 박혀있었고 바위에 달라붙어 기다시피 오르락내리락 몇 시간을 반복했다. 말소리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 국립공원 제일 풍경은 오래전부터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다만 사고 나지 않고 무사히 내려가기 위해 손과 발에만 집중했다. 때때로 그만두고 싶다가도 무거운 짐을 선뜻 메고 열심히 오르는 후배들 모습을 보며 다시 산행에 전념했다. 네다섯 시간 지났을까 드디어 마등령에 도착했다. 비로소 공룡능선 완주. 그로부터 비선대까지는 그동안에 비하면 평이했다.
몇 년 후 공룡능선에 같이 올랐던 일행 중 한 후배를 만났다. 술자리에서 한껏 흥이 올랐을 때 그동안 휴대전화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꺼내 들었다. 건네받아 과거로 잠시 돌아갔다. 후배의 제안. “형. 공룡능선 한 번 더 가실래요?” 판단력을 잃은 나는 바로 대답했다. “그럴까? 재미있겠는데.” 그 후 만났을 때 다시 말했다.
“아무래도 실언이었던 듯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