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한 인생 2막 유튜브 이야기
시골마당에서 시작된 청돌이네 TV(1)
2020년 봄, 시골집 마당에서 소소한 놀이를 시작하던 어느 날이었다.
아내는 울산에서 도시농부로 텃밭을 가꾸고 있는 친구와 사진을 주고받으며 이런저런 정보를 나누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말했다.
“친구야, 텃밭 사진이랑 동영상도 찍어서 보내 봐라.”
그 말에 아내는 마당과 텃밭, 꽃밭을 가꾸는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 보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아들이 어느 날 툭 던지듯 말했다.
“아빠, 시간도 많은데 유튜브 한번 해볼래요?
잘되면 돈도 벌 수 있어요.”
그리고는 덧붙였다.
“엄마가 사진이랑 영상을 찍어 보내주면, 내가 영상 만들어서 아빠한테 보낼게요.”
코로나로 갈 데도, 할 일도 마땅치 않던 시기였다.
‘잘되면 돈도 번다’는 말에 솔직히 귀가 솔깃해졌다.
“그럴까? 한 번 해보지 뭐.”
그렇게 아무 준비도 없이 **‘청돌이네 TV’**가 시작되었다.
아들이 만들어 보낸 첫 영상은 8분 50초짜리였다.
제목은 ‘호희호희의 마당 가꾸기’.
영상 오른쪽 위에는 아내와 내 사진, 그리고 ‘청돌이네’라는 로고가 들어가 있었다.
5월 12일과 15일에 찍은 사진과 영상들이 그렇게 첫 작품이 되었다.
우리는 그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며 수정했고, 마침내 유튜브에 올렸다.
카카오스토리에도 공유하고, 카카오톡과 SNS로 친지들에게 퍼 날랐다.
아내와 나는 매일같이 영상을 보고 또 보며, 그저 신기해했다.
2주 동안 세 편의 영상을 만들어 준 아들은 어느 날 손사래를 쳤다.
“엄마가 찍은 사진이랑 영상이 너무 많아서 혼자서는 도저히 못 하겠어요.”
그리고는 노트북에 동영상 제작 프로그램을 깔아주며 말했다.
“아빠도 한번 만들어 보세요.”
무료 음악을 사용하는 방법,
자막과 효과음을 넣는 법,
글자 크기와 화면 크기를 조절하는 법까지…
나는 공책을 꺼내 하나하나 적어 내려갔다.
사진을 고르고,
영상에서 필요한 부분만 잘라 이어 붙이고,
전환 효과를 넣고, 자막과 특수 효과를 더했다.
음악은 무료 음원을 다운로드하거나, 아내가 직접 연주한 하모니카 곡을 녹음해 타이틀 음악으로 사용했다.
10~12분짜리 영상 하나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수없이 의논했다.
영상은 몇 번이고 돌려보고 자르고 또 잘랐다.
자막은 내가 초안을 만들면 아내의 손을 거쳐 멋진 시와 문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영상 하나를 완성하는 데는 짧게는 3~4일, 길게는 일주일이 걸렸다.
일주일에 세 번씩 찍히는 사진과 영상은 점점 밀려갔고,
촬영 날짜와 업로드 날짜 사이의 간격은 점점 벌어졌다.
아들은 회사 일로 점점 바빠졌고, 결국 영상 제작에서 손을 놓았다.
아직 프로그램도 익숙하지 않은 내가
일주일에 세 편의 영상을 만들려다 보니 짜증이 늘어갔다.
오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니
눈은 가물거리고, 허리는 뻐근해졌다.
결국 나는 일주일에 한 편만 만들자고 했다.
사진과 영상도 짧게 찍어 달라,
영상 제작에는 관여하지 말아 달라는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무리한 요구도 했다.
유튜브를 시작한 지 한 달.
투닥거림 속에서도 어느새 영상은 12편이 쌓였다.
마당 가꾸기뿐 아니라
산책하며 찍은 영상,
길고양이가 재주를 부리는 모습,
대회에서 공연한 영상까지
있는 대로 올렸다.
영상마다 30명에서 80명 정도가 봐주었고,
구독자는 25명으로 늘어났다.
열세 번째 영상에서는 욕심을 조금 더 냈다.
썸네일을 따로 만들고,
제목도 ‘작은 마당’에서
‘6월의 고향 마당’으로 바꿨다.
채널 설명에는 이렇게 적었다.
「예술가인 아내와 내가 만들어 가는 인생 2막의 일상 이야기입니다。」
그 덕분이었을까.
구독자 수는 어느새 100명을 넘겼다.
돌이켜보면 유튜브는
돈을 벌 수 있다는 솔깃한 이야기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결국 남은 것은
마당에서의 시간,
함께 고민하고 다투고 웃던 순간들,
그리고 우리가 지나온 나날들의 기록이었다.
청돌이네 TV는 그렇게
영상이 아니라
우리 부부의 또 다른 일기가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