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형·형부와 1박 2일
버스 창밖 풍경과 두 점의 미소 앞에서
아들 내외는 사과와 가래떡, 감자떡과 쑥절편으로 아침을 간단히 먹고 연수를 받으러 용산역으로 향했다.
아내와 나는 오전에 국립중앙박물관을 둘러보고 오후에 처형집으로 갈 계획이었지만, 계획을 바꾸기로 했다. 오전에 처형집으로 가서 함께 놀고, 박물관은 다음 날 가기로 했다. 여행이란 대개 이렇게 계획보다 마음이 앞서는 법이다.
오늘도 이동은 지하철 대신 버스였다.
아홉 시쯤 숙소를 나섰지만, 얼굴을 파고드는 바람은 여전히 매서웠다. 휴대폰 길 안내에 의지해 마을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서 버스가 지나가 버렸다. 한참을 기다려 마포06번을 타고 홍대입구역에서 내렸다.
여의도까지 가는 7016번 버스를 찾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휴대폰 방향이 헷갈리자 아내는 타고 온 마포06번 기사에게 달려갔지만,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그때 한 승객이 나서서 방향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타게 된 버스는 전용차로를 따라 시원하게 달렸고, 걷지 않고도 시내와 한강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지하철보다 버스를 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은 회초밥을 먹으러 가자는 형부의 제안이 있었지만, 아내는 집에서 먹자고 했다. 그러자 형부는 조기 퇴근을 하며 추어탕을 사 들고 들어왔다. 말없이 배려하는 방식이 고마웠다.
아내가 걷기 불편한 걸 아는 형부는 요즘 화제라는 황인용 뮤직카페에 가자고 했다. 형부의 소나타는 파주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고, 처형은 단속카메라를 의식해 “천천히 가자”며 몇 번이나 말했다. 한강을 건너 한탄강을 거슬러 올라가,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문화마을에 도착했다.
카페라고 하기엔 창고 같은 건물이었다. 반신반의하며 문을 살짝 여는 순간, 창고 안 가득 클래식 음악이 울려 퍼졌다. 테이블 없이 의자에 듬성듬성 앉은 클래식 애호가들은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고,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말소리는 없고, 음악만 살아 움직였다.
입장료와 함께 차를 주문하고 진동벨을 받아 자리에 앉았다. 뮤직박스 안을 구경해도 되느냐고 물었지만,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몇 곡의 클래식을 듣고 우리는 조용히 자리를 떴다.
집으로 돌아가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차는 임진각으로 향했다.
철책으로 둘러싸인 한탄강은 얼음으로 덮여 반짝였고, 그 차가움은 유난히 더 깊게 느껴졌다. 문득 40년 전, 철원 철책선에서 근무하던 시절이 떠올라 가슴 한쪽이 묵직해졌다.
통일로를 달려 통일대교 앞에서 방향을 틀어 임진각 누리공원으로 들어섰다. 날씨 탓인지 공원엔 바람만 쌩하니 불고, 몇 대의 차량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우리는 곤돌라 승강장 안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잠시 몸을 녹인 뒤, 한탄강을 건너 비무장지대로 향하는 곤돌라에 몸을 실었다.
잠깐의 이동 끝에 DMZ 탑승장에 내렸고, 너무 추운 날씨에 언덕까지만 다녀오자던 말은 어느새 캠프그리프스 안으로 이어졌다.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모른 채 들어선 캠프는 자유 관람이 가능했지만, 탄약고는 안내원의 통제 아래 단체로만 볼 수 있었다. 미군 주둔 당시 사용하던 탄약고는 역사 교육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두꺼운 콘크리트 벽, 창문 없는 구조, 나무로 위장한 지붕, 철제 잠금장치가 달린 문. 그 공간은 말없이 시간을 견뎌온 흔적 같았다.
돌아오는 길, 역사관을 둘러보고 다시 곤돌라 승강장으로 내려왔다. 예고 없던 임진각 방문에, 가볍게 옷을 입고 나온 처형 내외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형부는 이곳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먹었다는 교황빵을 맛 보여 주겠다며 뛰어가 빵을 사 왔다.
저녁은 점심때 먹던 대로 간단히 먹기로 했다. 교황빵을 디저트 삼아 가정식 백반을 맛있게 먹었다. 잠자리는 조카 방에 자리를 잡았다. 침대에서 같이 자면 안 되겠냐는 말에, 아내도 한번 같이 자 보자고 했지만, 지금의 나는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침대는 아내에게 미루고, 나는 매트 위에 이불을 하나 더 깔아 바닥에서 잠을 청했다.
다음 날, 국립중앙박물관에 가기로 한 아침.
푸짐한 과일과 샐러드로 하루를 시작했다. 형부는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겠다며 오전 11시쯤 조기 퇴근을 했다. 날씨도 춥고 지하철은 많이 걸어야 한다며, 망설이던 끝에 차로 가자고 했다. 형부의 배려에 나는 박수를 치며 좋다고 했다.
평일의 국립중앙박물관 지하주차장은 여유로웠다.
우리는 방송에서 몇 번 보았던 ‘사유의 방’으로 향했다. 은은한 조명 아래, 조용히 미소 짓고 있는 두 분의 반가사유상. 하나인 줄 알았던 반가상에, 나란히 앉은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그 앞에 선 사람들은 모두 말이 없었다. 누군가는 기도를 하는 듯했고, 누군가는 소원을 속으로 꺼내 놓는 듯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앞모습뿐 아니라, 뒷모습까지 눈에 담았다. 천오백 년의 시간이 고요히 흐르는 공간에서, 마음도 덩달아 낮아지고 부드러워졌다.
기증관을 지나며 어느새 배가 출출해졌다. 식당 대기 번호는 40번. 언제 불릴지 몰라 복도에 전시된 경천사지 10층 석탑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휴대폰 속 대기 번호가 줄어드는 모습을 신기해하며 기념품 가게도 둘러봤다. 삼십 분쯤 지나 드디어 입장해 비빔밥과 돈가스를 주문했다.
이순신 특별전을 마지막으로 관람을 하고, 다른 전시관은 숙제로 남겨 두었다.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 내외와 용산역에서 만나 콩나물국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서울에서의 1박 2일은 그렇게, 바람과 음악과 기억, 그리고 두 점의 미소로 조용히 마무리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