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랑이가 맞긴 호당이
얼랑이가 남기고 간 자리에서, 호당이가 배운 사랑
2023년 가을, 어느 날.
시골집 창고 밑에서 살던 얼랑이가 새끼 세 마리를 데리고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작고 여린 생명들을 세상에 소개했다.
그중 한 마리는 유독 작고 약했다. 비틀비틀 걷고, 형제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얼랑이는 그 아이를 입에 물고 문 앞까지 와서 애처롭게 울었다.
어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조심스레 다시 창고 밑으로 돌려보내는 것밖에.
며칠 뒤, 걱정은 현실이 되어 있었다.
작은 새끼는 보이지 않았고, 남은 두 마리만이 마당을 뛰놀고 있었다.
얼랑이는 그저 묵묵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두 새끼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사료를 주면 얼랑이는 먼저 먹지 않고, 새끼들이 배불리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우리가 시골집에 가면, 얼랑이는 두 아이를 데리고 와 문 앞에서 ‘야옹야옹’ 울었다.
“우리 아이들이 배고파요.” 하고 외치는 듯했다. 사료를 내주면 얼랑이는 잠시 모습을 감췄다가, 새끼들이 다 먹은 후에야 다시 나타났다.
그러던 어느 날, 얼랑이는 두 새끼를 문 앞까지 데려왔다.
“이 아이들을 부탁해요.”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런 뒤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미는 떠났고, 우리는 수컷에게 ‘호당이’, 암컷에게 ‘호순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호당이'는 아버지가 하시던 금호당약방에서 따온 이름이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불안했다. 우리는 매일 시골집에 있지 못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 마당을 가꾸러 올 때만 사료를 줄 수 있었다. 어미는 너무 무리한 부탁을 한 게 아닐까.
그럼에도 호당이와 호순이는 건강하게 자라났다. 마당을 뛰놀며, 우리가 오면 문 앞까지 나와 반겼다.
그러던 어느 날, 시골집에 간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장독대 옆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는 말. 털빛과 모습으로 보아 ‘호순이’였다. 우리는 마당 한편에 호순이를 묻었다.
그날 이후, 호당이는 늘 장독대 계단 위에 앉아 있었다. 우리가 오면 계단을 내려와 문 앞에 조용히 앉았다. 다른 고양이들처럼 야옹거리며 조르지도 않았다. 그저 말없이 우리를 바라만 보았다.
아내는 늘 다정히 말했다.
“호당이 왔어? 밥 줄까? 조금만 기다려.”
프라이팬에 사료를 담아 내주면, 호당이는 먹다가도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경계했다. 하루 종일 우리 곁을 맴돌다, 우리가 시골집을 나오면 장독대 계단을 올라 조용히 사라졌다.
조금씩, 조금씩 호당이는 우리와 가까워졌다. 어느 날은 방 안 문턱까지 올라와 사료를 먹었고, 또 어느 날은 아내의 다리에 몸을 비비기도 했다. 하지만 손을 내밀면 여전히 물러섰다. 거리는 좁혀졌지만, 완전히 닿지는 않았다.
겨울이 다가왔다. 어린 호당이가 긴 겨울을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데려올까 고민했지만,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도록 두기로 했다. 다행히 옆집 식당 노부부가 길고양이들에게 남은 음식을 챙겨주고 있었다.
겨울 내내, 시골집에 가면 호당이는 여전히 장독대 계단 위에서 우리를 맞이했다. 봄이 되어 마당놀이를 다시 시작했을 무렵, 호당이는 다시 시골집 주변을 터전 삼아 머물렀다. 식당과 시골집 사이를 오가며 자유롭게 살아갔다.
이제 호당이는 훌쩍 자라 성숙한 고양이가 되어 있었다. 창고 지붕 아래를 거처 삼고, 방 안에도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아내는 멸치나 고기, 간식을 챙겨주었고, 거실 소파 옆에 작은 의자까지 마련했다. 하지만 호당이는 그 의자 밑에서 쉬는 걸 더 좋아했다.
호당이는 흰 턱받이, 흰 양말 셋과 노란 양말 하나를 신은 듯한 털빛을 가졌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아내는 마음에 들어 했다.
시간이 흐르며 호당이는 더 자유로운 고양이가 되었다. 가끔은 하루 종일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짝을 찾아 며칠을 보이지 않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돌아왔다. 다시 창고 위 지붕아래 올라가, 묵묵히 집을 지켰다.
그곳이 바로, 얼랑이가 물려준 호당이의 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