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진 자리에 수국 3그루를 심었다
간이 화장실이 치워진 자리
시골집 마당 창고 옆 귀퉁이에는 오래전부터 간이 화장실이 서 있었다.
비어 있는 방과 점포를 세 놓으면서 급히 설치한 것이었다. 세입자들뿐 아니라 오가는 사람들까지 함께 쓰다 보니 관리는 늘 뒷전이었고, 문은 반쯤 열린 채로 굳어 있었다. 파리는 아예 그 안에 살림을 차렸다.
한 달에 한두 번 집에 내려가면 어머니는 으레 말씀하셨다.
“마당 화장실 좀 청소하고 약도 좀 뿌려라.”
그 일은 늘 내 몫이었다.
겨울에는 그나마 나았다. 얼어붙은 것들을 빗자루로 쓸어 변기 안으로 밀어 넣으면 됐다. 그러나 날이 풀리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안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는 숨을 막히게 했고, 바깥에 묻은 흔적들은 차라리 점잖은 편이었다. 그 안에 함께 살고 있는 구더기와, 그것들이 벗어놓은 캡슐 같은 흔적들은 나를 아찔하게 했다.
물로 한 번에 씻어내고 싶었지만, 변기통에 물이 많아지면 다음에 사용할 때 똥물이 튀어 오른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스크를 쓰고 숨을 참은 채, 최대한 빨리 빗자루질을 했다. 구더기들을 쓸어 넣고 돌아서 나오면, 그제야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살충제를 물에 타 변기통 안에 흠뻑 뿌리는 것으로 청소는 끝났다. 그것은 위생을 위한 일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 공간과의 짧은 전투였는지도 모른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도 빈집은 공사장 인부들에게 세를 주었다. 그러나 집도, 화장실도 점점 더 엉망이 되어 갔다. 결국 세를 멈추었다. 사용하지 않는 간이 화장실을 혹시 가져갈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문도 제대로 닫히지 않는 것을 탐낼 이는 없었다.
간이 화장실을 제작·판매하는 업체에 전화를 걸어 보았다. 수거와 처리 비용으로 40만 원이 든다고 했다. 그 금액 앞에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결국 그대로 두기로 했다.
대신 위생업소에서 청소하기 쉽도록 변기를 깨끗이 씻었다. 물을 가득 채우고, 굳어 있던 덩어리들을 몽둥이로 찔러 잘게 부수었다. 문은 테이프로 붙이고 끈으로 묶어 외부인이 쓰지 못하게 했다.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했다.
마당 가꾸기를 시작하면서, 한쪽에 우뚝 서 있는 그 화장실이 유난히 흉하게 보였다. 나팔꽃을 심어 지주대를 세우고 그물을 얹어 온통 덩굴로 감싸 보았다. 한 해는 호박을 심어 커다란 잎과 노란 꽃으로 가려 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덮어도 본질은 가려지지 않았다. 화장실은 여전히 화장실이었다.
결국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했다. 안을 다시 깨끗이 청소하고, 윗부분은 절단해 폐기물 자루에 담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아래의 똥통은 다른 용도로 쓰기 위해 한쪽으로 옮겨 두기로 했다.
아내는 군청 위생과의 도움을 받아 정화조 청소업체에 연락했다. 오래 사용하지 않은 간이 화장실은 유기물이 덩어리 져 있어 청소가 어렵다며, 물을 부어 잘게 부순 뒤 다시 연락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테이프를 자르고 안을 들여다보니 다행히 덩어리는 없고 물만 가득 차 있었다.
집 정화조와 함께 간이 화장실을 청소해 준 사장님에게 비용을 건네며 물었다.
“사장님, 혹시 이 간이 화장실 필요한 데는 없을까요?”
사장님은 아는 사람 중에 이런 것들을 가져가 전기톱으로 잘라 폐기물로 처리하는 이가 있다며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오후 다섯 시가 넘어 전화가 왔다. 일곱 시쯤 가져가겠다고 했다. 전기톱으로 썰어 폐기물 포대에 담아 처리해야 하니 경비가 5만 원 정도 든다며, 커피값까지 6만 원만 주면 고맙겠다고 했다. 십만 원도 아닌 6만 원이라니,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어렵게 화장실을 차에 실은 뒤, 빨랫줄을 풀어 다시 묶고, 꽃밭의 대나무 울타리가 걸려 조금 치웠다며 나중에 다시 손봐 달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어둠과 함께 묘한 허전함이 남았다.
그것이 폐기물로 사라지든, 어딘가에서 다른 쓰임을 만나든, 이제는 내 몫이 아니었다.
훤히 비워진 자리에는 수국 세 그루를 옮겨 심었다. 비와 햇빛을 견디며 언젠가 풍성한 꽃을 피워 줄 것이다. 오래도록 치우지 못했던 시간의 흔적 위에, 이제는 꽃이 피어난다. 나는 그 앞에서 조용히 기대를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