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의 꽃향기와 덜어냄이 주는 깊은 맛
태화강의 꽃향기와 덜어냄이 주는 깊은 맛
아들 결혼식에 멀리서 와 준 친구가 고맙다며 식권 두 장을 내 손에 쥐여주었다.
신랑은 아버지를 닮아 우렁찬 목소리로 신부를 향해 죽도록 사랑하겠다며 힘차게 노래를 불렀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북적이는 뷔페식당은 평생 가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멀리까지 와서는 어쩔 수 없이 배를 채워야 했다. 이 음식 저 음식 기웃거리다 보니 금세 접시는 가득 찼다.
우리는 울산까지 온 김에 휴직 중인 조카 집에서 하루 묵고, 다음 날은 부산 처형 집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그런데 부산에 간 조카가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울산으로 와 있었다.
다음 날, 작약꽃이 만개한 태화강공원에 들렀다. 엷은 분홍빛 꽃잎 속에 흰 아이보리빛을 품은 소르베 피오니도 아름다웠지만, 짙은 향기로 발걸음을 붙잡은 건 순백의 듀체스 드 느무르였다. 꽃향기에 이끌리듯 공원을 거닐다가, 하얀 안개꽃과 꽃양귀비, 수레국화가 어우러진 길가 벤치에 잠시 앉았다. 배낭에서 사탕과 비스킷을 꺼내 당을 보충하며, 양귀비와 색다른 빛깔의 수레국화 씨앗 봉지를 챙겼다.
공원을 나와 고기국숫집에 들렀다. 제주에서 맛있게 먹었던 수육이 올라간 돔베국수가 떠올랐다. 국수를 기다리는 동안 나온 샐러드를 두 접시나 비우고, 감태계란김밥과 수육가스가 먼저 나오자 모두의 젓가락이 김밥으로 쏠렸다. 카레가루를 입혀 튀긴 수육은 내 앞에만 고스란히 남았다. 이윽고 등뼈 육수에 면을 넣은 얼큰한 고기국수가 나왔다. 국물은 곰탕을 연상케 할 만큼 진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강변 대나무숲으로 향했다. 중앙광장 벤치에 앉아 배낭을 품에 안은 채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며 사람들의 흐릿한 발걸음을 바라보았다. 그날 저녁, 조카는 막내 이모를 위해 아보카도 비빔밥을 차렸다. 잘 익은 아보카도를 밥 위에 얹고, 볶은 양파와 명란젓, 계란프라이를 더한 비빔밥이었다. 아보카도를 반찬으로만 먹던 나에게 이 조합은 신선했고, 곧 내 메뉴판에도 추가되었다.
며칠 뒤, 조카 집에서 먹었던 아보카도 비빔밥을 떠올리며 저녁을 준비했다. 양파 반쪽과 오이, 당근을 채 썰고, 마늘과 매운 고추 한 개도 다져 넣었다. 오이와 양파가 노랗게 익어가자 뭔가 허전해 삶아둔 연뿌리와 대파도 썰어 넣으니 프라이팬이 금세 가득 찼다. 명란젓 대신 굴소스와 참기름을 더해 마무리한 뒤 계란프라이를 얹고 잘게 자른 아보카도를 넣어 비볐다.
그러나 맛을 보는 순간, 아보카도의 풍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재료를 하나씩 보태고 싶은 욕심이 문제였다. 조카의 단순한 비빔밥은 담백하고 세련된 조화였지만, 내 비빔밥은 재료 과잉으로 아보카도의 존재가 묻혀버렸다. 음식도 삶도, 덧붙이고 싶은 욕심을 줄여야만 비로소 제맛을 찾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겨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