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출근길에서 만난 클래식

익숙한 길 위에 놓인 새로운 멜로디

by 허정호

익숙한 길 위에 놓인 새로운 멜로디


2018년 초, 합천 사무실로 발령을 받았다.

예전에는 10분 남짓이면 도착했는데, 이제는 1시간이 넘는 출근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가 데워지기도 전에 도착하던 길이, 어느새 음악과 함께하는 긴 여정으로 바뀌었다.

눈 덮인 길을 달리는 아침은 낭만이었다.

봄에는 양파와 마늘을 캐고, 여름이면 벼가 자라 푸른 들판이 펼쳐졌다. 가을이 되면 논이 노랗게 익고, 산은 단풍으로 물들었다. 계절의 흐름이 매일 아침 창밖 풍경에 고스란히 담겼다.

통영에 다니던 시절, 아이들이 건네준 작은 USB가 있었다.

“아빠, 졸지 말라고 넣어둔 거예요.”

그 속에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이 담겨 있었다. 출근길에는 라디오 뉴스, 퇴근길에는 아이들이 담아준 노래. 지루할 틈이 없었다. 하품이 나오면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며 잠을 쫓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낯선 선율이 내 귀를 붙잡았다.

클래식이었다.

힘차게 몰아치는 음악이 출근길과 묘하게 잘 어울렸다. 중간중간 들려온 ‘두 번째 달 – 봄이다’라는 곡은 마음을 포근히 감싸주었다.

그때부터 출근길의 음악은 달라졌다.

<출발 FM과 함께>를 들으며 달리다 보면, 사무실에 도착하고도 음악이 끝날 때까지 차에서 내리지 못하곤 했다. 퇴근길에도 같은 주파수. 이번엔 클래식, 국악, 동요, 가요가 뒤섞여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그저 듣기만 했다. 제목도 모르고, 그저 귀에 담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조금 더 알고 싶어졌다. 음악의 이름, 시대, 이야기를. 그래서 집어 든 책이 나웅준의 『퇴근길 클래식 수업』이었다.

표지에 적힌 문구.

“알아두면 쓸모 있는 최소한의 클래식 이야기.”

“하마터면 클래식도 모르고 살 뻔했다.”

그 말이 괜히 웃음을 짓게 했다.

책은 음악을 시대와 함께 소개했다.

바흐의 <커피 칸타타>에는 커피를 좋아하는 딸과 그것을 못 마시게 하는 아버지가 등장했다. 나는 곡을 찾아 듣고, 녹음까지 했다. 토요명화의 오프닝으로 익숙한 로드리고의 <아랑훼즈 협주곡>, 장학퀴즈 음악으로 알려진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홀스트의 <행성 – 목성>까지. 곡들을 하나씩 노트에 적어 정리했고, 산책길에도 함께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클래식 100선도 찾아들었다.

여전히 트로트를 즐겨 부르지만, 출근길에 우연히 만난 클래식은 내 음악 세계를 조금 더 넓게, 조금 더 세련되게 만들어주었다.

이제는 출퇴근이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집에 머물 때면 라디오를 켜고 클래식을 듣는다.

출근길에서 우연히 만났던 그 음악이, 지금은 내 일상 속에 고요히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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