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남기고 간 작은 선물들
시골집 마당, 가을의 끝자락
시골집 마당은 늘 수수께끼 같다.
일주일에 한두 번 찾아갈 때면, 마당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발목을 잡는다.
잠깐 둘러보려던 마음이 어느새 온종일 손을 움직이게 만든다.
10월 말에는 고구마를 캤다.
앙큼하게 큰 고구마부터 고추만 한 것까지 다양했지만, 올해 고구마 맛은 유난히 달고 파근했다. 저장이 어려워 시골집에 갈 때마다 삶아 ‘빼데기’를 만들어 두었다가 아들과 딸에게 챙겨 보냈다. 고구마줄기 반찬이 식탁 한편을 차지하는 것 또한 작은 기쁨이었다.
지난주에는 백일홍이 아직 남아 있었지만 모두 걷어냈다. 쇠스랑으로 흙을 얇게 뒤집고 고른 뒤 유채를 뿌렸다. 지난해엔 파종이 늦어 파랗게 올라오던 새싹을 까치가 몽땅 쪼아 먹었던 기억이 있어, 올해는 조금 더 서둘렀다.
여름 내내 잡초에 시달린 근대밭은 그대로 두었다가 가을무를 심었다.
지난해엔 배추벌레 때문에 무가 고생을 했지만, 올해는 배추를 심지 않아서인지 벌레 한 마리 보이지 않아 무 잎이 유난히 싱싱하다. 그 잎을 말려 시래기찌개를 끓이니 소박한 저녁상이 한층 넉넉해졌다. 무는 이웃집 것만큼 크지는 않지만 단단하게 잘 자라고 있다.
무와 함께 심은 케일 스무 포기 역시 봄보다 활기는 덜하지만, 여전히 식탁에 힘이 되어 준다.
해마다 나팔꽃에 휘감겨 고생하던 줄장미 두 그루는 나팔꽃이 없는 창고 앞으로 옮겨 숨 쉴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5월이면 예쁜 꽃을 피우는 목단도 넓은 자리로 옮겼다.
옹기종기 심어두었던 무궁화 다섯 그루 가운데 두 그루는 낫질에 잘려 사라졌지만, 남은 세 그루는 몸집이 커져 바람이 잘 통하는 곳으로 옮겨 주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손볼 곳뿐이지만, 그 손길마다 계절이 스며들고 마당은 조금씩 예뻐지고 있다.
“오늘은 별일 없지? 마당만 둘러보고 밤머리재 단풍터널 보고, 대원사 계곡도 가보자.”
그렇게 계획했지만, 마당에 도착하니 이미 11시를 넘겼다.
아내가 부추밭을 매는 동안,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장미 한 그루를 파서 옮겼다. 구덩이를 파고 퇴비를 넣은 뒤 장미를 세워 흙을 덮었는데, 아내는 “앞으로 기울어져 보인다”라고 했지만 그대로 두었다.
아내는 부추밭의 잡초를 매다가 “이거 아예 파서 다시 심자”라고 했다. 군데군데 죽어 공간이 비자 그 자리를 풀들이 차지해 관리가 어려워진 것이다. 파낸 부추를 뿌리째 다듬어 한 모둠씩 나누어 심었다. 단순한 일이지만 시간이 꽤 걸렸다.
아내는 서리를 맞고 축 늘어진 가지나무에서 작은 가지들을 따 찌고 반찬을 만들었다. 아직 어리지만 샐러드용으로 유채도 조금 뽑았다. 입었던 작업복들을 세탁해 걸어두니 마음도 함께 정리되는 듯했다.
집을 나설 채비를 하니 어느새 3시가 넘었다.
웅석봉 밤머리재 단풍터널로 차를 몰았다.
노랑, 빨강, 그리고 아직 푸르름을 머금은 단풍잎들이 섞여 화려하게 맞아 주었다. 지난 수해로 길이 끊겨 돌아 나와야 했지만, 터널 가득 펼쳐진 단풍 덕분에 하루의 피로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듯했다. 대원사 단풍 산책은 다음으로 미루고 집으로 향했다.
마당에서 보낸 하루는 늘 그렇다.
몸은 고단한데 이상하게 마음은 편안하고, 해야 할 일은 많았는데도 어느 순간 충만해진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마당은 또 한 번 우리에게 작은 위로와 선물을 건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