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 친구들도 왔어요”
시골 마당에서 만난 얼랑이의 시간
여름이 시작되는 어느 일요일이었다.
점심을 먹고 마당에 나섰을 때, 옆집 밭을 가로질러 노랭이가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그릇에 사료를 담아 창고 앞 프라이팬으로 다가가자, 노랭이는 재빨리 창고 아래 구멍 속으로 숨었다.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조용히 나를 바라보았다. 프라이팬에 사료를 붓고 다시 마당으로 내려와 풀을 뽑고 있으니, 이내 ‘오도독, 오도독’ 사료 씹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일부러 아무 관심도 주지 않았다. 노랭이는 밥을 다 먹고 나서야 유유히 사라졌다.
한참 뒤 얼랑이가 나타났다.
냇가 둑을 슬며시 넘어와 창고 앞으로 가더니, 노랭이가 먹고 간 밥그릇 옆에 앉아 “야옹~” 하고 울었다.
“얼랑이 왔구나. 맛있는 거 줄게.”
“오늘은 혼자 왔네? 검랑이는 어디 갔어? 싸웠니? 다음엔 같이 와라.”
아내가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사료를 가져와 창고 앞을 지나가도 얼랑이는 가만히 앉아 있다가, 그릇에 사료를 부어주자 조심스레 다가와 먹기 시작했다. 내가 앞을 지나가도 잠깐 나를 바라볼 뿐, 먹는 걸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우리를 집사로 여긴 걸까.
그로부터 석 달쯤 지났을 무렵, 얼랑이는 우리와 훨씬 가까운 존재가 되어 있었다.
우리가 시골집에 오는 날이면, 창고 지붕 아래 전기장판 위에 자리를 잡고 차가 마당에 들어오기 전부터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어떤 날은 차를 밖에 세워두고 살며시 들어와도, 얼랑이는 창고 지붕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다가, 마당으로 들어서면 계단을 풀썩 뛰어내려 와 반겼다.
밥그릇 옆에 앉아 ‘얼랑이 여기 있어요!’ 하듯, 장화를 신은 내 발에 몸을 비비며 따라다녔다.
“아웅~ 아웅~”
밥을 달라는 목소리는 애틋했지만, 손을 내밀면 끝내 가까이 오지는 않았다. 경계와 믿음 사이, 그 미묘한 거리를 얼랑이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밥을 다 먹고 나면 재롱도 잊지 않았다.
뒤집기 열 번, 구르기 아홉 번. 고맙다는 인사를 몸으로 대신하는 듯했다.
언제부턴가 얼랑이는 친구들을 데리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검랑이는 코를 맞대며 인사하는 걸로 보아 친구였고, 노랭이는 몸을 비비며 반가움을 표현하는 걸로 보아—애인인가 싶었다. 두 녀석은 창고 앞이나 구멍 안에 조용히 앉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얼랑이는 꼬리를 바짝 세우고 현관 앞으로 와 울었다.
“야옹~ 야옹~ 친구들도 왔어요. 얼른 밥 주세요!”
“이 녀석, 너만 먹으면 되지 친구, 애인까지 데리고 와서 난리야.”
웃으며 툴툴댔지만, 사료 그릇은 늘 하나씩 더 늘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대사건이 일어났다.
밥을 먹고 있는 얼랑이에게 노랭이가 다가오더니 앞발로 머리를 ‘퍽’ 하고 내리쳤다.
얼랑이는 ‘깨갱’ 소리를 내며 줄행랑쳤다.
그날 이후 노랭이에게는 밥을 주지 않았다. 녀석은 창고 뒤에 숨어 있다가 남은 사료를 재빠르게 먹고는 사라졌다.
그럼에도 얼랑이는 한결같았다. 노랭이나 검랑이가 나타나면 문 앞에서 “야옹~” 하며 밥을 달라고 졸랐다.
하지만 노랭이는 점점 더 기세등등해졌다. 얼랑이와 검랑이를 위협하며 사료를 독차지했다. 결국 검랑이는 마당에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며칠 만에 돌아온 마당에는, 창고 지붕 아래 얼랑이 대신 노랭이가 주인처럼 보금자리를 틀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얼랑이.
조심스럽고, 정 많던 그 얼랑이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마당 한편이 허전해졌다.
오늘도 얼랑이가 다시 돌아오기를, 조용히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