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번역가, 황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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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번역'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믿고 보는 번역가 '황석희'! 10년 전 만우절 날, 페이스북에 장난처럼 적었던 마블 영화 작업을 이뤄낸 후, 지금까지도 수많은 영화가 그의 손을 거쳐가고 있죠! 끝내주는 말맛과 찰진 번역으로 수많은 영화 팬들의 인기를 얻고 있는데요. 그가 번역가가 된 계기와 작업 과정, 번역가의 숙명과도 같은 오역에 관한 내용까지.. 이번주 글에서 파헤쳐 보겠습니다.
[1] 비전공자도 영화 번역 할 수 있다!
[2] '번역: 황석희' 자막 찾으셨나요?
[3] 황석희의 작업 과정 파헤치기
[4] 세상에 완벽한 번역은 없다
[step 1] 비전공자도 영화 번역 할 수 있다!
R=VD, <데드풀> 번역가가 되다
2015년 4월 1일, 황석희 번역가는 ‘마블 영화를 내가 작업 하게 됐다. 계약 꾹’이라는 내용의 글을 게시합니다. 사실 이 시기만 하더라도 사이즈가 작은 영화들만 번역하다 보니 ‘영화 번역계의 안테나 뮤직’이라는 벌명이 붙기도 했다는데요. 하지만 정말 2016년 <데드풀> 번역으로 참여하며 모두에게 이름을 알리게 되죠. 그 후로 만우절이면 연례행사처럼 소망이 담긴 거짓말을 게시하곤 하는데요! 올해 만우절은 ‘댓글에 달린 거짓말들이 기적처럼 모두 현실로 이루어졌다’라고 하네요.
번역은 어떻게 시작하면 되나요?
올해로 20년 차가 된 황석희 번역가,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황석희 번역가는 대학교 3학년 때 우연히 문서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고 해요. 그렇게 시작한 일이 하나둘 많아져 내셔널 지오그래픽, 히스토리 채널 등 다큐멘터리만 500편이 넘도록 번역하게 되었다고! 그 시절 황석희 번역가의 꿈은 개봉관 영화에 ‘번역: 황석희’라는 크레딧 하나. 국내에 있는 거의 모든 영화 배급사에 이메일을 돌렸지만 경력이 없던 번역가를 쉽게 써주는 일은 없었다고 합니다.
배우지도 않았던 영화 번역
극장 자막은 케이블 TV 자막에 비해 글자 수가 턱없이 짧은데요. 번역을 전공하지 않았던 황석희 번역가는 극장에 직접 찾아가 영화를 하나하나 보며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이 최고의 공부였다고 해요. 그러던 어느 날,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첫발을 들이게 됩니다. 황석희 번역가의 필모그래피 중 드라마 <뉴스룸>을 인상 깊게 본 영화사 직원이 영화 <웜바디스>의 번역을 추천해 주며, 마침내 영화 번역가로서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이죠.
번역가요? 어쩌다가 됐어요
영어교육학과를 나온 황석희 번역가는 사실 번역가에 큰 뜻이 없었다고 해요. 다른 친구들처럼 임용고시를 볼 자신이 없었고, 어쩌다 번역 일을 시작해서 수입을 유지하려고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가끔 영화 번역에 큰 소명이 있는 사람들을 볼 때면 자신이 비자발적 절도 행위를 하고 있는듯한 죄책감이 든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제 살길을 어떻게든 찾아내 지속할 줄 아는 현실감’이 쌓여 우리의 성취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고 언급합니다.
[step 2] '번역: 황석희' 자막 찾으셨나요?
황석희 번역 – 캐릭터 = 0
황석희 번역가가 대중에게 이름을 화려하게 각인시킨 작품은 2016년에 개봉한 <데드풀>이었어요. <데드풀>만의 B급 감성과 캐릭터의 성격을 잘 살린 자막으로 ‘번역가에게 상 하나 줘야 한다’는 최고의 찬사를 받았죠. 이런 호평을 받는 데에는 캐릭터 중심의 번역 스타일을 고수하는 황석희만의 노력이 숨겨져 있는데요. ‘캐릭터가 제 번역의 첫 번째예요’라고 여러 인터뷰에서 언급할 정도로, 캐릭터의 톤을 맞추는 데 많은 힘을 쏟는다는 걸 알 수 있죠?
영화 장면을 번역하다
특히 한 인터뷰에서 번역의 색깔을 다르게 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냐는 질문에, ‘연기자가 역할에 따라 다른 옷을 입듯, 번역도 마찬가지다’라고 밝혔어요. 영화의 분위기에 따라 감성적인 말투를 사용하기도, 신랄하고 독한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는 거죠. 이처럼 영화 번역에 있어서 황석희는 영화의 한 장면의 요소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이를 자막에 옮기려는 번역가인 거죠. 물론 그중에서도 '캐릭터의 말투를 설정하고, 그 사람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한다고 해요.
초월번역은 어떻게 하냐면요...
또한, 황석희만의 번역 특징을 하나로 꼽자면 역시 언어유희와 센스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이는 <전지적 참견 시점>에 출연했을 당시 번역 작업에서도 알 수 있어요. 극 중 캐릭터인 곰의 일생을 ‘곰생’으로 번역하는 센스를 보였었죠. 이외에도 <데드풀>에서 원어의 발음과 유사한 단어를 선택하거나 음절 수를 맞춰, 캐릭터가 순간적으로 한국말로 욕설을 뱉은 줄 알았다는 관객의 반응도 있었다고. 자동 음성 지원처럼 한국인이 말한 것처럼 귀에 들리는 자막을 선호하는 황석희답게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기보다 원문의 분위기를 살리는 것이 그만의 장점이겠죠?
"I’m ready", "씨(호)박아!"
영화 자막은 화면에서 최대 두 줄, 한 줄당 15~20자 정도밖에 쓰지 못하는데요. 따라서 자막은 상황에 따라 많은 생략이 들어갈 수밖에 없죠. 함축적인 내용을 자막으로 담아야 하는 특성 때문에 의미 전달이 모호해질 수도 있는데요. 황석희 번역가는 이런 한정적인 환경 속에서도 여러 가지를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요.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는 국내 스크린 역사상 최초로 이모지를 자막에 사용하고, <데드풀 2>에서는 자막 크기에 변화를 주기도 했죠. 이렇게 황석희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에 영화 팬들 사이에서 ‘번역: 황석희’의 자막이 나오길 기다리는 것 같아요.
[step 3] 황석희의 작업 과정 파헤치기
Work with 황석희! 작업 과정을 소개합니다
황석희 번역가의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지, 그 과정을 간단히 들여다볼까요? 그는 '번역 작업에서 자막 하나를 만드는 데 10만큼의 시간이 걸린다고 가정했을 때, 의미를 이해하는데 2의 시간이 소요되는 반면, 한국어로 문장을 구성하는 데에는 8의 시간이 걸릴 만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해요. 또한 원작의 팬덤이 두터운 영화의 경우에는 원작 팬들의 기대를 반영하기 위해 많은 조사 과정을 거친다고 해요. 등장인물의 어투나 표현, 온라인에서의 영화 소비 방식에 대한 철저한 사전 조사를 거쳐 번역 과정에 참고한다고 하죠.
그의 번역 철학을 엿보다
그렇다면 황석희 번역가가 작업 과정 중 꼭 지키고자 하는 철학은 무엇일까요? 먼저 그의 핵심 철학은 간단하지만 명확해요. 바로 ‘전달을 잘하는 것’. 번역가는 ‘제2의 창작자’가 아닌 ‘전달자’라고 강조하죠. 관객들이 원문의 의미를 자연스럽고, 온전히 잘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요. 따라서 작품 본연의 느낌을 해칠 수 있는 인위적임과 과함은 지양하되, 대사를 단순히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보다는 그 너머 배경에 자리 잡고 있는 '문화'에서 느껴지는 뉘앙스의 차이에 주목해요. 그리고 그 차이를 판별해 센스 있게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자 노력하죠.
'이것'은 꼭 지키고자 노력한다고
이외에도 그가 작업 과정에서 꼭 지키고자 하는 것들이 있어요. 첫 번째는 바로 '캐릭터 분석'. 번역하고자 하는 인물이 어떤 성격과 말투를 가졌는지 등 캐릭터에 대해 연구하고 파악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해요. 두 번째는 ‘사회적 영향력’. 욕설이 특정 집단에 대한 비난과 같은 민감한 표현을 번역할 때, 사회적 약자에 대한 표현을 남용하지 않도록 신중을 기울인다고 하죠. 번역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최소한으로 줄이고자 말이에요.
[step 4] 세상에 완벽한 번역은 없다
피할 수 없는 그림자, 오역
번역은 언어와 언어 사이를 오가기에 언제나 오역의 가능성을 안고 있어요. 언어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기에 문화적 맥락이나 개인의 해석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이죠. 잘못된 번역은 원문의 의도를 왜곡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번역가는 늘 오역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요. 황석희 번역가도 ‘오역은 피할 수 없는 존재예요. 그래서 매 작품마다 불안감에 시달려요.’ 라고 밝힐 만큼 번역은 구조적으로 불완전한 작업이에요. 실제로 그는 <데드풀2>를 번역할 당시, 한 번역가가 오역 이슈로 집중 공격을 받는 것을 목격하고 공황 증세까지 겪었으며, 과거 피드백 메일을 공개한 적에는 가족을 해하겠다는 메시지 등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밝히기도 했고요.
황석희가 오역을 대하는 자세
황석희 번역가는 '흔치 않게 오역을 인정하고 수정하는 우직한 번역가'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는 ‘모든 번역가는 늘 최선의 표현을 고민해요. 그런데도 작업한 영화를 100번 보면 100번 전부 더 나은 표현이 떠올라요. 실수일 때도 있고, 언어는 끊임없이 살아서 움직이니까요.’ 라고 말하며 ‘오역은 우길수록 초라해지니 빠르게 인정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편이 좋다’ 며 오역 이슈를 받아들이는 자신만의 자세에 대해 밝혔습니다. 오역에 대한 부담감으로 힘든 시기를 보낸 그는 더 나은 번역을 위해 나름의 방법을 찾았는데요. 이전에는 지적하는 관객들과 대적하기도 했지만 그건 관계를 멀어지게 할 뿐,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인데요! 현재 그는 인스타그램(@drug_sub) 등 SNS를 통해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더 나은 번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관객과 가장 가까운 번역가’가 되기 위해 오역을 두려워하면서도 소통으로 극복하려는 태도가 느껴지지 않나요?
AI로 대체할 수 없는 영역?
요즘 번역가를 다룬 콘텐츠나 인터뷰를 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이 있죠.
"AI가 번역을 완전히 대체할 날이 올까요?"
기술은 날마다 놀라운 속도로 진화하고 있고, 초반에는 어색하게 느껴지던 것들도 점점 정교해지고 있어요. 영화 번역도 AI의 흐름 속에 흘러가고 있는데요. 실제로 지난 2월 방송된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는 황석희 번역가가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AI 기술을 활용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죠. 그러나 그가 '한 자막을 만드는데 10이라는 시간이 걸리면 그 뜻을 이해하는 건 2밖에 안 된다. 나머지 8 동안 문장을 만든다. 훨씬 시간이 오래 걸린다'라고 설명할 만큼, 번역은 단순히 글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원문 속 단어와 장면, 배우의 표정이나 감정 등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해요. 그가 <데드풀> 시리즈에서 보여준 언어유희나 날것의 욕설 번역 등이 대표적인 예시라고 볼 수 있죠.
그래도 아직까지 사람의 몫
'<데드풀>은 제가 가지고 있는 번역관과 원칙, 기술을 모두 무시하고 진행했던 작품이에요.' 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번역에는 단순 해석 이상의 것이 필요해요. 때로는 가지고 있던 원칙도 깨야 하고, 직관적으로 바라봐야 할 필요도 있죠. 이 모든 것은 기술이 아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그만의 찰지게 번역된 욕설과 B급 감성은 AI로는 대체할 수 없는, 온전히 사람의 손끝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결과거든요. AI를 제대로 활용한다면 더 나은 번역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온전히 인간을 대신할 수는 없을 거예요. 언어를 다룬다는 것은 복잡하고도 어려운 작업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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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2025년 4월 22일, 세컨즈 메일 레터 구독자분들께 먼저 전달되었던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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