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땅의 야수들 | 김주혜 (박소현 옮김)
나는 한참 전부터 책장에 묵혀두었던 <달러구트 꿈 백화점> 시리즈를 다 읽자마자 바로 서점으로 향했다. 그때 즈음하여 한국 작가들의 크고 작은 수상 소식이 연이어 들려왔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에 온 국민이 들썩였고, 성인 10명 중 6명이 1년에 책 한 권도 안 읽는다는 대한민국에 뜻밖의 독서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나도 그 시류에 편승해 '열심히 책 읽는 나!'의 자아상을 구축해보고 싶었다(...)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무작정 찾아간 서점에서 한참을 방황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그러던 내 눈앞에 산군님의 우람한 황금빛 등짝이 스쳐 지나갔다. 책의 제목 하며, 커버에 그려진 신기한 촉감의 주황색-검은색 무늬하며... 역시 한국인의 유전자는 본능적으로 호랑이를 경외하도록 설계된 게 분명하다. 나는 그 본능적인 이끌림을 따라 김주혜 작가의 <작은 땅의 야수들>을 집어 들었다. 호랑이가 나오는 한국의 역사 이야기라, 대놓고 취향저격이잖아?
사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워낙에 큰 반향을 일으키는 바람에 비교적 주목을 덜 받았지만, 김주혜 작가의 <작은 땅의 야수들>도 같은 날 톨스토이 문학상을 받았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도대체 상 받는 작품들은 얼마나 대단한 작품들일까?" 그래, 고민 없이 한 번 읽어보기로 하자.
나는 책을 읽기 전에 목차부터 살펴보는 습관이 있다. 이 책의 목차를 살펴보니 특이한 점이 보인다. 각 부의 제목이 특정한 시간적 배경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1부는 1918년부터 1919년까지, 2부는 1925년부터 1937년까지, 3부는 1941년부터 1948년까지, 4부는 1964년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는 독자가 시대적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고 따라가며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된 장치로 보인다. 한편 역사에 관심이 좀 있는 독자들에게는 각각의 장이 그 시기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들을 어떻게 그려낼지 기대하며 읽는 재미도 느끼게 해 준다.
위에 서술한 바와 같이 작중 배경은 1917-18년 전후로부터 1964년까지의 시기로, 일제강점기에서 해방을 지나 군사독재 시기 초반까지에 이르는 격동의 시기를 그려내고 있다. 주위를 둘러싼 거대한 열강들의 힘싸움에 항상 휘말려야 했던 어떤 작고 보잘것없는 땅의 이야기이다. 그들의 근현대사 자체가 한 세기에 걸쳐 압제와 불의에 계속 항거했던, 그리고 마침내 이겨냈던 한 편의 장대한 대서사 아니었던가?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읽는다면 평범한 이야기도 평범하지 않게 보이는 착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작은 땅의 야수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평범한' 인물들이다. 건달에서 시작해 항일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정호나 기생에서 시작해 전국에서 알아주는 배우가 된 옥희, 인력거꾼에서 시작해 굴지의 자동차 기업 창업자가 된 한철과 같은 인물들이 어떻게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느냐 반문하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은 평범하다. 즉, 우리 중 대다수는 그 시대에 그런 배경에서 자라 그런 상황에 던져졌다면 그들처럼 행동했으리라는 것이다.
이들은 어떤 불굴의 의지나 신념보다는 주변의 사람과 환경에 의해 움직인다. 이들은 무슨 거창한 대인배라던가 성인군자, 혁명가, 성녀가 아니다. 그런 걸 기대하고 읽었다가는 정말이지 모든 인물들에게 실망하고 책을 덮게 될 것이다. 불타는 정의감을 가진 혁명의 투사일 줄 알았던 정호는 냉철한 사고보다는 감정적인 행동이 먼저 나가는 막무가내 싸움꾼이었다.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당대의 신여성상을 대표할 줄 알았던 옥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의존하고 싶어 하는 우유부단한 사랑꾼이었다. 밑바닥에서부터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수성가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될 줄 알았던 한철은 문중의 재산을 물려받은 상속자였다.
그렇다면, 인격적인 면에서 이토록 평범한 사람들을 왜 '야수'로 비유되며, 뭔가 특별할 것 같고, 이들에게 영웅적인 서사를 기대하게 되는 것일까? 소련의 혁명가 레프 트로츠키(Lev Trotsky, 1879-1940) 는 "조용하게 살고 싶었던 사람은 20세기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나고 자란 시대는 이런 시대였다. 이들은 인격적으로 평범했을지언정 그 시대와 배경은 그렇지 않았다. 누군가는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말했다. 나는 어쩌면 이들이 난세의 영웅이 되어주길 기대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시대에 그런 배경에서 자라 그런 상황에 던져졌다면 그들처럼 행동했을 것이면서도 그들에게 더 높은 기준을 들이밀며 난세 영웅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들의 삶은 난세의 영웅이라기보다는 한 마리의 야수와 같았다. 그들이 살던 곳은 춥고 척박하며 하루를 버틸 먹이 구하기조차 힘든 겨울의 산속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용맹하게 맞서 싸웠다. 추운 지역에서 서식하는 종이 따듯한 지역에서 서식하는 종보다 몸집이 크다는 베르그만의 법칙(Bergmann's Rule)처럼, 유례가 없을 정도로 다사다난하고 파란만장했던 우리의 역사는 이 작은 땅에 거대한 야수들을 키워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의 삶이 뒤엉킨 오십여 년의 대서사를 모두 읽고 나니 마치 인생을 다 산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들이 살던 현장으로 깊숙이 빠져들어 그들의 삶을 체험하고 온 듯하다. 어느덧 그들의 시대도 저물고 그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하나둘씩 떠나고 있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듯 구른다. 그러나 그 시대는 분명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격동의 시대였다. 김주혜 작가의 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 은 시간을 돌이켜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의 단편을 끄집어내 그 시대의 삶을 체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P.S.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2024년 12월,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린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폭력과 압제의 겨울이 다시 찾아왔다. 어느 겨울보다 춥고 척박한 오늘, 작은 땅의 야수들은 오늘도 그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크고 작은 가치들을 지키기 위해 엄동설한에 맞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