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꾀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이로구나!'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成事在天). 제갈량이 적군인 사마의를 물리칠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되자 탄식하며 내뱉은 말입니다. 제갈량은 사마의를 유인해 함정에 가두는 데까지는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때마침 내린 비가 문제였죠. 화약이 비에 젖어 터지지 않아 그는 눈 앞에서 적을 놓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고사성어는 최선을 다하되 성패는 하늘의 뜻에 달려 있으니, 결과에 연연해하지 말라는 의미로 많이 인용됩니다. 이 고사성어 뜻처럼 인생사, 거대한 환경 앞에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환경은 가히 불가항력적입니다. 하지만 정말 이 위대한 환경 앞에 사람은 결과를 그저 기다리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까요?
"비가 제갈량이 적을 놓치게 했지만,
내 주식의 주가는 올려 줄 수 있다"
화제가 된 책 <브라질에 비가 내리면 스타벅스 주식을 사라>에는 투자에 관한 흥미로운 사례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책의 제목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이 이 투자자는 브라질에 비가 왔다는 기사를 보고 주식을 사들였습니다. 예상했겠지만,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투자였습니다. 언뜻 보면 상관없을 것 같은 브라질의 비와 스타벅스의 주가는 대체 무슨 관계가 있었을까요? 이 성공적인 투자는 우연이었을까요?
투자자는 브라질에 내린 비로 그간의 심각한 가뭄이 해소되어 커피콩이 많이 생산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또 이로 인해 스타벅스의 이윤과 주가가 높아질 것이라고 판단했죠. 그 판단은 맞아떨어졌습니다. 결국 그는 거시경제라는 환경의 흐름을 읽고 투자의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사람이 환경을 좌지우지하지 못해도, 그 흐름에 올라타 내 편으로 만든 좋은 사례입니다.
역사 속에도 환경을 전략적으로 이용해 승리한 사례가 많습니다. '약자'인 영웅들은 환경을 내 편으로 만들어 '강자'인 적을 이겨냈습니다.
'바람으로 이기다'
삼국지의 적벽대전에는 소수의 제갈공명 군대가 조조의 100만 대군을 무찌른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투 당시 계속해서 북서풍이 불다 갑자기 동남풍이 불어왔습니다. 제갈량의 군대는 이에 맞춰 불화살을 쏘았습니다. 불화살은 바람을 타고 조조의 전함을 불태워 버렸습니다. 제갈량이 바람을 불러오는 신통한 묘술을 부려 바람의 방향을 바꾸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동남풍은 온난전선 앞면에서 주기적으로 한번씩 불던 자연의 흐름이었죠. 제갈량은 이에 대한 정보를 미리 파악하고 이를 이용했기에 열세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땅으로 이기다'
무려 300만이었습니다. 수나라는 이 엄청난 수의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쳐들어 왔습니다. 을지문덕 장군은 어떻게 이 침공을 막아낼 수 있었을까요? 그는 일부러 적의 군대에 잡혀들어가 내부 사정을 정탐했습니다. 적의 군량이 부족한 것을 알게 된 그는 무려 7번의 거짓 항복을 하며 수나라 군대를 계속 유인했죠. 그리고 그는 자신이 유리한 전략을 펼칠 수 있는 살수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수나라 군대에게 만약 군사를 거두어 물러가면 항복하겠노라고 했습니다. 수나라 군대가 이를 믿고 퇴각을 결정하고 돌아갈 때 을지문덕 장군은 이들을 뒤에서 쳤습니다. 보급의 문제로 지친 수나라 군대는 강을 건너는 후퇴의 상황에서 제대로 싸울 수가 없었습니다. 을지문덕 장군은 싸우기 전에 이길 판을 마련하고 싸움을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이 때 수나라의 30만 대군 중 살아남은 자는 겨우 2,700명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로 이기다'
45전 40승 5무. 이순신 장군의 불패의 전적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장군이라도 어떻게 연전연승이 가능했을까요? 그는 물길 뿐 아니라, 지형, 바람 등의 환경을 헤아리고, 유리한 환경을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이길 수 밖에 없는 곳으로 적을 유인하고 전투에 임한 것입니다. 가장 유명한 명량대첩에서는 일부러 폭이 좁고 수심이 얕은 명량 해협으로 적을 유인해 싸웠습니다. 아무리 적의 배가 크고 많다 한들 이 곳에서는 통과하기가 어려워 힘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부족한 수군의 약점은 지리적 환경으로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음으로 이기다'
'사면초가'는 심리전의 고전입니다. 이는 항후와 유방의 최후 전투에서 비롯됩니다. 유방은 약속을 어기고 항우의 진지를 포위합니다. 유방은 자신의 병사들에게 초나라 노래를 부르게 했습니다. 항우와 그의 병사들은 대부분 초나라 출신이었습니다.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래가 들려오자 항우는 이미 자신의 고향인 초나라가 유방에게 점령 당했다는 착각을 하게 했습니다. 또 이 노래는 초나라 출신 병사들의 향수를 자극했고 심리적 혼란에 빠트렸습니다. 항우의 측근을 비롯해 많은 병사들은 전투력을 상실하고 도망치듯 사라졌죠. 결국 항우의 군대는 최후 전투에서 제대로 된 싸움도 해보지 못하고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의 대결은 이 사면초가 전략으로 유방의 역전승으로 끝났습니다.
그들은 바람, 땅, 물과 같은 환경이 내 편이 되어 같이 싸우게 만들었습니다. 환경이 내 편에 서주면 심지어 싸우지 않고 마음만으로도 이길 수 있었습니다.
테스형이 말했다, '너 자신'을 알라고.
손자가 말했다, '너 자신'과 '남'도 알라고!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분수를 알라는 의미로 많이 인용됩니다. 하지만 사실 그러한 의미 보다는 무엇보다 자신을 아는데서부터 시작하라는 의미의 말입니다. 자신을 알아야 비로소 그것이 진리를 아는 출발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중국 최대 전략가로 꼽히는 손자는 너 자신을 아는 데서 나아가 남까지 먼저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유명한 '지피지기 백전백태'다. 이는 흔히 '지피지기 백전백승'으로 잘못 쓰여지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나를 알고 남을 알면 전승은 할 수 없더라도 최소한 싸움에서 위태로움은 면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적과 아군을 잘 알고 비교한 후 승산이 있을 때 싸운다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적은 모른 채 아군 실정만 알고 싸우면 성공 확률은 반반이다.
적은 물론 아군 실정까지 모르고 싸우면 싸울 때 마다 패한다"
기업 경영도 '지피지기면 백전불태'입니다. 기업의 싸움도 너를 알고 나를 아는, 환경분석에서 부터 시작합니다. 중요한 것은 '나'도 그리고 '남'도 모두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업의 싸움에서 '나'는 더 구체적으로 '우리 회사의 강점'입니다. 즉, '우리 회사가 가진 특별한 자원과 역량'입니다. '남'은 크게 '시장', 그리고 '경쟁사' 2 분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우리 회사)
기업 경영에 있어 '나'를 보는 데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 회사가 가진 강점입니다. VRIO, 가치사슬 등의 분석 툴을 통해 이를 확인하고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예로, VRIO에서는 (1) 가치가 있는지 (2) 희소한지 (3) 경쟁자가 모방하기 어려운지 (4) 조직이 뒷받침 되는지 등의 기준을 가지고 '진짜 강점'을 파악해 봅니다.
(시장)
외부 환경을 볼 때는 무엇보다 시장이 엄청난 기회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떤 시장이 매력적이라면, 남에게도 매력적입니다. 금방 너도 나도 들어와 레드오션이 될 수 있습니다. 항상 시장의 매력과 함께 나의 강점이라는 축을 함께 놓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쟁사)
알다시피 남, 즉 경쟁자을 알면 나의 경쟁 우위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이 외에 또 다른 굉장한 이점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직접 겪어 보지 않고도, 경쟁자의 움직임을 파악하여 시장이 수요가 있는지, 시장의 크기는 어느 정도 되는지 등을 가능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직접 실험하고, 실패해 보지 않고도 전략이 유효한지도 파악해 볼 수 있습니다.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도 파악해 볼 수 있습니다.
*참고*
기업 환경 분석에는 아래와 같은 틀들이 많이 쓰입니다. 이들을 이론적인 것이라고 치부해 버릴 것이 아니라, 복잡한 경영 환경에서 핵심이 되고 중요한 사항들을 고려해볼 수 있는 유용한 툴로 활용해볼 수 있습니다. 가장 간단한 SWOT 툴 조차도, 실제 유수 기업의 전략 워크숍 등을 통해 전략을 수립하는 데 활발히 활용되고 있습니다.
- 내외부: SWOT, 3C 분석
- 외부: PEST, 5 Forces
- 내부: VRIO, 가치사슬 분석, 7S 모델
환경분석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 회사, 경쟁사, 시장을 별도로 떼서 파악하기 보다는 이것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계속해서 변화한다는 총체적 입장에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각각의 요인들을 분석하는 데서 끝내기 보다는 역동적인 관계들을 읽어내고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우리 회사의 강점을 바탕으로 경쟁사 보다 우위에서 기회를 잡을 것은 무엇인지, 위협적인 상황을 피하기 위해 우리 회사는 어떤 것을 보완하고 강화해야 하는가 등등을 확인해 보는 것입니다.
"지혜가 있어도 세(勢)를 타는 것만 못하며,
좋은 농기구가 있어도 시(時)를 기다리는 것만 못하다”
맹자의 승세대시의 가르침입니다. 그 시대의 흐름를 타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지혜가 있어도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으면 소용 없고, 농기구가 좋다 한들 혹한기에 땅을 잘 일굴 수는 없는 법입니다. 경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勢)와 시(時), 즉 환경을 읽고 활용하는 것이 전략의 출발점입니다.
기업을 둘러싼 큰 대세를 읽고, 시의적절하게 맞춰 행동할 때 쉽게 승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세를 읽고 시에 맞게 올라탄 신생업체들은 몇 십년, 몇 백년 전통 기업들의 아성을 단숨에 넘어섰습니다. 20여년 전 와튼 경영대학원 교수 제레미 리프킨은 저서 <소유의 종말>에서 미래 경제생활은 '소유'에서 '접속(이용)'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했죠. 그의 예측은 적중했습니다. 소비자들은 이전에 '소유'하던 것들을 이제는 '공유'하고 '구독'합니다. '공유'의 세에 올라탄 차량 공유업체 우버와 숙박 공유업체 에어비엔비는 각각 차를 1대도 만들지 않고도, 호텔을 1채도 짓지 않고도 기존 세계 1위 업체들을 넘어섰습니다. '구독'의 세에 올라탄 넷플릭스는 기존의 왕좌 블록버스터를 물리쳤습니다. 안경도, 심지어 양말도 구독서비스에 올라타서 대박이 났습니다. 와비파커와 블랙삭스 얘기입니다. 최근에는 화장품도, 가전도 이 세에 더 적극적으로 올라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렇듯 이기겠다고 덤벼들기 전에 어떤 판이 대세인지 파악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는 쉽고 확실한 승리로 가는 길입니다. 열심히 판을 짜는 사람 보다, 이미 만들어진 거대한 판을 이용하는 사람이 더 큰 승자인 것입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위에 타는 놈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죠. 타고 있으면 제 힘을 안들이고도 남의 힘으로 충분히 갈 수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그 파도에 올라타야 한다고들 합니다. 위협적으로만 보이는 거센 파도도 잘만 이용하면, 오히려 더 쉽게, 더 멀리 원하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 줄 수 있는 것이죠. 세를 파악하고 시에 맞게 올라타는 것. 성공적인 전략의 가장 쉽고 빠른 지름길입니다. 지금 무엇보다 올라타야 할 세가 무엇인지부터 파악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세를 파악하라, 그리고 시에 맞춰 올라타라.
바람과 물, 땅, 심지어 마음만으로도 이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