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경영교육 업계에 있으면서 강의, 책 등을 통해 수많은 전략 사례들을 접해 왔습니다. 그 중 실패 케이스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기업은 어디일까요? "코닥"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코닥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진부한 느낌이 들 지경이 되어 버렸죠. 코닥은 과거 아날로그 카메라 시장에서는 독보적인 1위 기업이었지만, 새로운 디지털 세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망한 사례로 자주 등장하죠.
그런데 여기서는 코닥 사례에 대해 조금 다른 차원에서 이야기해보자 합니다. 사실 이 사례에는 조금은 알려진(?) 반전이 있는데요. 코닥이 '디지털 카메라'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고, 디지털 관련 특허도 굉장히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오히려 그들은 디지털 기술의 측면에서는 앞서 있었습니다. 코닥 내부에서 디지털 카메라의 위협도 감지하고 이에 관련 사업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되고 있었고요. 하지만 코닥은 필름 사업이 워낙 막대한 수익을 가지고 오고 있기에 이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당시로서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고려한 나름의 합리적인 결정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코닥으로서는 디지털 세계에 뒤쳐졌었다는 평가가 나름 억울한 측면이 있을 수 있겠는데요.
그럼 코닥은 왜 대표적인 전략 실패 사례가 될 수 밖에 없었을까요? 단타적인 대응 측면에서는 옳았을지 몰라도, 장기적 관점의 전략 측면에서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인데요. 무슨 말일까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 중 '지금은 맞고 그 때는 틀리다'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처럼 같은 시점이라도 시간에 따른 관점에 따라 판단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죠. 홍상수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현재라는 시간에 충실하기 어려운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연속적 시간이 아닌 점의 측면에서 '지금'이라는 순간을 포착하여 집중을 한 것인데요.
경영에서는 오히려 연속적인 선의 관점에서 지금 상황에 대한 의사결정이 필요합니다. '지금'을 뚝 떼어놓고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이 필요한 건데요. 적어도 전략의 측면에서는 현재에만 충실해서는 안되는 것이죠. 전략은 보다 장기적인 미션, 비전으로부터 나와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션이라 함은 그 기업의 존재의 이유이자 목적이며, 비전은 그 미션이 이루어진 미래의 모습이죠. 전략은 이 미션과 비전을 이루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서 존재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전술은 전략 보다도 더 단기적인 것으로서, 전략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되는 것이죠. 종합하면, 미션과 비전에 기반한 전략, 또 이 전략에 기반한 전술이 필요한 것입니다. 현재의 상황만 근거로 판단한 결정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판단이 전혀 달라질 수 있게 됩니다. '지금은 맞고 그 때는 틀리다'가 아닌, '지금은 틀려도 그 때는 맞으리라'의 판단이 필요합니다.
(더 장기적인)
미션, 비전
↓
(장기적인)
전략
↓
(단기적인)
전술
'전술 없는 전략'은 승리로 가는 가장 느린 길이고,
'전략 없는 전술'은 소란스러운 패배일 뿐이다.
- 손자 -
손자는 전략은 있되 전술이 없으면 승리하기 어렵고, 전술은 있되 전략이 없다면 패배할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손자가 경영에 관해 말했다면 기업의 미션과 비전이 없는 전략과 전술 또한 패배를 좌초하는 것이라고 보았을 것입니다. 'Why to do, 왜 하는가'의 미션, 비전이 바로 서야, 'What to do, 무엇을 할 것이가'의 전략이 있을 수 있고, 그 후에야 'How to do, 어떻게 할 것인가'의 전술이 있는 법입니다. '노와이, Know-why', '노왓, Know-what' 없는 '노하우, Know-how'는 의미가 없습니다. 전술이 아무리 화려해도 방향을 잃는다면 소란스럽고 야단법썩의 행위가 될 뿐이고, 마찬가지로 미션과 비전이 아무리 원대하고 훌륭해도 실제 전술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허공 속 나부낌일 것입니다.
'담배연기 없는 미래(Smoke Free Future)를 꿈꾸는 담배 회사가 있다?'
전략 차원에서 코닥과는 반대의 행보를 보인 기업이 있는데요. 바로 필립 모리스입니다. 필립 모리스는 100년 넘은 1등 브랜드 말보로를 과감히 포기했습니다. 야체크 올자크 필립모리스 회장은 "말보로를 박물관 유믈로 보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대신 건강에 덜 해로운 전자담배 아이코스에 집중하기로 했죠. 이 선언 전까지 말보로의 브랜드 가치는 40조원에 달했고, 52년 동안 세계 판매량 1위를 단 한번도 놓친 적이 없었습니다. 세계적인 기업에서 엄청난 브랜드 가치를 지닌, 그리고 막대한 수익을 가져다 주는 사업을 포기하는 결단은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필립 모리스는 담배가 더 이상 시대적으로 설 자리를 잃었을 때, 담배 회사 임에도 담배를 포기했습니다. 담배가 그 회사가 존재하는 이유 자체는 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필립 모리스는 스스로를 "담배 없는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세계적인 담배 회사"로 규정했습니다. 덜 해로운 무연 제품을 늘리고, 결국에는 담배를 아예 없애겠다고 합니다. 대신 웰빙 및 헬스케어 분야에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대담한 결정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모르지만 그 행보에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습니다.
반면 코닥은 필름이 설 자리를 잃었음에도 필름을 고집했죠. 막대한 수익을 손에서 놓기는 어려웠습니다. 코닥의 사명에서 '필름'은 2020년이 되어서야 지워졌습니다. 필름 자체는 기업의 존재 이유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제대로 된 사명과 비전이 부재했습니다. 만약 코닥이 '필름 회사'가 아닌, 가령 '고객의 소중한 데이터를 간직하는 회사', '고객의 행복한 순간을 기록하는 회사' 등으로 정의했다면 디지털의 세계가 도래했을 때 그들의 선택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또 그에 따라 위상도, 운명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코닥에는 없고, 필립 모리스에만 있는 것.
그것은 존재의 이유가 담긴 전략이다."
전략은 이전에 비해서는 힘을 많이 잃었습니다. 전략 무용론(無用論)까지 나오는 시대입니다. 혹자는 이제 더이상 전략이 쓸모없어졌다고 말하고 있죠. 워낙 불확실성이 커져서 당장의 내일의 일도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또 정확히 예측을 한다 한들, 워낙 변화무쌍하게 바뀌어 버리니 전략이 도무지 무슨 소용이냐는 겁니다. 그때 그때 변하는 상황에 빠르게 잘 대응하는 것만이 기업이 살 길이라 말합니다.
물론 불확실하고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서, 초단타적인 대응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현재를 속도가 승자를 결정하는 '속자생존'의 시대라고도 하기도 하죠. 하지만 전략이 부재한 감지와 대응(Sense & Respond)으로는 과거의 코닥과 같은 전철을 밟게 될 뿐입니다. 그때 그때 급급하게 대응하다 방향성을 잃기 십상이죠. 미션과 비전은 전략과 전술에 방향키 역할을 해줍니다. "지금은 틀리더라도, 그 때는 맞을 것이다."라는 장기적 관점에서의 대응이 필요합니다. 미션, 비전에 기반한 전략, 그리고 이 전략에 기반한 초단타적인 전술적 대응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기업의 존재 이유, 그리고 꿈꾸는 미래의 모습에 일관되게 다가갈 수 있는 강력하고 실질적인 무기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