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다.
계속 뛰었는데 제자리다'
붉은 여왕 손에 이끌려 한참을 달리던 앨리스가 의아해 하며 묻는다.
"왜 달려도, 달려도 같은 곳인 거죠?"
붉은 여왕이 답한다.
"제자리에 있고 싶으면 죽어라 뛰어야 해!
여길 벗어나려면 2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한다고!"
'레드퀸 효과'입니다.
붉은 여왕의 거울나라에서는 무언가 움직이면 주변도 따라 움직이는 특이한 곳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달려도 뒤쳐지거나 제자리일 뿐입니다.
미국의 진화학자 밴 베일른은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생태계 이치도 이와 같다며 '레드퀸 효과(Red Queen Effect)', 일명 '붉은여왕 효과'라고 불렀습니다.
이후에 이 '레드퀸 효과'는 경영학으로도 넘어옵니다. 기업이 진화하는 치열한 경영의 세계도 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승자 기업이 있어도, 주변의 패자 기업이 계속해서 따라 붙기 때문에, 끊임없이 분발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맙니다.
"디지털 세상에서 레드퀸 효과는 더 무시무시해졌다"
거울 나라에서 레드퀸 효과는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움직여도 제자리 신세를 면하기 힘들었으니까요.
그런데 디지털 세계에서는 이 효과가 더 무시무시해졌습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 자율주행 등... 온갖 새로운 기술들이 세상을 송두리재 바꾸고 있죠.
이를 산술급수적 변화가 아닌, 기하급수적 변화라고 합니다.
즉 더하기가 아닌, 곱하기로 변하는 세상이라는 것이죠.
'디지털이다'의 저자 니컬러스 네그로폰테는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시대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만약 일당 1페니를 매일 2배씩 올려준다면, 한 달 급여는 얼마일까?
1월 마지막 날 급여는 하루 1000만, 총 수입은 2100만 달러나 되지만,
2월 마지막 날 급여는 하루 130만, 총 수입은 260만 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1월은 2월보다 3일 밖에 길지 않지만, 이 사이 엄청난 차이가 발생한다.
우리는 이 마지막 3일 안에 살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속도는 단순한 빠르기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신속함과 정확함을 모두 갖춘 '켄타우로스형' 민첩함입니다. 켄타우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종족입니다. 하체는 말, 상체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양립 불가능한 두 대상의 조화입니다. 켄타우로스는 빠르게 나아갈 수 있는 말의 속도를 가진 동시에, 사람의 명석함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전 시대에 '빠름'과 '정확함'은 동시에 갖기 어려운 속성의 것들 이었습니다. 빠르면 부정확했고, 정확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디지털은 이 두가지를 동시에 가지는 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어마어마한 양의 빅데이터는 매순간 쌓이고, 인공지능은 이를 순식간에, 정확하게 처리해 버립니다. 이른바 빠름 + 정확함, '켄타로우스형 속도의 탄생'이죠.
지금의 시대에서 붉은 여왕 효과를 벗어나려면,
빅데이터(Big Data) 기반으로 인공지능(AI)이 개발한
자율주행(Autonomous Driving)하는 드론(Dron) 로봇(Robot)쯤은 타고 달려야 하지 않을까?
디지털 세상에서 '레드퀸 효과'를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디지털 기술들을 적극 활용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버거워졌다는 데에 이견은 없을 것입니다. 대표적인 디지털 기술들(인공지능, 빅데이터, 자율주행, 드론, 로봇, 사물인터넷 등)의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는데요. 하지만 기술 도입에만 초점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의 속도 차이로 나타나는 부조화 현상인 '문화지체'와 유사한 현상이 기업에도 존재하기 때문인데요. '켄타우로스형 속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 뿐 아니라 조직이 전방위적으로 디지털 시대에 맞는 속도로 움직일 필요가 있겠습니다.
가치 창출과 전달의 비즈니스 활동에서 속도를 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고객을 최대한 빨리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기획, 설계, 마케팅 등 비즈니스 활동 전반에 걸쳐 고객의 반응과 피드백을 받아보고 반영해야 합니다.
이전에는 제품, 서비스 출시 이후에나 고객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디지털 기술들은 이 만남의 시기를 더 앞당겨 주었습니다. SNS 채널, 온라인 커뮤니티와 각종 플랫폼 등 다양한 통로를 통해 고객의 반응을 받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화론에서 환경에 선택을 받은 종이 살아남듯, 고객에게 선택 받은 것이 출시가 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환경이 주도권이 있듯, 고객에게 주도권이 있습니다. 대대적 출시 이전에 핵심적 기능만 갖춘 '최소기능제품(Minimum Viable Product, MVP)', 혹은 샘플 제품을 통해 고객의 선택을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아이디어 단계에서 조차 검증이 가능합니다.
이를 통해 정확한 예측에 투입되는 시간을 줄일 뿐 더러, 시행착오로 시간이 허비될 수 있는 위험도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고객의 피드백을 통해 시장의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며 제품을 거듭해서 업그레이드 해나갈 수 있습니다.
'결재 서류가 부장님 책상으로 가는 사이 세상은 변한다'
조직 내부 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고려해 봐야 합니다. 늘 해오던 절차라도 꼭 필요한 것인지 없애거나 축소시켜도 되는 것은 아닌지 재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존은 'PPT(파워포인트)'를 없앤 것으로 유명하죠. 직원들이 보고 자료 PPT를 만드는데 시간이 지나치게 많이 투입된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당연시했던 것들을 속도의 관점에서 처음부터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소규모의 팀 단위가 의사결정 권한을 가지고 실행을 함으로써 속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소규모의 팀이 마치 하나의 사업체처럼 움직일 수 있 수 있는 거죠. 수직적인 결재 절차를 간략히 하여, 고객과 시장의 목소리와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될 수도 있습니다.
* 가속도의 화룡정점은 '신뢰'
"속도의 완성은 신뢰다"
"신뢰가 속도를 만든다"
위와 같은 말을 많이들 합니다. 신뢰와 속도의 상관관계는 대단히 높습니다. 원리는 너무나도 간단하죠. 믿고 맡기고 일을 나누면 당연히 빨리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영의 언어로 '권함 위임'이죠. 의외로 이것을 못하는 리더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믿지를 못하고 내가 다 가지고 있으면 속도는 당연히 느려지기 마련입니다. 또 믿으면 세세한 것까지 감시하고 간섭할 필요가 없어서 이 또한 속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믿고 맡길 수 있는 것은 디지털 시대 리더에게 꼭 필요한 역량이 되었습니다. 다만, 충분한 교감, 소통 등 신뢰를 위한 사전 작업과 장치들은 당연히 필요하겠죠.
붉은 여왕의 나라에서 멈춤은 제자리 걸음이 아닙니다. 퇴보입니다. 빨리 움직이는 세상에 멈춰있으면 후퇴합니다. 거울 나라 보다 변화의 속도가 훨씬 빨라진 디지털 세계에서는 잠깐의 멈춤도 존망을 결정하는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기업들은 뒤쳐지지 않기 위해 기술 혁신 그 자체에만 몰두하고, 기술 도입에만 급급한 모습을 많이 보입니다. 네이선 퍼 교수와 앤드루 시필로브 교수는 HBR 아티클 <디지털이 파괴적일 필요는 없다>에서 디지털 전환의 핵심이 '기술'로 오해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디지털의 핵심은 기술이 아닌 고객이라 하죠. 마찬가지로 탈레스 테이셰이라 교수는 저서 <디커플링>에서 시장 파괴를 이룬 신생 기업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고객이라며, 시장의 판도는 고객이 결정한다고 말합니다.
우버, 에어비앤비와 같은 기업들도 기술이 우세해서가 아니라, 고객의 니즈를 해결하는데 디지털 기술을 성공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죠. 우버, 에어비앤비와 같은 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기업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이렇듯 고도의 기술도 사용자 입장에서 의미가 없으면, 디지털 전환이라 할 수 없고, 반면 복잡한 기술이 아니더라도 고객의 니즈를 더 나은 방법으로 충족시켜 준다면 성공이라고 칭할 수 있겠습니다. 경영의 본(本)인 고객의 과제에 집중하고, 이를 해결할 도구로 기술에 접근하는 형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급할수록 (본으로) 돌아가라.' 이 말은 디지털 시대 기업에게도 유효한 말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