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경인 Jul 21. 2024

<초등대한지리>의 무궁화와 관북 관서 지방의 삼림杉林

1910년 교과서의 무궁화 삽화와 잎갈나무 숲

우리나라가 일본에 강제 병합되기 직전인 융희3(1909)년 12월 1일에 학부검정을 받아 1910년 3월에 출판된 <초등대한지리初等大韓地理>가 있다. 내지에 의하면, 함재선생涵齋先生 안종화安鍾和가 사립학교 지리과와 초등교육 학도용으로 저술했고 광덕서관廣德書舘의 안태형安泰瑩이 발행한 책이다. 이 책에 무궁화 삽화가 들어 있다고 하여, 찾아보았다. 국한문혼용체로 쓰인 총 70 쪽 가량의 얇은 책인데, 12 쪽에 '(근화槿花) (무궁화)' 그림이 실려 있었다. 아마도 무궁화 그림이 실려있는 우리나라 문헌 중 가장 오래된 것이 아닌가 한다. 잎이며 꽃 모양이 대단히 사실적이고, 우리나라가 근화세계, 근역으로 불리는 사실을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다. 


초등대한지지 서문 (인터넷 이미지)


개항기의 교육학자이자 역사가인 안종화安鍾和(1860~1924)는 이 무궁화 그림이 실려 있는 12~13 쪽에서 다음과 같이 우리나라의 특산 식물들도 나열하고 있었다. 읽기 쉽도록 현대어로 옮겨본다.


초등대한지지 12-13쪽, 무궁화 삽화 (인터넷 이미지)

“뽕나무(桑), 닥나무(楮), 옻나무(漆)가 곳곳에 다 있으나, 호남의 대나무 숲과 관북 관서의 삼림杉林이 가장 풍부하다. 복숭아(桃), 오얏(李), 대추(棗), 밤(栗), 살구(杏), 유자(榴) 등의 과실이 많이 생산되나, 봉산 함흥의 배(梨)와 풍기 남양의 감(枾)과 제주도의 귤(橘)과 비자(榧)가 가장 드러났다. 벼(禾), 보리(麥), 콩(菽), 조(粟), 삼(麻), 순무(菁), 면화(棉花), 담배(煙草) 등의 농산물은 전국의 토질이 알맞아 다 심지만, 개성의 홍삼과 강계의 산삼과 한산 장성의 모시(白苧)와 육진六鎭의 삼배(麻布)가 그 이름을 독차지한다. 서해 남해 북해에 다시마(昆布), 미역(海藿), 김(海衣-짐), 해삼(海蔘-뮈) 등의 해산물이 난다. 무궁화가 예부터 토질에 특히 알맞아서 근화세계槿花世界라 일컫고 근역槿域이라 일컬어서, 우리 나라 제일명산第一名産에 알맞은 토질이 된다.”*


잎갈나무 (2023.7.7 오대산 상원사)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일제강점기 직전의 우리나라 삼림과 과수, 농산물, 해산물에 대한 개괄적인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아직 사과가 전국적으로 소비되는 과일이 아님을 알 수 있고, 담배는 언급되어 있지만 감자나 고구마, 옥수수, 고추, 배추 등이 빠진 것이 흥미롭다.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인데, 단 관북지방과 관서지방의 삼림杉林이 무엇인지는 보충 설명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삼杉은 잎갈나무(Larix gmelinii)이다. 졸저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의 “삼杉 – 근대에 조림된 남부 지방의 삼나무, 그리고 잎갈나무”에서 자세히 살펴본 바와 같이, 현재 우리가 삼나무(Cryptomeria japonica)라고 부르는 것은 개항 후 일본으로부터 도입되어 제주도 등 남부지방에 많이 심은 나무이고 북부지방의 삼杉과는 관계가 먼 나무이다. 


신증유합, 잇갈삼 (규장각 원문 이미지)


관북關北 지방은 마천령 북쪽으로 함경북도 일대이고, 관서關西 지방은 마천령 서쪽으로 평안도와 황해도 북부 지역이다. 이 지역에 잎갈나무가 많이 자라고, 조선시대에 잎갈나무를 대개 삼杉으로 표기했다. 이는 <신증유합>에 “杉 잇갈삼”, <물명고>에서 “익가” 등으로 우리말 표기를 한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정태현의 <조선삼림식물도설>을 보면 잎갈나무의 분포지로 “수직으로 표고 300-2300 m, 지리적으로는 강원도, 함경남북도, 중국 북부와 만주에 분포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조선대한지리>의 삼림杉林은 잎갈나무 숲이며,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삼杉이라는 글자로 잎갈나무를 가리킨 사실을 알려주는 중요한 정보이다. <조선삼림식물도설>에서 잎갈나무가 강원도에 분포한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주로 강원도 북부 금강산 유역에 많이 자랐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백두산 여행을 해야 잎갈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현재 남한에서는 오대산 상원사와 치악산 상원사에 잎갈나무가 한 그루 씩 자라고 있는데, 잘 보호해야 하리라.


잎갈나무 (2021.10.3 치악산 상원사)


<끝>


*安鍾和, 初等大韓地理 - 桑楮漆이 處處에 皆有하나 湖南에 竹林과 關北關西의 杉林이 最富하고 桃李棗栗杏榴等의 果實이 多産하나 鳳山咸興의 梨와 豊基南陽의 枾와 濟州島의 橘榧가 最著하고 禾麥菽粟麻菁棉花煙草等의 農産物은 全國土宜로 皆種하나 開城의 紅蔘과 江界의 山蔘과 韓山長城의 白苧와 六鎭의 麻布가 其名을 專擅하고 西南北海에 昆布(다시마) 海藿(미역) 海衣(짐) 海蔘(뮈)의 海産物이오 槿花가 古來로 土宜에 特別함으로 槿花世界라 稱하며 槿域이라 稱하야 我國의 第一名産으로 土宜가 되니라- 초등대한지리, pp. 12~13.

** 정태현, 조선삼림식물도설, 1943, p.19

+표지 : 무궁화 (2023.7.31 단양)

무궁화 (2023.7.15 과천)


이전 04화 민들레와 포공영, 천한 물건이 기사회생의 공이 있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