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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인 Aug 04. 2024

일제강점기 식물교과서의 정원수와 가로수: 무궁화/은백양

모리 다메조, <신수 식물교과서>, 1938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일본인 학자 중에 모리 다메죠(もり ためぞう, 森 爲三, 1884 ~ 1962)가 있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1909년 한국으로 건너와서 한성고등학교 교수로 부임한 후 1925년 경성제국대학 예과 교수로 채용되어 해방 때까지 한국에서 활동한 학자이다. 동물학자로 더 많이 알려졌지만 저서 중에 1922년 조선총독부에서 출판한 『조선식물명휘』가 있어서, 그가 우리나라 식물학 연구에도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식물 관련 문헌에 관심이 큰 나는 최근에 모리 다메조가 1938년 오사카에서 출판한 『신수 식물교과서』라는 얇은 책을 구했다. 


1938년 일본에서 인쇄된 듯하다.


표지에 한반도 지도와 오엽송으로 불리는 잣나무 잎이 그려져 있어서, 단번에 우리나라 식물 관련 서적임을 알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이 저자는, “종래의 교과서가 조선과 만주에서 사용하기에 부적당한 점이 많음이 유감이어서, 주로 조선과 만주의 중등학교에서 사용하게 할 목적으로 실제에 적합하도록 다음 여러 사항에 주의하여 편찬했다.”고 서문에 썼다. 고려한 점 중에, “특히 조선 및 만주의 교재 및 삽화 등을 많이 사용하여 조선 및 만주의 자연을 바르게 인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및 “식물 교재의 배열은 조선 및 만주를 표준으로 하여 계절에 부합하도록 노력했다.”고 하여 실제로 모리 다메조가 우리나라 식물 상을 중심으로 이 교과서를 집필했음을 알 수 있다.


신수 식물교과서, p.120 - 무궁화와 꽃개회나무 도판
무궁화(2024.7.13 과천)와 꽃개회나무(2020.6.13 화악산)


배달되자 마자 펼쳐본 책에는 흥미로운 내용이 상당히 많았다. 이 중 정원수를 다루는 항목에 무궁화 삽화가 보였다. “꽃과 잎과 수형을 감상하기 위해 정원에 심는 수목” 부분에서 모리 다메조가 꽃개회나무와 함께 무궁화 삽화를 수록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6종의 관목과 7종의 교목 등 총 13종의 정원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         관목 : 개나리(れんげう), 황매화(やまぶき), 영산홍/철쭉(つつじ), 앵도나무(ゆすら), 무궁화(むくげ). 꽃개회나무(はなはしどい)

-         교목 : 벚나무(さくら), 복사나무(もも), 살구나무(あんず), 소나무(まつ), 전나무(もみ), 향나무(びやくしん), 측백나무(このてがしは)


몇 해 전에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에 수록된 “순舜, 목근木槿 - 울타리를 장식하는 여름 꽃, 우리나라 꽃 무궁화”를 쓴 다음부터 나는, 무궁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확산되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무궁화 관련 자료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삽화까지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무궁화는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정원을 장식하는 대표적인 화목 중 하나였던 듯하다. 무궁화를 포함하여 이 책에 기록된 총 13종의 나무는 일제강점기 정원의 수목을 연구하는데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신수식물교과서 p.120 - 현재의 광화문 광장인 듯하다. 가로수 수형으로 보아 은행나무가 아닐까?


또한 모리 다메조는 가로수가 심어진 광화문 앞 대로로 추정되는 사진과 함께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가로수로 다음의 8종을 소개하고 있다. 

-         은행나무(いてふ), 플라타너스(プラタナス), 포플라(やまならし), 은백양(はくやう), 네군도단풍(ねぐんどかへて), 아까시나무(にせアカシヤ), 버드나무(かうらいやなぎ), 벚나무(さくら).


신수 식물교과서, p. 120 - 가로수 6종의 잎 그림. 4번이 은백양 잎 모양이다. 2번 플라타너스는 양버즘나무 잎으로 보임.



나는 일제강점기 시나 소설에 나오는 ‘백양’, 혹은 ‘은백양’이 무엇인지 항상 궁금했다. 백양이 Populus속의 사시나무 류임에는 틀림없지만 정확히 어떤 종의 나무인지가 불확실했던 것이다. 현재 도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Populus속의 나무로는 은사시나무(Populus x tomentiglandulosa), 황철나무(Populus maximowiczii), 양버들(Populus nigra L. ‘italica’), 이태리포플라(Populus x canadensis Moench) 등이 있다. 은사시나무는 현대에 육종된 나무이니 일제강점기에 없었을 것이고, 황철나무는 잎 모양으로 보아 은백양으로 불렀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양버들과 이태리포플라가 남는데, 이 나무들은 수피가 짙은 회색이고 잎 뒤도 흰색은 아니므로 은백양으로 불리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 외 사시나무도 있지만 사시나무는 깊은 산 속에 자라는 나무라서 도심에서는 거의 만날 수 없다. 


이태리포플라(2022.5.1 율동공원)


그렇다면 일제강점기에 ‘(은)백양’으로 불린 나무는 이 4종의 나무 외에 별도의 포플라나무가 있단 말인가? 마침 『신수 식물교과서』는 6종의 가로수 잎 삽화를 싣고 있었다. 이 중에 은백양(はくやう)과 포플라(やまならし) 잎도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발간된 『조선식물향명집』에는 은백양의 학명이 Populus alba L.로 기재되어 있다. 1943년 『조선삼림식물도설』에서도 은백양(Populus alba L.), 미류(Populus monilifera Aiton), 양버들(Populus nigra L. var italica Du Roi.)이 도판과 함께 실려 있다. 


정태현, 조선삼림식물도설, 은백양과 미류, 양버들


『신수 식물교과서』 삽화와 『조선삼림식물도설』의 도판의 잎을 비교해보면 은백양은 같은 나무이고, Populus alba L.임에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현재 학명이 P. alba인 은백양은 만날 수가 없다. **** 『조선삼림식물도설』에서는 은백양의 분포지로 경기도만 기록하고 “정원에 식재한다.”고 했다. 일제강점기 당시에도 서울과 서울 근교 지역에만 식재 되었던 듯하다. 


은사시나무가 은백양과 사시나무의 교잡종이라고 한다. 아마도 은백양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은사시나무가 광범위하게 식재되면서 어쩌면 원종인 은백양은 우리나라에서 도태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자료를 통해 일제강점기 은백양으로 불린 나무는 P. alba가 거의 확실하며, 지금은 보기 어렵지만 당시에 가로수로 많이 식재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현재 우리가 주변에서 쉽사리 볼 수 있는 나무 중에 은사시나무가 은백양과 가장 가까울 지도 모른다. 잎을 모두 떨궈 낸 겨울부터 봄까지, 은사시나무의 수피는 하얗게 빛난다. 참고로 삽화의 포플라(やまならし)는 ‘미류’ 보다는 ‘양버들’에 가까워 보인다. 미루나무도 현재는 보기 어려우니, 가로수들도 세월과 더불어 영고성쇠를 겪는 듯하다.


은사시나무 수피(2022.3.6 물향기수목원)

<끝>


 **** 혹시 은백양(P. alba)이 자라고 있는 곳을 아시는 식물애호가님이 계시면 저에게도 알려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페친 송우섭님께서 연세대 교정, 백주년기녑관 앞에 은백양 몇그루가 자라고 있다고 알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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