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즘나무(P. orientalis), 양버즘나무, 단풍버즘나무
“‘플라타너스’를 우리말로 ‘플라탄나무’ 또는 ‘방울나무’라고 합니다. 플라타너스를 서울시에서 제일 처음 가로수로서 심게 된 것은 1916년 때의 일입니다. 그때 일본에서 가져온 씨를 뿌려 7년 되는 어린 나무를 서울 거리의 양쪽 길가에 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서울의 플라타너스의 나이는 1978년이면 63살이 됩니다. 꽃피는 철은 봄이고 20~30m의 높이로 키가 자라납니다. 우리나라에는 서방종과 동방종의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플라타너스란 그리이스의 말로서 ‘넓은 잎새’란 말입니다. 그래서 꽃말도 ‘용서’라고 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왜 하필 플라타너스를 가로수로 심을까요? 그것은 플라타너스 잎새가 넓어 여름에는 그림자를 많이 만들고, 가을에는 잎새가 빨리 떨어져 햇빛을 가리지 않고, 그리고 나무가 빨리 자라고 병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읽었던 조동화(1922~?)의 <꽃 - 꽃과 사랑의 전설, 신화>(열화당, 1978, pp.97~98)의 몇 구절이다.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에 Platanus orientalis L.*은 당시 재배종으로 ‘풀라탄나무’로 기재되어 있다. <한국의나무>는 Platanus occidentalis L.**만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로 기재하고 있고, “꽃차례가 3~7개씩 주렁주렁 달리고 잎의 중앙열편이 깊게 갈라져 길이가 폭보다 긴 나무를 버즘나무(P. orientalis L.)라고 한다. 국명은 ‘수피가 피부에 생기는 버짐(버짐)처럼 벗겨지는 나무’라는 의미다. 국내에 자생하지 않으며 식재 여부도 불분명하다.”라고 기재하고 있다. (p.131).
지금 흔히 플라타너스로 부르는 나무는, 최소한 내가 관찰한 것은 모두 P. occidentalis L.로 열매가 하나씩 매달려 있었다. (P. occidentalis도 가끔 2개씩 자루 하나에 달리기도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1916년 당시에 심어서 <조선식물향명집>에 풀라탄나무로 기재된 나무가 지금 우리가 만나는 양버즘나무일까? 아니면 정말 Platanus orientalis L.일까?
이러 의문을 품고 있다가, 심심하던 차에 내가 찍었던 플라타너스 사진을 살펴보았다. 성남에서 찍은 플라타너스 겨울 사진 중에 열매 2개가 자루에 직렬로 이곳 저곳에 달린 나무가 있었다. 혹시 이게 버즘나무 P. orientalis가 아닐까하고 11월 1일 귀가길에 잠시 예의 사진 촬영장소로 가서 다시 관찰해보았다. 확실히 열매 방울 2개를 달고 있는 곳이 많았고, 몇 곳은 자루 하나에 3개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잎은 양버즘나무와 유사한데 일부 잎은 결각이 더 적고 깊다. 그렇다면 이 나무는 버즘나무와 양버즘나무의 교잡종인 단풍버즘나무 (Platanus x hispanica Miller ex Munchhausen***)일 가능성이 크다. 내가 드디어 도감에서만 보던 단풍버즘나무를 감상한 것이다. 내 나무 선생님에게 확인해보니 거의 확실하다고 하신다. 기쁘다!
이창복의 <대한식물도감>(1979)에는 버즘나무, 양버즘나무, 단풍버즘나무 3종이 기재되어 있다. 이영노의 <한국식물도감>(2006)에도 3종의 플라타너스속 나무가 모두 가로수로 식재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3종 중 아직 버즘나무 P. orientalis는 우리나라에서는 만나지 못했다. (몇 해 전 바르셀로나에서 보았던 가로수로 심어진 것이 아마도 P. orientalis일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다가 사라진 것인지, 아예 도입된 적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아직 만나지 못한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
김현승金顯承(1913~1975) 시인의 시 "플라타너스"를 읽어본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올제,
홀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영혼을 불어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神이 아니다!
수고론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플라타너스,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窓이 열린 길이다.
이제 곧 겨울이 되면 플라타너스 가로수는 잎을 다 떨구고 열매만 매달고 있을 터이다. 앞으로 한동안 플라타너스를 보면 고개를 빼어 나무 위를 쳐다보면서 자루 하나에 달린 방울 개수를 세고 있을 것 같다. 버즘나무는 영어로 Oriental plane이라고 불린다. 이 나무는 아주 당당한 나무로 의약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대 그리스 학자 히포크라테스가 거대한 Oriental tree아래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버즘나무는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친 행단의 살구나무에 비견되는 흥미로운 나무이다. <조선식물향명집>의 기록이 맞다면 우리나라 어디엔가 버즘나무가 있을 것이다. 하루 빨리 버즘나무를 감상할 날을 기다려본다.
(끝)
*Oriental Plane (Platanus orientalis L.) – The Oriental plane is a majestic tree. Hippocrates, the ancient Greek ‘father of medicine’, is said to have taught his medical scholars under the great Oriental plane tree that still exists on the island of Cos.” (The World Encyclopedia of Tree, p.112)
**Buttonwood (Platanus occidentalis L.) – Sometimes called the American cycamore, this large tree occurs right across eastern North America. The leaf is heart-shaped at the base, with more, bur shallower, lobing than either the London plane or the Oriental plane.
***London Plane (Platanus x hispanica Miller ex Munchhausen) – This tree is a hybrid between the Oriental Plane, Platanus orientalis and the American buttonwood, Platanus occidentalis. It is widely planted in cities across the world (including London) because of its ability to withstand atmospheric pollution and severe pruning. The London plane differs each parent in being more vigorous, and having leaves with shallower lobes and lighter coloured bark, which peels to reveal cream patches.
+표지사진 - 양버즘나무 (2022.3.6 물향기수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