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시장 김성락 선생의 각궁 제작 시연을 보고
졸저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에는 “겨울나무의 상징 자작나무 -화樺”라는 제목의 자작나무(Betula pendula)에 대한 글이 있다. 이 글에서 나는, “자작나무는 백석의 시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한문으로 화樺 자를 쓴다. 자작나무 껍질은 화피樺皮라고 하는데, 기름기가 많아서 불에 잘 타기 때문에 화촉樺燭으로 만들어 썼고, 활 제작에서 활을 감는 용도로 쓰였다. … 고어사전을 참조해보면 ‘봇’은 ‘자작나무’를 나타낸다. 가끔 이 ‘봇’을 ‘벚’으로 오해한 때문인지 화피樺皮를 ‘벚나무 껍질’로 설명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이다.”*라고 적었다.
그 글을 쓸 때에 나는, 활 제작의 원료로 쓰인 화피樺皮는 옛 문헌에서는 ‘봇나무 껍질’ 표현되어 있지만, 현대의 자작나무 껍질임을 확신하고 있었으나, 당시에는 실제 벚나무 껍질도 활 제작에 사용하는지 여부에 대하여 전문가의 자문을 받지는 못했다. 그래서 “『전운옥편』을 보면 화樺의 “껍질을 활에 붙일 수 있다(皮可貼弓)”라고 했다. 원래 자작나무 껍질을 민어부레로 만든 풀을 사용하여 활에 붙임으로써 습기를 방지하는 용도로 썼는데, 벚나무 껍질을 대용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화피樺皮를 벚나무 껍질로 이해하게 된 듯하다.”**라는 주석을 달아 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수없이 만난 벚나무(Prunus serrulata)는 껍질이 벗겨지지 않을 듯하여, 활 제작에 쓰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확신할 수는 없었다.
사실 내 눈으로 활 제작 과정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어떤 결론을 내리기란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수목 전문가들의 주장과 상반될 경우 특히 그렇다. 예를 들면, 박상진 교수는 『문화와 역사로 만나는 우리 나무의 세계 - 2』에서, “옛사람들은 자작나무를 ‘화(樺)’라 하고 껍질을 ‘화피(樺皮)’라 했는데, 벚나무도 같은 글자를 사용했다. 전혀 다른 나무임에도 같은 글자로 표기한 것은 껍질로 활을 감는 등 쓰임이 같았기 때문이다.”***라고 쓰고 있다. 즉 박상진 교수는 활 제작에 벚나무 껍질을 사용한 것을 사실로 기술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화樺’가 자작나무와 벚나무를 뜻한다고 설명한 것이다.
최근에 참고문헌으로 구한 이은규의 『향약명 어휘의 체계와 변천』에서도, 우리 향약관련 문헌에 한글로 ‘봇’, ‘봇나무’, ‘봇겁풀’, ‘벗나무껍질’로 표현된 ‘화피樺皮’나 ‘화목피樺木皮’를 현대의 ‘벚나무’로 설명하고 있었다.**** 이 중 ‘벗나무껍질’은 1944년에 杏林書院에서 출판한 『중간향약집성방』인데, 이 기록이 이은규가 화피를 벚나무 껍질로 이해하게 하는데 일정부분 영향을 주었을 듯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화목피樺木皮 (鄕名) 벗나무껍질”로 기록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도 특별히 “화목樺木은 우리 조선에는 경기 이북 고산지대에 난다.”*****라는 주석을 달아서, 현재 우리가 꽃을 감상하는 벚나무는 아님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제 우리나라에서 활을 제작할 때 벚나무 껍질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최근 몇 년동안 내 머리속을 떠나지 않던 숙제였다. 이 숙제는 지난 7월 6일 오후,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1534~1591)의 <대동운부군옥> 전시를 보기 위해 예안향교를 다녀오는 길에 예천박물관을 방문하면서 거의 풀 수 있었다. 때마침 2024년 국가무형유산 궁시장 보유자 김성락金成洛의 한국의 전통 활인 각궁 제작 공개 실연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7월 5일부터 7일까지 3일간 열리는 실연 행사였다. 5일은 대나무와 뽕나무 연소 작업, 6일은 물소뿔 펴기 작업, 7일은 해궁 작업 또는 화피 작업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내가 방문한 6일은 비록 화피 작업은 하지 않았지만, 활 제작의 원료인 물소뿔, 대나무, 뽕나무 (아카시 나무), 참나무, 민어 부레 (민어 공기 주머니), 화피 (자작나무 껍질), 소심줄을 전시하고 있어서, 화피가 자작나무 껍질임을 쉽사리 알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김성락 궁시장님께 평소 의문인 벚나무 껍질도 쓰이는지에 대한 질문을 드렸다. 김성락 선생의 답변을 대강 요약하면, “벚(봇나무) 껍질이 자작나무 껍질이다. 우리 나라에 나는 벚나무(봇나무)는 껍질이 얇아서 사용하지 못한다. 북한이나 길림성 등 북쪽의 추운 지방에서 나는 자작나무(봇나무)가 껍질이 굵어서 활을 만드는 데 쓴다. 지금은 주로 중국에서 수입한다.” 정도이다.
김성락 궁시장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나라에 자라는 벚나무(Prunus serrulata) 류의 껍질은 쓰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우리 옛문헌에서 한글로 ‘봇나무’라고 표기한 것이 현재 ‘벚나무’와 발음상의 유사성 때문에 빚어진 오해라고 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이제 혹시라도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 재판이 나올 경우, p.273의 주석은 다음과 같이 수정해야 겠다.
『전운옥편』을 보면 화樺의 “껍질을 활에 붙일 수 있다(皮可貼弓)”라고 했다. 원래 자작나무 껍질을 민어부레로 만든 풀을 사용하여 활에 붙임으로써 습기를 방지하는 용도로 썼는데, ‘봇나무’와 ‘벚나무’의 발음이 비슷하여 화피樺皮를 벚나무 껍질로 이해하고, 벚나무 껍질도 활 제작에 사용한다고 오해하게 된 듯하다. 그러나 2024년 7월 6일 예천박물관에서 개최된 궁시장 김성락 선생의 각궁 제작 시연에서는 중국에서 수입된 자작나무 껍질을 화피로 사용하고 있었고, 우리나라 벚나무 껍질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떤 문제를 화두로 삼고 풀릴 날을 기다리면 언젠가 풀리나 보다. 우리나라 벚나무 껍질은 활 제작에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렇게 우연히 <대동운부군옥> 전시회를 보고 싶어 방문한 예천박물관에서 확인하게 될 줄이야! 역시 답은 두 발로 현장을 다녀야 찾아진다. 서재에 틀어박혀 문헌만 살펴서는 절대로 이 문제를 풀 수 없었을 것이다. 언젠가 궁시장님들과 자작나무와 벚나무는 다른 나무일 뿐 아니라 관계가 먼 나무임을 밝히고, 그분들로 부터 직접 벚나무 껍질은 활 제작에 현재 사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과거에도 사용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받고 싶다.
<끝>
*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 이유출판, p.264.
** 앞의 책, p.273.
***『문화와 역사로 만나는 우리 나무의 세계 - 2』, 박상진, 김영사, pp.417~418. (내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일부 현대 문헌에서 활 제작에 벚나무 껍질을 쓴다는 기록이 있을 뿐, 고문헌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다. 고문헌에서 벚나무는 보통 ‘산앵山櫻’ 정도로 표현하고 있었고, 화피樺皮의 경우 대부분 꽃의 유무나 자라는 지역 등의 정보로 우리나라 남한 전역에 자생하는 벚나무임을 확신할 수 있는 용례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樺木皮’의 ‘樺木’은 ‘벚나무’를 이른다. 『동의』에서부터 ‘봇’으로 나오는데****** ‘봇’은 ‘벚’ 곧 ‘버찌’를 말한다. 『표』에서는 ‘봊’이 ‘벚’의 잘못된 말로 풀이되어 있지만 전통적 우리말 이름이 ‘봇’이었다. 그렇다면 ‘버찌’의 축약형이 ‘벚’이 아니라 ‘벚’에서 ‘버찌’가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어원을 좀더 정밀하게 추정해 볼 만하다.” – 이은규, 『향약명 어휘의 체계와 변천』, 2022, p.821.
*****樺木皮 (鄕名) 벗나무껍질. … [註] 樺木은 我朝鮮에는 京畿以北 高山地帶에서 産한다. – 중간향약집성방, 행림서원, 1944.
****** <동의보감> 탕액편에서는 "樺木皮봇 ... 今之裝弓 樺皮也 木似山桃 皮有花紋 北來者佳"라고 했다. 즉 활을 치장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화피樺皮인데, 나무는 산복숭아 비슷하고 껍질에 화문花紋이 있으며 북쪽지방에서 나온 것이 좋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동의보감>의 '봇'도 자작나무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표지사진 - 김성락 궁시장 활 제작 시연회의 화피 (2024.7.6 예천박물관)
++ 김성락 궁시장님의 말씀을 브런치 글로 적었는데, 혹시 필자가 선생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했거나 선생님의 명성에 누가 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혹시라도 제가 잘못된 내용을 기록했다고 알려주시면 즉시 수정 혹은 해당 내용을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