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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인 Jun 24. 2024

민들레와 포공영, 천한 물건이 기사회생의 공이 있네!

김호 저, <허준 평전>을 읽고 (2)

안동과 가까운 상주 출신 선비중에 태촌泰村 고상안高尙顔(1553~1623)이라는 분이 있다. 1573년에 문과에 급제했고,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었다. 1611년 광해군 때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서 농사와 학문에 전념했다고 한다. 김호 선생의 <허준 평전>을 읽다가 고상안이 정유재란 당시 명나라 병사들의 대화를 통해 포공영蒲公英이라는 약재가 무엇인지 알게 되는 과정을 기록한,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내용을 만났다.


“1598년 봄 명나라의 병사가 왕래하면서 5~6명이 가까운 이웃에 머물렀다. 그들이 어떤 나물을 캐어 삶아 먹고 있어서 무슨 나물이냐고 물으니 포공영이라고 했다. 그 나물은 시속에서 이른바 두응구라(豆應仇羅)라고 불렀다. 포공영은 꽃이 피면 꽃잎이 국화와 비슷하고 그 줄기를 꺽으면 흰 즙이 나오는데 어린이들은 그것을 불어 소리를 낸다. 이후부터 유종(乳腫) 환자는 본초의 처방에 의거하여 포공영 두 푼, 인동초(忍冬草) 한 푼을 술 한 잔에 넣어 달여 복용하면 즉시 효험이 나타났다. 누가 알았겠는가? 천하디 천한 물건이 기사회생의 공이 있는 줄을.” 포공영의 조선 약재 이름 즉 향약명은 두응구라, 오늘날의 둥굴레였다.*


서양민들레 (2018.4.8 안동)
서양민들레 열매 (2019.4.28 안동)


<한국고전종합DB>를 찾아보니, 고상안의 <태촌선생문집> 권4 ‘효빈잡기效嚬雜記' 중에 ‘포공영蒲公英'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고상안은 포공영을 민간에서 ‘두응구라’ 나물이라고 부른다고 기록했지만, 아무래도 잘못 기록했을 가능성이 큰 듯하다. 왜냐하면, 고상안이 묘사한 식물체는 민들레 류이고, 당대에 간행된 <언해구급방>과 <동의보감> 등 여러 문헌에서 포공영을 ‘안잔방이’, 혹은 ‘무은드레’***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록들을 바탕으로 정태현 등은 <조선식물향명집>에서 Taraxacum platycarpum에 우리말 ‘민들레’를 부여하고 한자명 포공영蒲公英을 병기했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포공영은 민들레를 포함한 Taraxacum속의 식물을 뜻한다.


태촌집, 효빈잡기 중 포공영 (한국고전종합DB image file)


고상안은 ‘두응그라’라고 기록했지만 실제 식물에 대해서는 “밭 길 가에 있으며, 이른 봄에 꽃이 피고 꽃이 지면 솜털(絮)이 날린다”라고 기술하고, 또 “포공영은 꽃이 피면 꽃잎이 국화와 비슷하고 그 줄기를 꺽으면 흰 즙이 나오는데 어린이들은 그것을 불어 소리를 낸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정확히 민들레를 묘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둥굴레 꽃 (2021.5.8 영월)
둥굴레 열매 (2018.9.2 봉화 만리산)


조선시대 의서인 <향약채취월령> 등에서는 포공영 대신 위유萎蕤를 두응그라(豆應仇羅)라고 했다.*** 두응그라는 현재의 둥굴레(Polygonatum odoratum var. pluriflorum)를 말한다. <중약대사전> 등 현대 중국에서도 위유萎蕤가 옥죽玉竹의 이명 중 하나로 나오며 옥죽은 둥글레의 중국명이다. 그러므로 최소한 조선 중기부터 우리나라 의원들도 위유가 둥글레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결국 ‘문들레’와 ‘둥글레’의 발음이 유사하여 고상안이 포공영의 민간명을 잘못 기록했을 가능성이 크다. 혹은 <태촌선생문집>을 편찬한 사람이 잘못 적었을 가능성도 있다. 아무튼 유종乳腫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고통을 줄이고자, 포공영이라는 중국명 약재의 향명을 기록한 고상안의 애민 정신은 본받을 만하리라.


<끝>


*김호, 허준평전-네 얼굴의 유의, 민음사, 2024, p.140

**蒲公英 治乳腫之聖藥也 考諸醫書 則云田塍路側皆有之 春初開花 花罷飛絮 而未能的知爲何物也 戊戌春 天兵往來 有五六輩來舍近隣 採一菜烹而食之 問之則曰蒲公英也 即俗所謂豆應仇羅菜也 開花則花辮似菊 而折其莖則出白汴 小兒吹以爲聲者也 自後有患乳者 依本方蒲公英二分 忍冬草一分 入酒一盞 水煎服之則立效 誰知賤賤之物 有起死回生之功乎 古之人不棄溲勃 良以此也 – 태촌선생문집

*** (1) 이은규, 향약명 어휘의 체계와 변천, p.779.  (2) 조민제 등,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 p.1819 참조

**** 조선식물향명집에서는  Polygonatum속 식물에 둥굴레라는 우리말 이름을 부여했다. (p.169)

+표지 : 서양민들레 (2019.4.28 안동)


흰민들레 (2019.4.28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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