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고山慈姑, 김호 저, <허준 평전>을 읽고 (1)
“16세기 조선에 널리 알려진<활인심방>의 자금단도 <동의보감>에 속방으로 수록되었다. 지방관이었던 이종준은 자금단의 재료를 조선 이름(향명)인 까치마늘(현재는 까치무릇이라 불린다.)로 확정하고 제법을 <신선태을자금단방>에 수록하여 보급했다.” - 김호, 허준평전 – 네 얼굴의 유의, 민음사, 2024, p123.
김호 선생님의 저술 <허준평전 – 네 얼굴의 유의>를 읽다가 이른바 조선시대의 만병통치약 자금단紫金丹의 재료 ‘까치무릇’을 만났다. 이우철의 <한국 식물명의 유래>를 보면 “까치무릇, (백합과)산자고의 북한 방언”으로 나온다. 이 까치무릇을 현재 식물도감에서는 산자고(山慈姑)라고 한다. 나는 지난 3월 여수 금오도 비렁길 탐방에서 꽃이 활짝 핀 산자고(Tulipa edulis)를 만났다. 바닷가에 무리지어 핀 멋진 모습이어서 한참 머물며 감상했다. 이 산자고가 중요한 약재라는 사실은 몰랐으므로. 그 고운 꽃의 아름다움만 찬탄했었다. 이제 만병통치약 자금단의 효능을 더 읽어보자.
“자금단은 고독이나 여우에 홀리거나 쥐나 구렁이에게 물린 경우, 독버섯이나 복어, 저절로 죽은 소나 말고기를 먹고 중독되었을 때, 산람(山嵐)과 장기(瘴氣)의 독기를 맞거나 온갖 약물이나 금석, 초목, 새나 짐승, 여러 가지 독충에게 물린 경우 등 각종 중독 증상이나 옹저와 악창, 은진, 혹(赤瘤)이나 단독으로 부어오른 증상 등을 치료할 수 있다. 매번 반 정(錠)이나 1정을 박하 달인 물에 복용한다. 목을 매 자살하거나 물에 빠지거나 귀신에 놀라 급사한 경우에도 심장이 따뜻하면 냉수에 이 약을 갈아 입속에 넣어 주면 즉시 살아난다. 뱀이나 개에게 물렸거나 각종 독충에게 물려 상해를 입은 경우에도 술에 개어 복용하고 물에 개어 상처에 바른다. 여러 가지 종독(腫毒)에도 바르면 효과가 있다.”*
이렇듯 자금단은 만병을 다스리는 약인데, 약효를 제대로 보자면 올바른 약재를 써야 했을 것이다. 그러자면 약재에 해당하는 식물을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조선시대 의원들이 중국문헌의 약재가 우리나라의 어떤 식물인지를 밝혀나가는 과정은 대단히 어려웠을 것이다. 김성수의 논문**을 참조하면, 이종준은 중국의 태을자금단 약효가 좋은 것을 경험하고, 산자고 등 약재를 바르게 사용하는 것의 중요성을 전파하기 위해 1497년에 <신선태을자금단방>을 출간했다고 한다. 태을자금단에 들어가는 약재 산자고에 대해 당시 의원들은 ‘마산(馬蒜, 말물웃)’***을 쓰고 있었는데, 이종준은 이것이 잘못임을 알고 각종 문헌을 참고하면서 산과 들을 수색하여 민간에서 ‘까치마늘’이라고 부르는 것이 산자고임을 알아내었다. 임상 시험을 통해 약효를 검증 한 후 비로소 자금방의 약재 산자고를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까치마늘’ 즉 ‘까치무릇’으로 확정했던 것이다.
아마도 ‘까치무릇’을 사용한 자금단이 ‘말물웃’을 사용했을 때 보다 약효가 훨씬 좋았던 듯하다. 그후 산자고(Tulipa edulis)는 신선태을자금단을 만드는 약재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현대 중국에서는 산자고를 다른 식물로 보고 있다. <중약대사전> 등 현대 중국 문헌에서는 산자고山慈姑(이명 金燈, 山茨菰, 山茨菇)를 현대 중국명 두견란杜鵑蘭(Cremastra variabilis (Bl.) Nakai)이나 독산란獨蒜蘭(Pleione bulbocodioides)의 근경으로 본다. 대신 우리가 산자고로 보는 Tulipa edulis는 중국명 노아판老鴉瓣으로, 이 근경을 광자고光慈姑라고 한다.
이렇듯, 이종준의 노력으로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까치무릇을 자금단의 주요 약재인 산자고로 비정했지만, 중국에서 사용하는 약재와는 달랐던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약효였을 것이니, 산자고의 향약으로 까치무릇을 쓴 것은 조선시대 내내 민중의 삶에 큰 보탬이 되었으리라.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화를 입은, <신선태을자금단>의 저자 용재慵齋 이종준李宗準(1458?~1499)은 안동 출신이다. 아버지는 진사 이시민李時敏이고, 퇴계선생의 숙부인 송재松齋 이우李堣(1469~1517)가 바로 이시민의 사위이니, 내 고향인 예안 지방과도 인연이 깊은 분이다.**** 나는 <용재눌재양선생유고>라는 1960년에 중간된 석판본 책을 열람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에는 이종준이 의학을 연구하여 책을 저술했다는 내용은 없었다. 이종준이 <신선태을자금단>을 저술했고, 특히 산자고(山慈姑, 山茨菰)가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까치무릇(산자고)임을 밝혔다는 사실을 나는 <허준평전>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신선태을자금단>의 말미에는 실제 이종준이 직접 체험한 자금단 처방 사례를 기록하고 있다. 첫째 사례로는 권숙균權叔均에게 처방한 사례가 다음과 같이 나온다. “내가 처음 이 약을 조제하여, 내종제인 진사 권숙균權叔均이 손바닥에 풍종風腫을 수년동안 앓고 있어서 시험삼아 복용하게 했더니 나았다.”***** 권숙균의 할아버지가 횡성현감을 역임한 권계경權啓經인데, 이종준의 아버지 이시민은 권계경의 사위이다. 그리고 퇴계의 고족 제자로 유명한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1532~1557)이 바로 이종준이 만든 자금단을 처방 받았던 권숙균의 손자이다. 15세기, 16세기 안동 예안 지방 선비들의 인연이 뒤얽혀있음을 알 수 있다.
<끝>
*김호, 허준평전 – 네 얼굴의 유의, 민음사, 2024, p123.
**“그런데 이종준은 중국에서 알려진 처방을 그대로 사용했던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태을자금단의 약재 구성에 대한 설명이다. <의방유취>에서 소개된 태을자금단은 <시재의방>의 경우 문합(文蛤) 3냥, 홍아대극(紅牙大戟) 1냥5돈, 산자고(山茨菰) 2냥, 속수자(續隨子) 1냥, 사향(麝香) 3돈이며, 외과정요 의 경우에 문합 3냥, 산자고 2냥, 천금자 1냥, 대극 1냥5돈, 사향 3돈으로 동일하다.26) 반면에 이종준은 산자고 2냥, 천금자(千金子, 속수자) 1냥, 오배자(五倍子, 문합) 3냥, 홍아대극 1냥반, 사향 3돈을 말하고 있다. 처방의 구성에서는 전혀 차이가 없지만, 순서상에서 <시재의방>과 <외과정요>는 문합이 가장 중요한 약재로 기재된 반면에 이종준은 그보다 산자고를 위주로 파악하였다. …. 분명한 것은 당시에 산자고를 잘못 안 채로 사용하는 문제가 중요하다고 이종준이 파악하였다는 사실이다.” - 김성수, 신선태을자금방-조선의 만병통치약, (인문논총 제67집, 2012, pp. 81~113)
*** ‘마산(馬蒜, 말물웃)’에 대해 이종준은 <신선태을자금단방>에서 “마산은 잎의 크기가 띠와 같아서 길이가 1~2척이나 되고, 뿌리의 크기는 주먹만 한데 작은 것은 까치 머리만하다. 2~3월에 싹이 돋고 6월에 잎이 마르고 7월에 붉은 꽃이 핀다. 높이는 두어 자(數尺) 남짓하다.”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 설명을 보면 마란이 현재의 무릇(Scilla scilloides)인지, 상사화 종류인지 확실하지 않다. <광재물보>에는 “마해馬薤, 말무릇 =荔挺, 野茨菰, 花葉不相見”, <물명고>에는 “馬해, 葉如茨菰而大 冬至後抽出莖如筋 花如萱而紅色 與葉不同時 말무릇 = 荔挺 馬帚”로 기록되어 있다. 이중 야자고野茨菰는 우리나라에서 무릇을 뜻한다. 그러나 <물명고>에서 “꽃은 원추리같고 홍색이다 (花如萱而紅色)”라고 한 것은 석산이나 상사화를 표현한 듯하다. 더 검토가 필요하다.
**** 월천두시 필사자 중 한명인 예안의 채운경이 송재松齋 이우李堣(1469~1517)의 손서이다. 15~16세기 안동, 예안 지방 사족들의 인연이 중첩되어 있는 것을 본다.
***** 僕初劑此 內弟進士權叔均 患掌上有風腫數年 請試腹之 立消 - 신선태을자금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