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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인 May 14. 2024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잣더니!"

창녕 성씨고택의 벽오동과 대나무

귀한 인연으로 나는 문헌과해석 2024년 춘계 학술대회 겸 답사에 참가할 기회를 얻어 5월 10일과 11일 양일간 창녕을 다녀왔다. 학술대회 장소이자 숙소인 창녕군 석리의 성씨 고택에는 벽오동 한그루가 자라고 있다. 아사헌我史軒에서 아석헌我石軒으로 건너가는 대문 바로 곁이다. 벽오동은 보통 수피가 푸른 빛으로 매끈한데 반해 이 나무는 거칠고 우둘투들하고 갈라진 회색 수피를 가지고 있어서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따뜻한 한옥방에서 하룻밤 편히 유숙한 후, 아침 햇살에 깨어 마당으로 나오니 벽오동 잎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벽오동 잎 (2024. 5. 11 창녕 성씨 고택)


반가움에 이리 보고 저리 보면서 감상한 후 고택 경내를 산책했다. 첫날 보았던 경근당敬勤堂 마당의 감나무 고목, 아사헌 마당의 가지런히 정돈된 생울타리 격의 홍가시나무들, 근처 담장 곁의 만개한 작약이 다시 눈길을 끌었다. 발길을 돌려 명한루明寒樓와 구연정龜蓮亭 앞 정원으로 가니 첫날 밤 어둠속에서 실루엣으로만 보았던 온갖 미목과 초화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소나무, 향나무, 배롱나무, 매화, 눈향나무, 산철쭉, 회양목, 옥잠화가 어우러졌다. 연못가에는 부채붓꽃이 소담하게 피었고, 담장 곁에는 사철나무와 가죽나무, 측백나무 등이 자란다. 계화桂花의 일종인 은목서 떨기들은 이곳 저곳에서 사철 푸른 잎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 은목서들은 10월이 되면 꽃이 피어 온 정원에 은은한 계화향을 풍기리라.


경근당 마당의 감나무와 뒤뜰의 대나무
구연정와 명한루 앞 정원


구연정을 돌아 뒤뜰로 가니 왕대숲에 죽순이 힘차게 솟구치고 있었다. 대나무 숲은 구연정 뒤쪽 뿐 아니라 성씨 고택에서 유일하게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는 경근당 뒷뜰까지 곳곳에 있었다. 갑자기 성씨 고택의 벽오동과 대나무는 이 집안의 어떤 염원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졸저 『옛글의 나무를 찾아서』의 “봉황이 깃드는 벽오동과 동화사 오동나무”에서 인용했던 몇 구절이 떠올랐다.


구연정 뒤뜰의 대나무 숲과 죽순 (창녕성씨고택, 2024.5.11)



“『장자』 추수秋水 편에, 장자가 양梁나라 재상직에 있는 혜자惠子를 방문하여, “남방에 새가 있는데 그 이름이 원추鵷鶵(봉황)라네. 그대는 아는가? 원추鵷鶵가 남해를 출발하여 북해로 날아갈 때 오동梧桐이 아니면 앉지 않고, 연실練實(대나무 열매)이 아니면 먹지 않고, 예천醴泉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네.”라고 말하는 구절이 있다. 육기陸璣(261~303)의 『모시초목조수충어소』에도 “봉황은 수컷을 봉鳳, 암컷을 황皇, 그 새끼를 악작鸑鷟 혹은 봉황鳳皇이라고 한다. 일명 언鶠이다. 오동梧桐이 아니면 깃들지 않고, 죽실竹實이 아니면 먹지 않는다.”라고 나온다. 아마도 봉황이 벽오동나무에 깃든다는 이야기는 여기에서 전파되었을 것인데, 이 문장에서 ‘오동梧桐’은 분명히 벽오동을 뜻한다.”


“조선시대에 우리 조상들도 봉황이 깃드는 나무를 벽오동으로 이해했다. 이는 다음과 같은 무명씨의 시조가 인구에 회자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잣더니

        내가 심는 탓인지 기다려도 아니오고

        무심한 일편명월이 빈 가지에 걸렸어라.” (pp. 63~64)



(좌) 벽오동과 대나무가 보이는 모습, (우) 거친 수피 (창녕성씨고택, 2024.5.11)


아사헌으로 돌아오며 담장 곁의 벽오동을 다시 감상했다. 고목의 풍모가 물씬 풍기는 원줄기는 5미터가량 높이에서 싹둑 잘렸는데, 거기에서 잔 가지들이 촘촘하게 나와 전체적으로 둥근 부채 모양이었다. 위쪽에 구멍이 뻥 뚤린 줄기와 회색의 거친 수피는 이 나무가 오랜 세월의 풍상을 온 몸으로 겪으며 살아남았음을 증언하는 듯했다. 벽오碧梧라는 이름에 걸맞는 매끈한 푸른 수피의 잔가지들은 손바닥 모양의 싱그러운 넓은 잎을 달고 있어서 생명의 활력이 느껴졌다.


성씨 고택 뒤뜰의 대나무 숲 (2024.5.11 창녕 석리)


석리에 처음 집성촌을 이루었던 1800년대 후반에 창녕성씨들은 이곳에 벽오동과 대나무를 심었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벽오동을 심으면서 봉황같은 인재가 태어나길 기원했을 것이다. 봉황이 먹을 양식으로 뒤뜰에 대나무 숲을 조성했으리라. 성씨 고택은 한국전쟁 때 대부분 소실되었고, 2000년대에 영원무역의 성기학 회장이 다시 복원했다고 한다. 이 벽오동 고목은 수령으로 보아 전쟁의 참화를 직접 목격했을 가능성이 크다. 원줄기가 잘린 것은 전쟁의 참화에 시달린 흔적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벽오동 나무는 성씨 집안의 염원을 안고서 전쟁의 상처에도 꿋꿋이 살아남아, 고택 복원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봉황이 죽실을 먹고 벽오동 나무에 깃든다는『장자』구절을 읽은지는 꽤 되었다. 이 벽오동과 대나무가 같이 자라는 현장을 처음으로 확인한 터라 성씨 고택에서의 하룻밤은 특별한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고택 건물 중에 오梧나 죽竹이 들어간 편액이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문헌과 해석 답사 참여라는 특별한 경험과 더불어 성씨 고택은 벽오동과 대나무가 봉황을 기다리는 모습으로 내 마음에 오래 기억될 듯하다.


석양 빛을 머금은 벽오동 (2024.5.10 창녕 우포늪)


(덧붙임) 페친이신 찰리 최동기 선생이 베트남에서 찍은 귀한 대나무 열매, 즉 죽실竹實 사진과 송소 고택에서 찍은 대나무 꽃 사진을 보여주셨다. 허락을 얻어 이 글에도 자료로 올린다.


죽실, 대나무 열매 (베트남) - 사진 최동기
대나무 꽃 (청송 송소고택) - 사진 최동기

<끝>


+표지사진 - 창녕 성씨 고택의 벽오동 (2024.5.11 창녕 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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