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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리더들이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자기 팀원이 성공하도록 도와줘라, 자기 상사가 성공하도록 도와줘라, 그러면 자기도 성공한다.” 최근에 강명관 교수님의 신작 『이타利他와 시여施與』를 완독했다. 이 책은 조선 후기에 기근과 전염병으로 목숨이 위태로운 민초들이 폭증했을 때 ‘이타-보상’을 다룬 이야기들이 전傳이나 비지碑誌의 형식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책 말미에서 독자에게 다음과 같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끝으로 묻는다. 지금 여기 이기적 욕망에 기초한 화폐의 부단한 축적과 제한 없는 소비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건 없는 증여를 기초로 공생을 지향하는 이타적 행위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궁금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p.250)
“조선 후기 문학이 꿈꾼 공생의 삶”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강교수님께서는 독자에게 이 질문을 던짐으로써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전한 현대 한국 사회에서 공생의 삶의 꿈꾸며 독자들의 참여를 요청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생각이 복잡해졌다. 대학시절 말장난 논쟁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진정한 이타심이 가능할까 정도의 논쟁이었는데 누군가 이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생존을 위해 이기적일 수밖에 없고, 설령 이타심을 발휘하는 경우라도 그 이타심이 자신의 마음의 평화나 자기 만족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이기심의 발로라는 주장이었다.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원으로 사회에 발을 들여 놓은 지 수십년이 지났다. 내가 어느 분야에 전문가인 적은 없었지만, 이만하면 회사원 생활은 가히 전문가라고도 할 수 있겠다. 어느 자그마한 동호인 모임에서 남들이 내가 한자 몇 글자를 안다고 하여 ‘한문 선생’이라고 부르는 분들이 있었다. 한문을 전공한 분들이 아시면 혀를 끌끌 찰 일이어서 급하게 ‘한문 선생’ 대신 무난히 회사원 생활을 오래 했으니 ‘사회 선생’으로 불러달라고 농담한 적도 있었다.*
하여간, 이제 회사원 생활도 오래지 않아 그 전문성을 발휘할 수 없을 나이에 이르고 보니, 참으로 대학 시절 “진정한 이타심의 가능성” 논쟁은 부질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타적 행동이 진화로 인해 저 인간성 깊숙히 박혀 있는 이기적 생존본능의 발로라 할지라도, 마음 상태가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으로 옮겨졌을 때 공동체에 보탬이 되고, 단 한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설령 이타적 동기에서 행한 행동이라도 상대에 피해가 된다면 나쁜 것이니, 동기의 순수성에 대해서야 너무 따질 필요는 없다.
우리가 모두 성인 군자가 아닐진데, 실행되지 못한 마음의 도덕성 보다는 작은 결과라도 이끌어낼 수 있는 행위의 도덕성이 더 중요할 것이다. 그 행위가 공동체의 전체 선과 이익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훌륭하다. 마음의 도덕성은 남들이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거니와 ‘양심의 자유’ 영역이다. 강명관 교수님의 『이타利他와 시여施與』에는 동기까지도 훌륭한 수 많은 이타 행 사례가 있다. 강교수님이 이 책을 세상에 내 놓은 것도 공동체의 발전을 갈망하는 지식인이 할 수 있는 큰 이타행이라 할 것이다.
(끝, 2023.3.13)
*또 농담으로, 한문보다야 생업으로 사용하는 영어를 더 잘하니 영어선생으로 불러달라고 했는데, 반응이 시큰둥했다. 영어야 워낙 영어 선생님들도 많고 원어민 수준도 많으니 어떻게 선생이 될 수 있냐는 속마음이 읽혔는데, 참 아이러니하다. 한문은 몇 글자만 알아도 선생으로 불러 줄려고 하는 것을 보니, 우리나라에서 한문이 정말 귀한 글임을 알겠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