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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인 Mar 06. 2024

<천자문> 아예서직我藝黍稷과 사직단社稷壇의 직稷은?

메기장

治本於農           정치는 농사를 근본으로 하여

務玆稼穡           이 심고 거둠을 힘쓰게 하도다.

俶載南畝           비로소 남쪽 이랑에서 일을 하고

我藝黍稷           우리의 기장과 피를 심었다.


성백효成百曉 역주 <주해천자문>에서 인용한 천자문 구절이다. 지금이야 경제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지만 고대의 농업은 그야말로 백성이 먹고 살아가는 바탕이자 정치의 근본이었을 것이다. 이 ‘아예서직我藝黍稷’은 <시경> 소아小雅의 곡풍지습谷風之什 중 ‘초자楚茨’의 한 구절이다. ‘초자’는 제사를 노래한 시인데, 제물로 쓰기 위해 서직黍稷을 심는 장면이다. 이렇게 제물로 올릴 중요한 곡식이 서黍와 직稷인데, 이것이 기장과 피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기장이야 예부터 쌀, 보리, 콩, 조와 함께 오곡의 하나이니 이해할 수 있지만 피라니?


(좌) 훈민정음 해례 “피爲稷” (1443),  (우) 한석봉 천자문 "기장 서黍, 피 직稷" (1583), 사진출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피는 벼농사 짓는 농부들이 보이는 족족 뽑아버리는 잡초이다. 나도 초등학교 시절에 아버지로부터 벼와 피를 구분하는 방법을 배웠다. 피가 어릴 때는 구별하기 어렵지만, 벼가 익어갈 무렵이 되면 벼는 고개를 숙이는데, 피의 화서는 상대적으로 꼿꼿하게 서 있어서 쉽사리 구별할 수 있다. 지금도 나는 논에 피가 보이면 본능적으로 뽑고 싶어진다. 이렇게 대표적인 잡초인 피를 주요한 곡식으로 재배하여 제사에 올렸다니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천자문>을 배울 때 “나 아我, 심을 예藝, 기장 서黍, 피 직稷”으로 배웠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서예가 석봉石峯 한호 韓濩(1543~1605)가 1583년에 쓴 <한석봉 천자문> 영인본을 최근에 열람했는데, 여기에도 “나 아我, 시말 예藝, 기장 셔黍, 피 직稷”으로 한글 훈이 달려있었다. 더구나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헌 중의 하나인 <훈민정음 해례>의 용자례用字例에서도 “피爲稷”으로 되어 있다. <훈몽자회>에서도 직稷은 “피 직”으로 훈을 달고 있다.


피 (2024.7.20 횡성)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직稷이 피를 뜻하는 글자로 사용된 것은 틀림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춘추시대의 주요 곡물로 <시경>에 채록된 직稷을 중국 문헌은 어떻게 설명하는 있을까? 반부준의 <시경식물도감>과 일본의 <식물의 한자어원사전>에서는 서黍와 직稷을 모두 기장(Panicum miliaceum L.)으로 설명하고 있다. <중국식물지>에서도 직稷을 기장(Panicum miliaceum)으로 설명하고 민간에서 부르는 이름으로 서黍와 직稷, 미糜 등을 적고 있다. 즉 중국에서는 직稷을 기장으로 보는 것이 확실하다.


<식물의 한자어원사전>에서는 직稷의 종류와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잘 설명하고 있다. “기장에는 3가지 유형이 있는데 이삭의 분지分枝가 한쪽으로 기우는 것이 서형黍型(var. contractum, 중국명 黍子), 이삭의 분지가 사방으로 산개散開하는 稷型(var. effusum, 중국명 稷), 이삭의 분지가 밀집密集하는 것이 서직형黍稷型(var. compactum, 중국명 糜)이다. 서黍는 종자가 찰지지만 직稷과 미糜는 찰지지 않다. … 稷을 재배한 역사는 비상非常하게 오래되었는데, 선사시대(전설상으로는 신농씨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고대에 직稷 은 매주 중요한 작물이었으며, 직稷(5곡의 신)에 대한 제사를 집행하는 것이 국가 수장의 임무였다. 그때부터 국가의 일을 사직社稷이라고 한다.”


(좌) 삼재도회 직미稷米, (우) 피 (2024.7.20 횡성) - 직미稷米외 피의 열매 이삭 모양 비교



<본초강목>에서도 이시진은 직稷이 오곡의 으뜸(長)이 되는 이유와 곡신穀神에게 제사 지내는데 쓰인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직稷과 서黍는 같은 무리의 두 종이다. 찰 진 것이 서黍이고 찰지지 않은 것이 직稷이다. 메벼(粳)와 찰벼(糯)가 있는 것과 같다. 서직黍稷의 싹은 조(粟)와 비슷한데 낮고 작으며 털이 있다. 씨앗을 맺으면 가지를 치고 구별된다. 그 낱알은 조와 같이 광택이 있고 매끄럽다. … 직稷은 빨리 익혀져서 밥을 지으면 깔끔하고 향이 좋아 5곡의 으뜸이 되며 토土에 속한다. 그러므로 곡신에게 제사 지내는 것은 직稷으로써 토지신에게 배향한다. 5곡을 빠짐없이 제사에 쓰는 것은 불가하므로 그 으뜸되는 것으로써 갖추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렇게 고대에 오곡의 으뜸으로 자리매김된 직稷이 피였을 가능성은 대단히 작다. 이제 우리나라 문헌을 좀 더 살펴보자. <동의보감> 탕액편에는 직미稷米는 ‘피쌀’, 서미黍米는 ‘기장쌀’이 수록되어 있다. 직미에 대한 설명을 보면, “8곡 가운데 가장 아래이다. 8곡이라는 것은 서黍, 직稷, 도稻, 량粱(조), 화禾, 마麻, 숙菽, 맥麥이다. 화禾는 속묘粟苗(조싹)이고, 마麻는 호마胡麻(참깨)이다. 숙菽은 대두大豆(콩)이다. 맥麥에는 대맥大麥(보리), 소맥小麥(밀), 광맥穬麥(겉보리)이 있다. 이것이 여러 곡식의 범위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직稷은 곧 제穄(메기장)의 다른 이름이다. 직稷 또한 곡식 종류로 기장(黍)과 비슷하지만 작으며, 곧 지금의 제미穄米이다. 또한 자粢라고 하며 5곡의 으뜸이 된다.”***라고도 하여 직이 ‘메기장’일 가능성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탕액편에서 허준 선생은 직을 확실히 피로 이해한 듯하며 피도 품질이 최하급이긴 하지만 곡식에 속한다고 보았다.


그 후 <전운옥편>에서는 “稷 직. 서속黍屬. 5곡의 으뜸(五穀之長). 농관農官은 후직后稷이다. 토지신은 사직社稷이다.”라고 설명했다. <물명고>에서는 “직稷 ‘뫼기장’. 민간에서 ‘피’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서黍 찰기장”이라고 했고, 대신 “패稗를 ‘피’”라고 설명하다. 정약용 선생도 <아억각비>에서 직稷이 피가 아니라고 다음과 같이 자세히 밝히고 있다.


“직稷은 속粟(조)이다. (원주: 우리말로 속粟을 조䆆라고 한다.) <이아爾雅>의 “자粢는 직稷이다.”에 대한 주注에서 “강동江東 사람들은 속粟를 자粢로 부른다.”라고 말했다. 소疏에서는 “자粢니, 직稷이니, 속粟이니 했지만 바로 똑같은 한 물건이다.”라고 말했다. (원주: <곡례曲禮>에서는 “직稷은 명자明粢라고 한다.”라고 했다.) <설문>의 <서전徐箋>에 이르기를 “직稷은 제穄이다. 일명 자粢이다. 초나라 사람들은 직稷이라고 하고 관중關中에서는 미(麻밑의黍)라고 한다. 그 미米가 황미黃米이다.”라고 했다. 옛날에는 논이 많지 않았으므로 백성들이 직稷을 많이 먹으며 늘 먹는 양식으로 삼았다. (원주: 지금도 북쪽 지방에서는 여전히 그렇다.) 그러므로 성인이 그것을 귀하게 여겼다. 또한 <본초>의 서열에서 직미稷米는 하품에 있고, 별도로 속미粟米가 중품에 있으므로, 오히려 아마도 두 물건인 듯하다. (원주: 이아소爾雅疏) 그리하여 속유俗儒들이 미혹되었다. 우리나라에 잘못 전해진 것은 더욱 심하여 패稗(피)를 직稷이라고 한 것이 굳어져서 깨뜨릴 수 없다. 패稗란 제패稊稗(돌피)이다. 벼(禾)와 비슷하지만 다르며, 오곡五穀의 반열에는 없다. (원주: 방언으로 피秛라고 한다. 피秛와 패稗는 소리가 바뀐 것이다.) 물에 자라는 패稗와 마른 땅에 자라는 패稗 2종이 있다. 물에 자라는 패稗는 줄기와 잎이 벼와 매우 닮았다. 오직 마디 사이에 털이 없지만 김매는 이가 분별하기 어렵다. 마른 땅에 자라는 패稗는 줄기와 잎이 직稷과 비슷하며, 더욱 풍성하게 우거진다. 그 짚은 말먹이로 좋으며, 그 열매는 삼씨(蕡)와 같은데 조금 검다. 우리나라 밭에 자라는 종은 마침내 곡식류가 되었다. 그러나 직稷은 오곡의 장長인데 패稗를 직稷이라고 하는 것은 어찌 참람하지 않겠는가? 크고 작은 제사에서 보궤簠簋를 갖출 때 마침내 기장과 피(稗)로써 서직黍稷을 채우는데 사용하니 매우 옳지 않다.”****


정약용 선생이 메기장 직稷을 조를 뜻하는 속粟으로 본 것은 재고해봐야 하지만 분명하게 피는 아니라고 한 것이다. 그후 지석영의 <자전석요>는 “稷 직 似黍不黏 메기장직”, 현공렴의 1913년 <한선문신옥편>에서는 “稷 메기장직, 서속黍屬, 5곡의 으뜸(五穀之長), 흙 귀신 직, 토신土神 사직社稷, 또 농관農官 후직后稷“, 최남선의 1915년 간행 <신자전>에서는 “稷 직 서속黍屬, 5곡의 으뜸(五穀之長), 피”, 1921년 신구서림간 <한일선신옥편>에서는 “稷 메기장 (직) 화속禾屬, 5곡의 으뜸(五穀之長), 농관農官 후직后稷, 토신土神 사직社稷”, 1935년 박문서관 <한일선신옥편>에서는 “稷 기장 직”이라고 했다. 이렇듯 일제강점기 자전류에서는 직稷에 대해 메기장과 피 사이에서 일관된 해석을 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일부 식자들이 직稷을 메기장으로 이해했다 하더라도 아동학습서에서 계속 피로 가르쳤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혼동이었던 듯하다.


즉 대표적인 아동학습서 <천자문>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가 이승희李承熙(1847~1916) 선생이 1884년에 간행한 <정몽유어正蒙類語>에서도 직稷을 “피 즉”으로 훈을 달고 있다. 1937년 <계몽편언해>에서도 “稻도粱량黍셔稷직은 祭제社사之지所소以이供공粢쟈盛셩者쟈也야.”에 대해 “벼와 조와 기샹과 피난 제사에 쎠 사셩을 공급하난 배요.”라고 해설하여 직은 피로 설명한다. 이러한 영향이 한글학회의 1950년 <큰사전>까지 이어져서 “서직(黍稷) [이] 기장과 피. 옛날에 나라의 제사에 날것으로 썼음.”이라고 기록되었다. 또한 1991년판 한글학회 지은 <우리말큰사전>을 포함하여 이후 내가 참고한 많은 국어사전에서 서직黍稷은 “기장과 피”가 되었다.

기장 (2023. 안동 제비원, 최동기 선생 사진)


하지만 이기문 감수 <동아 새국어사전>(1997)에서는 서직을 “찰기장과 메기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을 보면, 현대에 이르러서도 직稷은 ‘피’와 ‘기장’ 사이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물명의 잘못을 고치는 것은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내가 애용하는 민중서림 <한한대자전>이 직稷을 메기장으로 설명하고 있는 점은 다행스럽다. 이제 서직黍稷이 등장하는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시 한편을 감상해보자. 제목은 ‘농장 관리인 박장朴莊이 햅쌀을 가져오다 (莊頭朴莊 以新米來)’이다.


柳浦田頭買一區  버들포 밭머리에 사 놓은 밭 한 뙈기를

主耕終歲朴莊奴  일년 내내 박장의 종이 도맡아 지었네.

今年又見稻初熟  올해 처음 익은 벼를 또다시 보니

多病不憂身甚癯  병 많아도 몸이 더 야윌 걱정은 없겠구나.

宗廟薦新隨黍稷  종묘에 서직黍稷 따라 천신하니

農家作苦溷泥塗  농부는 진흙 속에서 고되게 일 했네

太倉更荷君王賜  태창에서 임금이 내려주신 은혜를 입었으니

深謝乾坤養腐儒  못난 선비 길러 주는 천지에 깊이 감사하네.


쌀도 서직黍稷과 함께 6월에 종묘에 천신하는 곡식 중의 하나이다. 이 시를 지으면서 이색은 직稷을 메기장과 피 중 무엇으로 생각했을까? 아무도 모를 것이다. <훈민정음해례>에서 직稷을 피라고 설명했으니, 이색이 활동했던 고려 말에도 문인들이 피로 이해했을 가능성이 크다. 서黍는 분명히 기장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기장은 중앙아시아 근처에서 7,000~8,000년 전에 재배가 시작되어 오래전에 한반도에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천 운서동과 강원도 양양 취락유적에서 기원전 4,000~3,000년경의 신석기시대 토기 점토 흙에 들어간 기장, 조, 들깨 등의 곡물 낟알이 발견되었다.”*****고 한 것을 보더라도, 기장은 우리 민족과 오랜 세월을 함께 한 것은 분명하다.


아마도 기장이 한반도로 전래되면서 서黍라는 글자를 썼고, 피를 뜻하는 패稗와 글자 모양이 비슷한 직稷은 기장이 도입되기 전부터 식용하던 피를 뜻하지 않았을까? 추정은 할 수 있지만 확실히 증명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 문헌에서 백柏이 측백나무이지만 ‘잣나무’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듯이, 직稷도 메기장이 아니라 ‘피’를 뜻한 경우도 많을 것이니 문맥을 잘 살펴서 이해할 수밖에 없다.


<끝>

*稷與黍一類二種也 黏者爲黍 不黏者爲稷 有粳與糯也 … 黍稷之苗似粟 而低小有毛 結子成枝而殊散 其粒如粟而光滑 … 稷熟最早 作飯疏爽香美 爲五穀之長 而屬土 故祠穀神者以稷配社 五穀不可遍祭 祭其長以該之也 – 本草綱目

**八穀之中最爲下 八穀者黍稷稻梁禾麻菽麥也 禾是粟苗 麻是胡麻 菽是大豆 麥有大小穬麥 此諸穀之限也 – 東醫寶鑑 湯液篇. 참고로 탕액편에는 광맥穬麥의 한글 훈 ‘것보리’를 기록하고 있다. <중약대사전>에서도 광맥穬麥은 보리 종류인 나맥裸麥(Hordeum vulgara L. var. nudum Hook. f.)의 다른 이름으로 맥아麥芽와 함께 나온다.

***稷乃穄之異名也 稷亦穀之類 似黍而小 卽今之穄米 又謂之粢 爲五穀之長 - 東醫寶鑑 湯液篇

****稷者粟也 [方言粟曰䆆] 爾雅粢稷之注曰江東人呼粟爲粢 疏云粢也稷也粟也 正是一物 [曲禮云稷曰明粢] 說文徐箋云稷卽穄 一名粢 楚人謂之稷 關中謂之(麻밑의黍) 其米爲黃米 古者水田未盛 生民大食稷爲恒糧 [今北方猶然] 故聖人貴之 乃本草序列 稷米在下品 別有粟米在中品 又似二物 [爾雅疏] 故俗儒惑焉 吾東傳訛更甚 以稗爲稷 牢不可破 夫稗者稊稗也 似禾而別 不在五穀之列 [方言謂之秛 秛與稗聲轉也] 有水稗旱稗二種 水稗莖葉與稻酷肖 唯節間無毛 芸者難辨 旱稗莖葉似稷 更加豐茂 其稈宜於飼馬 其實如蕡而微黑 吾東田種 遂爲穀類 然稷者五穀之長 以稗爲稷 豈不僭歟 大小祭祀簠簋之實 遂以黍稗用充黍稷 大不可也 – 雅言覺非

*****삼국유사가 품은 식물 이야기, 안진홍, 지오북, 2023,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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