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凌霄花, 초苕, 자위紫葳
“영빈은 현금의 집을 알고 있었다. 이층집이었다. 여름이면 이층 베란다를 받치고 있는 기둥을 타고 능소화가 극성맞게 기어올라가 난간을 온통 노을 빛깔의 꽃으로 뒤덮었다. 그 꽃은 지나치게 대담하고, 눈부시게 요염하여 쨍쨍한 여름날에 그 집 앞을 지날 때는 괜히 슬퍼지려고 했다. 처음 느껴본 어렴풋한 허무의 예감이었다.”*
박완서(1931~2011)의 장편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의 시작 부분이다. 읽은 지 벌써 수십년이 지나서 소설의 줄거리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기억나는 것은 이 소설이 통속 연애소설에 가까웠다는 것과 박완서가 여주인공 현금을 상징하는 꽃으로 설정한 능소화에 대한 강렬한 묘사였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능소화에 대해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2010년 경인가 스마트폰으로 능소화 꽃 사진을 처음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을 때에는 『아주 오래된 농담』을 꺼내어, 현금이 “잔다르크처럼 되는 꿈”을 꾸던 소녀 시절의 능소화를 회상하는 장면 등, 박완서가 능소화를 묘사한 문장을 다시 읽어보기도 했다.**
이렇게 박완서가 소설 속에서 “지나치게 대담하고, 눈부시게 요염”한 꽃으로 묘사한 능소화는 실제로 보면 요염하기보다는 수수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능소화(Campsis grandiflora)는 우리나라에서 현재 정원수로 전국에 널리 식재되고 있는 낙엽 덩굴성 목본이다. 한여름인 7~8월에 황적색 꽃이 가지 끝에 무리지어 피는데 그 빛깔이 시골 처녀인 냥 수수하게 곱다. 능소화의 원산지가 중국임을 알려주듯이, 능소화는 일찍이 『시경』 소아(小雅) 어조지습(魚藻之什)의 ‘초지화(苕之華)’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 꽃이다.
능소화가
노랗게 많이 피었건만
마음의 시름으로
가슴만 아파라.
능소화
그 잎새 무성해라.
내 이럴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낳지도 말 것을
암양은 머리만 커다랗고
통발 속에는 삼성(三星)이 비치네.
사람은 먹어야 하건만
배부른 사람은 드물어라.
(苕之華 芸其黃矣 心之憂矣 維其傷矣 苕之華 其葉靑靑 知我如此 不如無生 牂羊墳首 三星在罶 人可以食 鮮可以飽)
이가원 선생은 이 시에 대해, “살기 어려워진 세상을 한탄한 시이다. 시인은 화려한 능소화를 보면서 쇠미해가는 나라 형편을 슬퍼한 것이다. 양의 몸이 마르면 머리가 커 보이고, 통발 속에 고기가 잡히지 않으면 하늘의 별이 비쳐 보인다. 흉년이 들어 백성들의 생활이 더욱 비참해진 상황을 암시한 것이다.”***라고 이 시를 해설했다. 먹고 살기 힘겨우면 능소화뿐 아니라 어떤 아름다운 꽃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니, 슬프다.
일제강점기 언론인이자 사학자인 문일평(文一平, 1888~1939)은 능소화에 대해 『화하만필』에서 “경성에는 이상한 식물이 있으니 나무에는 백송(白松)이 있고 꽃에 자위(紫葳)가 있다. 자위의 일명은 능소화(凌霄花)니 한토(漢土)의 원산으로 수백년 전에 조선 사신이 연경에서 가져다가 심은 것이라는 바 그리 염미(艶美)한 꽃이 아니나 매우 희한(稀罕)한 꽃으로 유명하다. … 오늘 날 경성안에 이 능소화 있는데가 오직 사직동의 도장宮 한 곳뿐이라고 한다.”****라고 말했다. 지금이야 능소화를 쉽게 볼 수 있지만 일제강점기만 해도 서울에서는 사직동의 도정궁(都正宮)에서만 볼 수 있었던 진귀한 꽃이었던 셈이다. 문일평은 또한 유본예(柳本藝, 1777~1842)의 『한경지략(漢京識略)』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19세기 전반기 서울에서 능소화가 있는 곳을 설명하고 있다.
“백운동(白雲衕)은 인왕산 아래에 있다. 월성위궁(月城尉宮)이 이 거리에 있고, 이 궁에 능소화가 있다. 6, 7월 사이에 주황색 꽃이 피며, 노송(老松) 위로 덩굴로 자란다. 또 송현(松峴) 북쪽 심두실(沈斗室) 상공 댁에 홀로 능소화가 있다. … 덕흥대원군 사당은 사직동에 있다. 적장손이 대대로 군(君)에 봉해져 제사를 받드는데, 사당 앞과 뒤에 능소화가 있다.”*****
19세기 전반기에 유본예는 서울에서 능소화가 자라는 3곳을 기록했다. 인왕산 아래 백운동의 월성위궁, 송현 북쪽의 두실(斗室) 심상규(沈象奎, 1766~1838) 대감 댁, 그리고 사직동의 덕흥대원군 사당이 그곳이다. 능소화가 얼마나 귀한 꽃이었기에, 유본예가 일일이 찾아 기록했을까? 모두 왕족의 사당이나 명망가 정원에 자라고 있었으니, 당시 문인들은 능소화를 요염한 꽃이 아니라 대가집을 상징하는 부귀한 꽃으로 보았으리라. 역사의 격랑을 거치면서 19세기 전반기에 3군데에 자라던 능소화는 1930년대에는 사직동의 덕흥대원군 사당을 지키는 집 한곳에만 있었으니 더 귀해졌을 것이다. 이렇게 보기 힘들었던 능소화는 해방이 된 후 고궁이나 사찰 곳곳에 많이 심어졌던 듯하다. 최영전은 1963년 『백화보』에서 “한적한 고궁이나 사찰에서는 침울해지기 쉬운 한여름 동안 녹음 틈에 잘 어울리어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 주는 볼 품 있는 꽃”으로 꽃말은 ‘여성’이라고 능소화를 소개하고 있다.
능소화는 『동의보감』 탕액편에 중국산은 뜻하는 ‘당(唐)’ 표기 없이, “자위(紫葳) 금등화”로 수록되어 있다. 이를 보면 능소화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기는 적어도 조선시대 중엽 이전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귀한 능소화를 식물학자들은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에 “Campsis grandiflora, 능소화(금등화)”로 수록했다. 지금은 전국 곳곳에 능소화 뿐 아니라 동속의 미국능소화(Campsis radicans)와 나팔능소화(Campsis × tagliabuana)도 많이 식재되어 있다. 오히려 중국원산의 전통적인 능소화는 상대적으로 덜 식재되는 듯하다.
북아메리카 원산의 미국능소화는 해방후, 1960년대 이전 어느 해에 우리나라에 도입된 듯하다. 여성잡지 여원(女苑)의 1966년 4월호 별책부록으로 발간된 『원예와 꽃꽂이』에는 “넝쿨 장미보다 손질이 덜 들기 때문에 양식 정원의 건물 주위나 파고라에 올리면 잘 어울”리는, 정원에 심는 노지(露地) 화목류의 하나로 능소화를 소개하면서 원산지를 중국과 미국 2군데를 적고 있다. 이로 보아 1960년대 전반기에는 이미 미국능소화도 식재되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능소화는 꽃받침이 녹색이고 꽃잎이 주황색임에 반해 미국능소화는 꽃받침과 꽃잎 모두 붉은 색이고 화통이 더 길다. 나팔능소화는 능소화와 미국능소화의 교잡종이라고 하며, 원예 품종도 대단히 많다. 사람마다 취향이야 다양하겠지만, 나에겐 이 중에서도 우리 민족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능소화(C. grandiflora)가 가장 우아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조선시대 문인들이 읊은 능소화 시는 많지 않은 듯하다. 『한국고전종합DB』에서는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1653~1722)과 노가재(老稼齋) 김창업(金昌業, 1658~1621), 옥수(玉垂) 조면호(趙冕鎬, 1803~1887), 오횡묵(吳宖默, 1834~1906) 등이 노래한 시가 보인다. 이중 조면호의 ‘어교의 추사 옛터에서의 감상 (魚橋 秋史舊趾 感事)’을 읽어본다.
馬闐車咽舊時門 말 북적이고 수레 덜컹이던 옛 대문
海蜃樓空夢一番 신기루처럼 누각이 비었으니 한바탕 꿈일러라
何處蒼茫虹貫月 아득히 먼 어느 곳에서 무지개가 달을 꿰나
凌霄花發雨黃昏 능소화 피었는데 황혼 녘에 비 내리네.
어교(魚橋)는 원래 북어교(北御橋)인데 발음이 비슷한 붕어다리(鮒魚橋)로 불린 다리라고 한다.****** 이 어교가 추사 김정희의 증조부인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 1720~1758)의 집 근처에 있었으므로 조면호는 추사의 옛터라고 했다. 이 시에는 “길상실 동쪽 담장에 능소화가 아직 있다. (吉祥室東墻 凌霄花尙存)”라는 주석이 달려있다. ‘길상실(吉祥室)’은 김정희가 편액을 썼다고 하니, 아마도 월성위궁을 이루는 집 중 하나일 것이다. 『한경지략』에서도 월성위궁에 능소화가 있다고 했으므로, 조면호는 바로 이 월성위궁의 능소화를 노래한 듯하다. 번성했던 월성위 집안도 역사의 소용돌이를 피하지 못하고 쇄락해가는데, 그 옛 터에 대갓집을 상징하는 귀한 능소화만 피어 있으니, 얼마나 쓸쓸한 풍경인가? 이 시에서 노래한 능소화는 중국원산으로 『시경』 ‘초지화(苕之華)’에서 노래한 것과 같은 꽃일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시가에서 ‘능소화’를 노래할 경우, 그것이 능소화인지 미국능소화인지 나팔능소화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시를 읽으며 그 미감을 각자 느끼면 될 것이므로 굳이 어떤 능소화인지 구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대의 시인 황동규(1938~) 허난설헌 생가에서 능소화를 보고 지은 시를 읊어본다. 시인이 1993년에 펴낸 시집, 『미시령 큰바람』에 ‘허난설헌 생가’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젊어 요절한 허난설헌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시대의 천재 허균을 떠올리며 바라 본 능소화는 슬픔을 머금고 있었으리라. 다가오는 여름에는 강릉의 허난설헌 생가에 들러 능소화를 감상해야겠다.
강릉시 초당동 허난설헌 생가에 가서
구겨진 잎 달고 매달린 능소화를 만난다.
찢어진 창호지.
큰 집이 비어 있고
시간도 비어 있다.
나비도 벌도 다 떠났다.
그대의 친구들
그대 동생 균(筠)의 친구들도 떠났다.
감 따다 만 사다리 하나
간신히 외발로 서 있을 뿐.
사람 허리 높이 향나무 하나
마당에 주저앉아 한없이 기어가고 있을 뿐.
(끝)
* 박완서 장편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 실천문학사, 2000, p.12
** “능소화가 만발했을 때 베란다에 서면 마치 내가 마녀가 된 것 같았어. 발 밑에서 장작더미가 활활 타오르면서 불꽃이 온 몸을 핥는 것 같아서 황홀해지곤 했지." (박완서, 아주 오래된 농담, p.41)
*** 리가원-허경찬 공찬, 『시경』, 청아출판사, 1999, p.272. 원문에서 ‘苕之華’ 능초꽃으로 번역하고 있으나 ‘능소화’로 수정했다.
**** 문일평, 『화하만필』, 삼성문화문고 19, 1972, pp.96~98.
***** 白雲衕在仁王山下 月城尉宮在此衕 而此宮有凌霄花 六七月間開花朱黃色 蔓生于老松上. 又北松峴 沈斗室相公宅 獨有凌霄花 - 漢京識略下/各衕. 德興大院君祠 在社稷洞 以嫡長孫 世襲封君奉祀 祠堂前後有凌霄花 - 漢京識略上/祠廟. 참고: 『화하만필』에는 『漢城識略』으로 되어 있으나 유본예(柳本藝, 1777~1842)의 『한경지략(漢京識略)』의 이명으로 보인다.
****** 여성잡지 여원(女苑)의 1966年4月號 別冊附錄’으로 발간된 『원예와 꽃꽂이』, p.131. 이 책에서 능소화의 원산지를 중국, 미국 2군데를 적시했으나, 이것이 당시에 미국능소화가 재배된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다.
******* 종로문화플랫폼(https://culture.jongno.go.kr/)에 어교에 대한 정보가 자세하다.
+표지사진 : 능소화 (2025.7.30 전주한지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