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로 물고기를 잡는 약목藥木, 때죽나무

조선시대 필기류 문헌의 식물 (7)

by 경인

“내 집 뒤 작은 동산에는 이름 없는 잡목[無名雜木]이 많다. 대개 애초에 심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돋아나 단단한 울타리를 이루고 있는 것들이다. ‘팽彭’이라 하고, ‘엄嚴’이라 하고, ‘약藥’이라 하고, ‘구지枸枳’라 하고, ‘북北’이라 하고, ‘자刺’라고 하는 나무들이다.”*



『백운필』 ‘담목談木’에서 이옥李鈺(1760~1815)이 시골 집 뒷동산에 자라는 나무들의 우리말 이름을 소개하는 부분이다. 한자의 뜻과 음을 차용하여 나무 이름을 기록한 듯하다. 이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잡목들에 대해 이옥은 각종 문헌을 검토하여 그 한자어 이름을 찾는 작업을 한다. 그 과정을 통해 ‘찌를 자刺’는 찔레(Rosa multiflora)인 ‘야장미野薔薇’, ‘북北’은 붉나무(Rhus chinensis)인 ‘오배자五倍子’, ‘구지枸枳’는 ‘꾸지뽕나무(Maclura tricuspidata)’인 ‘자柘’로 그 한자명을 밝힌다.** 그러나 ‘팽彭’, ‘엄嚴’, ‘약藥’에 대해서는 정확한 한자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 중 나무이름의 유사성과 중부지방 식생을 바탕으로 ‘팽彭’은 팽나무(Celtis sinensis), ‘엄嚴’은 음나무(Kalopanax septemlobus)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약藥’ 나무가 무엇인지는 발음을 통해서는 지금도 추정하기가 쉽지 않다. 이제 ‘약藥’에 대한 이옥의 설명을 더 읽어보자.


꾸지뽕나무 자(柘) (2024.9.14 홍천)
팽나무 (2018.8.16 둔주봉)
음나무/엄나무 (2018.8.11 화야산)



“'약나무’라고 하는 것은 나무가 초椒와 비슷한데, 5, 6월 즈음에 흰 꽃이 피고 열매는 크기가 앵두만 하다. 물고기 잡는 사람이 그 열매를 찧어서 웅덩이나 못에 풀면 물고기가 모두 죽기 때문에 ‘약나무’라고 부른다. 『이아』에 ‘원杬은 물고기를 중독시킨다 (杬 魚毒)’라는 내용이 실려 있는데, 이는 어쩌면 원나무의 종류인가?”*



때죽나무 열매 (2025.8.9 서울)
때죽나무 열매 (2023.10.12 성남시청 후원)


이 설명을 통해, ‘약나무’가 지금의 ‘때죽나무(Styrax japonicus)’임을 알 수 있다. 최영전은 『한국민속식물』(1991)에서 “때죽나무의 열매는 도토리처럼 깍지에 한 개씩 달리며 털이 밀생한 회갈색으로 익으면 깍지가 불규칙하게 갈라져 그 속에서 담갈색의 종피에 싸인 큰 씨가 나와 떨어진다. 이 씨는 지방이 많아서 기름을 따며 옛날에는 등유로 사용하기도 하고 머릿기름으로도 이용했다. 이 열매의 과피는 물에 불려서 그 물로는 빨래를 했다고 한다. 또 짓찧어서 강에 풀어 물고기를 잡는 어독(魚毒)으로 이용하기도 했다는 것이다.”라고 그 쓰임새를 열거하고 있다.


박상진의 『우리 나무의 세계 1』(2011)에 따르면 때죽나무의 “열매껍질은 사포닌(saponin)이란 물질을 함유하고 있다. 사포닌은 식물에 흔히 들어있는 성분으로서 피를 맑게 하고 이뇨효과가 인정되는 약용성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에고노끼’라는 일본 이름에서 딴 때죽나무의 에고사포닌(egosaponin)은 물고기의 아가미 호흡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어독(魚毒)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본의 경우 일부 지방에서는 고기잡이에 이용했다고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렇게 때죽나무 열매의 독을 사용하여 물고기를 잡은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데, 이옥의 기록을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팥꽃나무 (2023.4.1 성남시식물원)


이옥은 약나무로 불린 때죽나무의 한자어를 찾기위해 고심하면서 여러 문헌을 뒤적였을 터이다. 그러다가 찾은 내용이 『이아』의 “원杬은 어독魚毒이다”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물고기를 중독시킨다는 뜻을 통해 때죽나무가 ‘원杬’이 아닐까 추정하는 것이다. 대만 국어사전에서는 『爾雅』의 ‘원杬’에 대해 서향과에 속하는 ‘원화芫花’의 별칭으로 설명하고 있다.**** 『중국식물지』에 따르면 ‘원화芫花’는 속명 ‘어독魚毒’, 학명 Daphne genkwa로 우리나라의 팥꽃나무이다. 한편 때죽나무의 중국명은 ‘야말리野茉莉’이고, 속명은 ‘제돈과齊墩果’라고 한다.


때죽나무 (2024.5.19 인천수목원)
때죽나무 낙화 (2025.6.3 강원도 고성)


때죽나무는 황해도와 강원도 이남의 산지에 자라는 낙엽소교목으로, 5~6월에 새가지 끝에서 땅을 향해 풍성하게 피는 하얀 꽃이 사랑스럽다. 경기도 일원의 야산에서도 쉽게 볼수 있으며, 지금은 조경용으로 많이 식재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는 학명(scientific name)과 온라인 검색 도구를 통해 쉽사리 때죽나무의 한자명을 알아낼 수 있다.


그러나 이옥은 색인도 없는 각종 유서류 문헌을 일일이 검토하면서 때죽나무가 무엇인지 고심했을 것이다. 때죽나무를 ‘원杬’으로 추정하는 백운필의 이 기록을 통해 이옥이 식물명을 알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이옥의 식물에 대한 관심 덕분에 우리는 꽃과 열매가 멋진 때죽나무가 18~19세기에 경기도 일원에서 ‘약나무’로 불리었음을 알게 되었다. (끝)


*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완역 이옥전집 3』, pp.328~330.

** ‘구지枸枳’에 대해서 이옥은 “枸枳者卽柘也 鄕人采其葉以飼蠶 謂之曰 枸枳蠶 其大者有實 赤而甘”이라고 설명한다. 즉 우리말 이름으로 ‘꾸지나무’로 불리지만, 한자로 ‘자柘’라고 쓰고 시골 사람들이 그 잎을 따서 누에에게 먹인다고 한 것으로 보아 ‘꾸지뽕나무’임을 알 수 있다. 현재 ‘꾸지나무’로 불리는 것은 한지의 원료로 사용되는 닥나무 류로 학명은 Broussonetia papyrifera이다. B. papyrifera는 조선시대에 대부분 지방에서 ‘닥나무’로 불리다가 『조선식물향명집』에서 식물의 향명을 부여할 때 B. kazinoki(닥나무)와 구분하기 위하여 전라남도 방언을 채록한 것이다.

*** 『중국식물지』에 따르면 팽나무는 중명은 ‘박朴’이며 속명은 朴樹, 黄果朴, 紫荆朴 등이다. 음나무(K. septemlobus)의 중명은 刺楸, 속명은 茨楸, 云楸, 刺桐, 刺楓樹 등이다. 『동의보감』 탕액편에 ‘海桐皮 엄나모겁질’이 수록되어 있으나 “我國惟濟州有之(俗方)’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옥이 『동의보감』을 참조했다 하더라도 이 기록 때문에 고향 마을에서 ‘엄나무’로 부르는 나무를 ‘海桐’으로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역학서 문헌인 『同文類解』, 『譯語類解』, 『方言類釋』에 ‘刺楸樹 엄나모’로, 『蒙語類解』에는 ‘刺椿樹 엄나모’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옥이 참고한 것으로 알려진 『한청문감』에는 우리말 ‘엄나모’는 없으며, 卷十五 補編 樹木類에 “刺桐 葉如桐 花大如掌 枝幹有刺 〇生于嶺南”이 수록되어 있다.

**** 杬, “瑞香科瑞香屬「芫花」之別稱, 參見「芫花」條. 《爾雅 釋木》「杬魚毒」” (https://dict.revised.moe.edu.tw/)


+표지사진 : 때죽나무 꽃 (2023.5.8 서울 상암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