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필기류 문헌의 식물 (6)
어사화御賜花는 조선시대 문무과에 급제한 사람에게 임금이 하사하던 종이 꽃이다. 한때 어사화의 꽃이 무엇인지 몹시 궁금했었다. 무궁화에 관심을 기울였던 때였는데, 어사화가 무궁화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어사화와 무궁화의 관계를 알아보려고 온갖 자료를 찾아봤으나 그 명확한 근거는 발견할 수 없었다.
2024년 7월에 예천박물관에 전시된 어사화 복제품을 보았다. 1816년 문과에 급제한 이익문李益文이 하사 받은 것으로, 실물로 본 어사화는 특정 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아마 어사화 제작자가 특정 꽃을 본떠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겠지만, 이는 문헌을 통해 추정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즈음 예전에 구독했던『문헌과해석』을 살펴보다가, 이미 오래 전에 정민 선생께서 이옥의 ‘촉규화설’을 근거로 어사화는 접시꽃을 본뜬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밝혀 놓은 것을 알게 되었다.
“과거에 급제한 사람에게 내리는 어사화는 종이로 물들여 만든 조화인데, 그 모양이 접시꽃을 따왔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무궁화로 알려져 있었다. 그 의미야 당연히 해를 향해 기우는 이 꽃의 속성을 빌어 나라와 임금을 위해 충성을 다하라는 권계(勸戒)의 의미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옥은 … 이 꽃의 의미가 번화함이 영구하기를 바라는 데 있다고 풀이하였다.”*
그러나 20여년 전 『문헌과해석』에 실린 정민 선생의 글은 인터넷 검색으로는 찾을 수 없고, 이옥의 ‘촉규화설蜀葵花說’도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어사화가 접시꽃이라는 주장이 많이 확산되지는 않은 듯하다. 이제 이옥의 ‘촉규화설’의 몇 구절을 인용하여 어사화는 접시꽃을 본떠 만들었을 가능성이 큼을 다시금 밝히면서, 19세기 초엽의 문필가였던 이옥의 접시꽃에 대한 생각을 찬찬히 읽어본다.
“아욱(葵)은 나물이다. 잎은 국을 끓여 먹기에 좋으며, 꽃은 회고 가는 마디로 되어 있는데, 잎 사이에서 마디가 생겨난다. 접시꽃(蜀葵)은 꽃이다. 잎이 아욱과 조금 다르고 박(瓢)과 약간 비슷하며, 꽃은 아욱보다 큰데 붉은색, 흰색, 담홍색이 있고, 또한 단엽(單葉)인 것이 있고, 천엽(千葉)인 것도 있다. 닥풀(黃蜀葵) 또한 꽃이다. 잎이 뾰족하게 좁고, 톱니처럼 생겨 아욱이나 접시꽃과는 다르다. 꽃 또한 다른데 색이 흐린 황색이며, 모양은 국화와 비슷한데, 더 커서 큰 것은 모란보다도 크다. 줄기는 높이 자라 대체로 사람의 키보다 한 자 남짓 높은데, 그 꼭대기에서 꽃이 핀다. 한 줄기에 꽃 한 송이가 피는데, 목은 빼어나 고깔처럼 되어 있다. 능히 시간에 따라 기우는데, 아침이면 동쪽으로 기울고, 저녁이면 서쪽으로 기울고, 해가 정오가 되면 바로 선다. 대개 꽃이 해를 사모하여 한쪽으로 치우쳐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사람이 "규(葵)는 볕을 향해 기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곳 ‘닥풀(黃蜀葵)’를 말하는 것이다.”**
먼저 이옥은 규葵라는 한자어를 쓰는 아욱(Malva verticillata)과 접시꽃(Althaea rosea), 닥풀(Abelmoschus manihot)을 차례로 자세히 설명한다. 촉규화로 표기한 접시꽃과 황촉규로 쓴 닥풀에 대해 잎 모양과 꽃 색깔이 다르다고 명확히 구분한다. 현재 시각으로 보더라도 상당히 정확하게 각각을 구분하고 있다. 이옥의 식물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해를 향해 기우는 규葵는 접시꽃이 아니라 닥풀이라고 설명한다.
“나라에서 과거 급제자에게 인조화 두 가지를 내려주는데, 줄기와 잎은 푸르고, 꽃은 붉고 노란 것이 섞여 있어 모란꽃, 연꽃, 매화, 국화 등 여러 꽃들의 모양과는 다르다. 종이를 물들여 잘라 만든 것으로 꽃과는 비슷한 것이 없으나 그 형태를 취한 것은 대개 접시꽃(蜀葵花)이다. 아! 꽃이여, 꽃이여! 어찌하여 접시꽃에서 취했단 말인가?”**
이옥은 어사화가 접시꽃의 형태를 취했다고 설명한다. 이 주장과 관련하여 이옥이 특정 문헌을 인용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이옥은 1790년 생원시에 합격한 후 성균관에서 공부하면서 문과를 준비하고, 1795년에는 실제 과거에 응시했다. 그러므로 문과 합격후 임금이 내리는 어사화에 대해 상식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리라. 이옥은 접시꽃을 본떠 어사화를 만든 데 대해 “접시꽃의 꽃이란, 꽃이 해를 향해 기울지 못하고, 잎은 국을 끓여 먹을 수 없으니, 아욱과 닥풀에 미칠 수 없다. … 쉽게 말하면 꽃으로 높이 살 만함이 없는 것이다.”**라고 한탄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글을 마무리한다.
“오늘날 새 급제자들에게 머리 위에 장식을 하사하면서 반드시 이 접시꽃으로 하고 있는데, 나는 진실로 그 취할 것이 없음을 알고 있다. 혹자가 "옛말에 '규(葵)는 능히 발을 보호한다'라고 하였으니, 혹 자신을 보호하는 지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고 하기에, "이것은 아욱(葵)의 지혜이지, 접시꽃(蜀葵)을 말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우선 마당에 이것을 심어 놓고, 번화함을 믿고 영구함을 도모하는 자들에게 경계하고자 한다.”**
이옥은 ‘촉규화설’에서 접시꽃의 의미를 전복시키고 있다. 식물의 생태상 꽃이 해를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해도, 일반적으로 옛글에서 ‘규葵’가 들어간 식물은 대개 ‘향일(向日)’의 의미, 즉 님을 향한 일편단심을 상징하고 있다. 접시꽃인 촉규화蜀葵花도 마찬가지이다. 안평대군의 ‘비해당48영’ 중 하나인 ‘향일규화向日葵花’의 ‘규화葵花’도 접시꽃이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접시꽃이 ‘향일向日’의 의미를 가진 것은 그 연원이 깊다. 그런데 이옥은 실제 관찰을 통해 접시꽃이 해를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님을 향한 일편단심’의 의미를 없애버렸다. 대신 접시꽃이 아래로부터 위를 향해 풍성한 꽃을 차례로 피우는 데서 ‘번화함을 믿고 영구함을 도모하는 자들’을 상징하는 꽃이라고 비판한다. 아마도 이옥은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살이를 시작하는 관료들이 끊임없이 더 큰 권력과 영달을 추구하는 것이 미웠으리라.
나는 지금까지 옛 문헌에서 어사화가 어떤 꽃인지 설명한 글로는 이옥의 ‘촉규화설’밖에 보지 못했다. 접시꽃 모양이 무궁화와 비슷하므로, 어사화가 무궁화라는 주장도 생겼을 것이다. 어사화가 무궁화라면 문과 급제의 영화가 무궁토록 계속되라는 뜻이 되므로, 이옥이 접시꽃에 붙인 뜻과 비슷하기도 하다. 최영전의 『백화보』에 따르면 접시꽃은 ‘단순, 평안’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여름철이면 전국 곳곳의 시골집 마당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렇게 접시꽃은 평범한 아름다움으로 서민들에게 ‘평안’을 선사하며 사랑받는다. 이옥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접시꽃은 지금도 대중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꽃이다.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이 말해 주듯 님을 향한 일편단심의 뜻도 여전히 살아있다. (끝)
*정민, ‘접시꽃과 해바라기의 착종과 오해’, 문헌과해석 29(태학사, 2004), 182~183쪽.
**이옥전집 2, pp.411~413에서 인용. (식물명 일부 수정)
***‘비해당48영’의 “향일규화向日葵花”는 접시꽃! - 비해당48영 꽃 이야기(3)’ (https://brunch.co.kr/@783b51b7172c4fe/118)
+1816년 문과에 급제한 이익문李益文이 하사 받은 어사화 (2024.7 예천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