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필』에서 키버들을 뜻한 적양赤楊

조선시대 필기류 문헌의 식물 (5)

by 경인

필자는 조선시대에 정말로 5리마다 오리나무(Alnus japonica)를 심었는지 궁금하여 오리나무의 한자 표기 용례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을 ‘적양(赤楊), 유리목(楡理木), 기목(榿木), 오리목(五里木) 등 오리나무 한자 용례 검토 - 조선시대에 5리마다 오리나무를 심었을까”라는 꽤 긴 제목의 글로 써서 <문헌과해석>에 투고했었다.* 적양赤楊은 『조선식물향명집』에 오리나무의 한자명으로 나오기 때문에 검토 대상이 되었다.


당시 각종 문헌의 적양 용례를 살피면서 만난던 시가 박제가(朴齊家, 1750~1805)의 『정유각집(貞蕤閣集)』에 실려있는 ‘아정(雅亭)의 짧은 편지를 읽고 (讀雅亭小牘)’였다. 이 시의 “냇물가의 적양은 이미 솜을 토하는데(沿邊赤楊已吐絮)”라는 구절을 통해 적양이 버들개지(柳絮) 날리는 버드나무 종류나 꽃이 핀 위성류 모습으로 추정했으나, 정확히 무엇인지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후 적양이 무엇인지는 마음 속에 숙제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이옥(1860~1915) 『백운필白雲筆』에서 다음 글을 읽으면서 적양이 정확히 무엇인지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위성류 붉은색 어린 가지 (2021.4.17 화성)
위성류 꽃 (2022.5.21 바다향기수목원)


“물가의 적류赤柳에 대해서는 옛사람들이 정檉이라 불렀는데. 《이아익》에서는 "잎이 실같이 가늘어 하늘거리는 모양이 사랑스럽다"라고 하였다. 또한 오늘날의 적양赤楊과는 같지 않고, 오늘날의 위성류渭城柳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내가 위성류 한 가지를 얻어 심었더니, 매양 꽃 피고 잎이 드리워질 때 바라보면 연무烟霧와 같아서 참으로 사랑스럽다. 적양은 곧 양수척楊水尺이 짜서 버들고리를 만드는 것인데, 옛날에 갯버들(蒲柳)이라고 하던 것이 이와 비슷할 것이다.”**


이옥은 적류赤柳와 적양赤楊을 검토하여, 적류는 위성류(Tamarix chinensis)이고, 적양은 양수척이 버들고리를 만드는데 쓰는 버들, 즉 현재 고리버들로도 불리는 키버들(Salix koriyanagi)임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장을 읽고, 박제가 시의 적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쾌재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이옥은 박제가가 활동했던 백탑파의 일원이자 실학자였던 유득공(柳得恭, 1848~1807)의 이종사촌 동생이다. 유득공을 통해 백탑파의 지식을 흡수했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박제가와 이옥이 적양赤楊으로 표기한 식물은 같은 것을 가리킬 가능성이 크다.


키버들 버들개지(유서) (2022.5.21 바다향기수목원)


『한국의나무』에 따르면 키버들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하천, 계곡가 및 저습지에 자라는 낙엽관목이다. 가지가 길게 벋으며 황갈색 또는 갈색을 띤다. 아마도 이 가지 색깔 때문에 적양赤楊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을 지도 모른다. 『맹자』선성설 논쟁에 등장하는 버들인 기류杞柳도 가지를 구부려 용기를 만들 수 있는 키버들 류라고 한다.*** 조선총독부에서 1924년(대정13)에 농업학교 교과서로 간행한 『특용작물교과서』에는 기류杞柳에 대해 “こリやなぎ (개뻐들) 學名 Salix purpurea, L.”로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한국의 나무』에 따르면 Salix purpurea는 키버들의 학명인 Salix koriyanagi의 이명(synonym)이고, 고리야나기(こリやなぎ)도 키버들의 일본 이름이다.****


키버들 가지와 버들강아지 (2022.3.1 성남) - 가지 색에 붉은 빛이 감도는 듯하다.


『조선산림식물도설』(1943)에서는 키버들의 한자명으로 기류杞柳와 홍피류紅皮柳를 채록하고 있다. 홍피류는 ‘껍질이 붉은 버들’이라는 뜻이니 적양의 의미와 일부 통하는 듯하다. 이렇게 박제가와 이옥이 활동했던 시대에 지식인들이 키버들을 뜻하는 한자어로 적양을 쓴 것을 밝히고 나니,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유두류록(遊頭流錄)’에 나오는 다음의 적양 용례도 키버들이었까 궁금해진다.


“선열암(先涅菴)을 찾아가 보니, 암자가 높은 절벽을 등진 채 지어져 있는데, 두 샘이 절벽 밑에 있어 물이 매우 차가웠다. 담장 밖에는 물이 바위 중간의 부서진 돌 틈에서 방울져 떨어지는데, 반석이 이를 받아서 약간 움푹 패인 곳에 맑게 고여 있었다. 그 틈에는 적양(赤楊)과 용수초(龍須草)가 났는데, 모두 두세 치(寸) 정도였다.”*****


한 치가 3cm가량이나 두세 치는 10cm 정도에 불과하여 보통 2~3m로 자라는 키버들에 비해 작은 듯하다. 그러나 척박한 바위틈에 자리잡았으면 크게 자라지 못하고 앉은뱅이 상태로 머물 수도 있을 듯하다. 그러므로, ‘유두류록’의 적양도 키버들일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못하지만, 아직 판정을 내리기엔 확실한 증거가 부족하다. 이렇게 옛글의 식물은 조금씩 그 실체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새로운 질문이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조선식물향명집』의 기록처럼 일제강점기에는 적양이 ‘오리나무’를 뜻하기도 했으므로 문맥과 시대를 잘 살펴야 하겠지만, 이제 『백운필』의 용례를 통해 키버들의 한자 표기로 ‘적양赤楊’을 추가해도 좋을 듯하다.


*<문헌과해석> 통권 97호 (2024년 가을호), pp.185~202.

** 완역이옥전집 3 – 벌레들의 괴롭힘에 대하여,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옮기고 엮음, 휴머니스트, 2009 (번역 인용, 식물명 표기 수정)

***”맹자 성선설 논쟁에 등장하는 버들 기류杞柳는? - 키버들과 갯버들, 왕버들”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2023년 7/8월호) (https://brunch.co.kr/@783b51b7172c4fe/55)

****”일제강점기 <특용작물교과서>와 <맹자>의 기류杞柳 – 키버들” (https://brunch.co.kr/@783b51b7172c4fe/133)

*****<문헌과해석> 통권 97호 (2024년 가을호), pp.191~192.

% (추가) <동의보감> 탕액편에 “적정赤檉. 일명 우사雨師이다. 지금 물 가에 자라는 작은 버들(楊)이다. 줄기는 붉고 잎은 가늘다. 이른 바 적류赤柳이다 (赤檉 一名雨師 今河邊小楊 莖赤葉細 所謂赤柳)”라는 기록이 나온다. 이옥의 적류 설명과 통하며, 이로 보아 조선시대에 위성류의 별명으로 적류가 쓰였음을 알 수 있다.

+표지사진 : 키버들 (2021.3.7 성남)